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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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기를 희생하며 참고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혼률도 높아지나 봅니다. 사실 저의 친한 친구도 죽고 못 살겠다고 우겨서 결혼하더니 남편이 교통사고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친구가 살림을 꾸려나가야 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차츰 마음이 변해 가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게 과연 뭘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러니까 못났든 잘났든 자기밖에 믿을 게 없습니다. 자기가 아프면 자기가 아픈 것을 더 잘 알고, 자기가 넘어지면 자기 손이 제일 먼저 가고, 아무리 친절하고 아무리 부부지간이고 아무리 자식부모지간이라도 자기 아픈 거는 상대방이 진짜 다 100% 알아주지 못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 한두 달이지 만약에 일 년이 넘어가 보세요. 불쌍하긴 불쌍하다고 하나 그건 진저리가 나는 거죠. 그러니 누구도 믿을 게 없어요. 나밖에는. 내가 나를 믿고 사는 거밖엔 없습니다. 즐거운 사랑? 참, 무슨 사랑이 그런 사랑이 있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요. 잠시 잠깐 사랑한다고? 그게 뭐 말라빠져 죽은 사랑이냐 이겁니다. 싫으면 뱉고 달면 삼키고 이러는 게. 이 세상 살아나가는 게 그래도 자기한테 이익 해야만이 택하지 해롭게만 돌아온다면 그건 택하지 않죠. 사랑하다가도 자기한테 앞으로 장래에 해로울 일이라면 절대 사랑하지 않아요. 일 년만 만약에 앓고 드러누웠어도 사랑은 멎어지죠. 다른 데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몹쓸 병이 들었을 땐 죽기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아니라고요? 아니라고 말은 그러지마는 속으론 그렇질 않을 거예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이겠죠.
그러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누구도 믿을 게 없다는 겁니다. 자식도, 아무것도 믿을 게 없어요. 그걸 자식이 또 들으면 섭섭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니고, 믿을 게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서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근본. 아까 얘기했죠? 만약에 자식도 일 년 이태만, 삼 년만 드러누워 있어 보세요, 어떻게 되나. 또 부모가 이태 삼 년만 드러누워 있어 보세요, 어떻게 되나. 서로 다 똑같아요. 그러니까 빨리 죽어 주는 게 효자고 효녀고, 그런 것뿐이죠. 빨리 죽어 주는 게 자식한테 짐을 덜어주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따지게 되면 다 소용이 없다 이 소리에요. 일체 만물, 물질이라는 것은 다 변질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못 된다는 얘기죠. 변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자꾸 속는단 말입니다. 아니, 천신 만신 고생해서 시중들고 뭐 하고 또 남자는 남자대로 들입다 벌어다가 주고 이러고선 배신을 당하고. 그래, 내쫓기지는 않아도 마음으로 떠났으면 벌써 배신당하는 거지 뭐 별 수 있나요? 몸뚱이만 있으면 뭘 합니까? 누구든지 살면서 배신을 수차 당하면서 다시 또 붙어 돌아가고 또 배신을 당하면서 다시 이렇게 연결되고 이럭하면서 살죠.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사는 사람 잘 없을 거예요. 누구든지 그럴 거예요, 아마.
이십사 시간 동안에 한 번 편안하게 사랑하기가, 한 시간 편안하게 사랑하기가 어려워요. 하루 이십사 시간 동안에 고정되게 한 시간씩 참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이 왕자 부럽지 않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아마 그 한 시간이 싸움으로 변할지도 모르죠, 사랑은커녕.
그런데 나는 욕심이 많아서, 여러분보다 나는 욕심이 더 많을 겁니다, 아마. 나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조금 사랑하다가 치울 거라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죠. 이 세상에 나와도 조금 살다가 그냥 변질되고 없어질 물건이라면 차라리 물건으로 나오질 않겠다 이겁니다. 물건으로 나오더라도 아주 변함도 없고 남한테 이익을 줄 수 있고 눈요기도 시킬 수 있게 나온다면…. 그런데 그렇게 보여 주기만 하면 뭘 하겠습니까, 또? 그러니까 차라리 그저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여러분이 사는 대로 좇아서 그냥 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화목하게 지내고 사랑으로 지내려면 나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가발전소에서 모든 불을 켜서 방 안을 다 밝게 하면 눈이 컴컴하질 않아서 “여보! 여기 있으니 잡숴요.” 이럴 수도 있고, “얘! 여기 있으니 먹을 거 먹어라.” 이럴 수도 있는 거지마는 방이 캄캄하면, 내가 불을 안 켜면 캄캄한 거죠. 방통이 다 캄캄한데, 전부 눈이 캄캄한데 뭐를 봐서 사랑이고 뭐고 있겠어요?
글쎄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어떤 때는 그럴 때가 있어요. 아이구, 세상에, 사랑들 한다고 그래 봤자 내가 보는 바에는, 기껏 털고 닦고 해 먹이고 해 주고 빨아 입히고 이래도, 그리고 또 남자들은 그 고생을 하고 손발을 널리고 이렇게 해서 기껏 벌어다가 줬는데 말이죠, 여자가 씀씀이를 헤프게 그렇게 쓸 때에는 ‘아이구! 이거 정말이지 너무하는군. 너무하는군, 모두.’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러니까 대의적으로 봐서 하는 얘기예요. 개별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정말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죽어도 살아도 더 불쌍하게 생각이 들고, 하다못해 먹을 게 없으면 죽거리라도 얻어다가 같이, 숟갈 두 개를 꽂아 놓고 같이 먹을지언정 어찌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겁니다, 나는. 단지 인간의 참마음,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게 중요한 거지 그까짓 것 거적을 쓰고 죽으나 좋은 공단 이불을 쓰고 죽으나 그게 무슨 상관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하는 말이 있지만, 본래 죽고 사는 게 없이 같이 사는 겁니다. 말을 하려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왜? 부동한 능력으로써 바로 그 모든 거를 활용하고 움죽거리게 되니까, 이 육신이 무너진대도 불과 법이 둘이 아니기에, 우리가 삶을 보람 있게 살면서 항상 나 아님이 없이 즐겁게 산다는 얘깁니다. 어느 것도 나 아님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항상 하고 있다는 얘기죠. 나를 내가 사랑한다는 거, 변소엘 가도 같이, 언제나 같이 해 주는 그 영원한 사랑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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