주인공과 관계가 있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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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현대과학에서도 한 물체를 쪼개 본다면 분자, 원자에서 소립자, 미립자까지 증명이 되고 결국 그 근본은 어떤 것도 고정됨이 없는 공이라고 합니다. 결국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과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인공도 그런 맥락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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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예, 당연한 말이지요. 지금 물리학이나 이런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증명 되고 있는 그런 것이 우리 살림하는 데도 나타나고 있죠. 우리의 몸은 근본적으로 지·수·화·풍으로 일체가 다 뭉쳐져 있습니다. 지수화풍이 아니라면 그런 소립자, 미립자까지 있을 리가 없죠.
나는 현대 용어는 잘 모르지만 핵이 있으면 전자가 있고 전자가 있으면 전자가 바로 핵이 되고, 핵을 보호하고 있고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거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한마디로 말해서 현미경으로 본다 하더라도 어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안의 눈이라는 것은 아무리 멀다 하더라도, 수천 수만억 광년이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바로 자기 곁을 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것이 둘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이 초월이 돼서 둘이 아니게 보는 거죠.
그러면 그것을 가서 보느냐? 그게 아니죠. 자기의 그 명경과 같은 밝은 마음으로 본다면 앉아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천체를 볼 수 있고, 어떤 부분적인 것도 볼 수가 있는, 그러한 것을 불가에선 천안통이라고 하는데 천체망원경이라고 비유를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심성이 아니고는 절대로 그것은 다 볼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무위심, 즉 말하자면 무심과 유심이 같이 혼합이 돼서 행을 할 수 있는 그 봉을 본다면 과학자들도, 천문학자들도 이름 없는 진짜 천문학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봅니다. 이름만 천문학이 돼서 되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천 가지의 그 뜻이 다, 내가 보는 눈이 그대로 문이 돼서 벽도 없고 걸림 없이 내가 볼 수 있다면 연구를 하면서도 자기가 자재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볼 수 있다고 해도 도가 아니니라 그랬거든요. 본다고만 해서야 무슨 이익이 있어야지요. 또 듣는다고만 해도 이익이 없고, 남의 속을 안다 해도 이익이 없고, 또 남이 어디서 어떻게 왔다는 걸 안다고 해도 이익이 없단 말입니다.
그게 왜 이익이 없느냐? 무꾸리쟁이에게 무꾸리를 하러 갔는데 ‘새 달에는 너는 죽을 운수다.’ 이걸 안다고 합시다. 쪽집게처럼 안다고 합시다. 그러면 죽을 운수만 알았지, 남의 속만 알았지 그 죽을 거를 이렇게 갖다 놓고 자유스럽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자력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도가 아니다라는 얘기죠.
그러나 보고 듣고 아는 그 오신통과 더불어 누진을 통한다면 그냥 자유자재죠. 여기 지역이 좋다 저기가 좋다 이러한 문제도 자유스럽죠. 그러나 이것이라고 해서 좋은 것만도 아니고 언짢은 것만도 아니니 그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그런 문제도 있는 거죠. 그러면 그건 내가 정하는 대로 그냥 법이에요. 힘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오히려 남의 흉내만 되지만, 이 마음의 도리를 길러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게 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흉내나 낸다면 자기 몸이 해쳐지고 자기가 흉내 내는 그 말이 자기한테 그냥 관념이 돼서 자기가 좋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순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앞으로가 창창한 젊은이니까 그러한 것을 다 담고 있는 내 주인공의 도리를 진짜로 믿고 실천하신다면 내게도 남에게도 다 좋은 그런 삶을 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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