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개별적으로 다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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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인터넷으로 스님 법문을 접하게 되면서 이제 주인공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질문이지만 궁금해서 여쭙니다. 주인공은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다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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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은 생활 속의 내가 어떻게 살아나가야만 되는지, 어떠한 것이 불법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 생활이 불법이냐, 그리고 진리며 길이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떠나서 어느 신들이 많이 계셔서 여러분을 도와주느냐?’ 하는 것을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부터 발견해야 합니다. 발견을 못한다 하더라도 ‘나로 인해서 참나가 있다. 참나는 나를 수억겁 광년 전에서부터 이렇게 지금까지 이끌어 가고 있다. 앞으로도 끌고 갈 거다.’ 그런 거를 진실히 믿어야 합니다. 절대로 바깥으로 끄달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면의 주인공이라 하면 개별적인 여러분 하나를 가지고 주인공이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우주와 마음이 직결돼 있다. 우주의 근본이 인간의 근본이요, 태양의 근본도 인간의 근본이요, 천지의 근본도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니라.’ 하는 말이 있죠.
그렇듯이 바로 그 ‘한마음’ 이라는 말 자체는,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움죽거리고 다니는 것은 여러분 몸뚱이 속의 수십억 마리가 회전을 해 주기 때문에 여러분이 다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은 움죽거려 주고 어떤 것은 안 움죽거려 주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럼 어떤 것이 움죽거릴 때 내가 움직인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바로 그 수십억 마리의 대표인입니다. 한마음, 한생각이 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로 치면 회장격이나 사장격이죠. 이 오장 육부에, 또는 세포에 어떠한 자기 소임을 맡아 가지고, 예를 들어서 위 공장을 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공장장이 있다고 합시다. 그럼 그걸 지배를 하는 거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마음입니다. 그럼 그 공장 하나뿐이 아니거든요. 이것도 소우주라고 할 수 있는 혹성입니다.
그러면 어떡해서 주인공이라고 하는 자체가 개별적인 내가 아니냐? 내 몸속으로도 수십억 마리가 지금 회전을 하고 있는가 하면, 내 마음으로서 짓는 그 찰나가 고정됨이 없이 공해서 돌아가거든요. 바깥의 외부의 일도 바로 나 자체 이 개별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밖으로도 개별적인 나가 아니요, 내 속에 있는 생명들과 나 생명이 둘이 아니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사는 데 ‘나야. 내 거야.’ 이럴 수가 없죠. 여러분 몸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회전해 주고 생명을 유지시키고 또 여러분을 이끌어 가고 말도 하게 하고 똑똑하게 다니게도 해 주는데 아니, 내가 혼자 나라고요? 그러면 여러분 몸속에 들어 있는 그 생명체들을 무시하는 거죠.
그러니 모두가 둘이 아니게 한마음으로서 서로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그 자체, 내부나 외부나 같이 돌아가는 거, 공생 공용 공체 공식 하고 이 우주 전체가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개별적인 나 하나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총합해서 ‘주인공’이라 한다면 내 근본에다가 맡겨 놔야죠. ‘야! 내가 억겁 천년서부터 이끌어 온 것도 바로 내 주인공이요, 나를 형성시킨 것도 내 주인공이요, 바로 지금도 끌고 가는 게 바로 내 주인공이요, 내 주인공밖에는 해결할 수가 없다. 내 아픈 것도 내 주인공밖에는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 내가 가난한 것을 이끌어 주는 것도 바로 내 주인공밖에 없다. 내가 일이 막혀서 안되는 것도 내 주인공밖에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진짜 당황하지 않고 물질적으로다가 자꾸 끄달리지 않고 옆에서 죽는대도 눈 하나 깜작거리지 않고 여기다 맡길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저절로 바로 승천이 돼요. 각자 여러분 한 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대도 없고 생활도 없고 부딪칠 일도 없고 부처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부처가 있는 것이고 진리가 있는 것이며, 생활이 있는 것이고 바로 가정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은 부처님을 믿는다면서 너무 멀리 찾아요. 부처님이 가죽 속에, 모두 이 원 안에 전체가 들어 있다면 주인공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풀포기 하나 빼놓지 않고 같이 다 들어서 동일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이 나 이외에 따로 있는 줄 알고 ‘나 좀 잘되게 해 주시오. 우리 아들 좀 잘되게 해 주시오.’ 하고 칠성한테 가서 빌어야지, 산신한테 가서 빌어야지, 여기 가서 빌고 저기 가서 빌고 그러다가 보니까 용왕까지 가서 무슨 뭐 거북이나 미꾸라지나 이런 거 이름 써서 갖다가 넣고선 그것도 또 잘해 달라고 하죠. 이렇게 하다 보면 여러분은 귀신 아닌 귀신 짓을 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가르치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귀신짓을 한다면 여러분이 죽어도 그 의식이, 그 습성이 그대로 남아서 요다음에 또 나와도 그 습성 그대로 가질 겁니다. 우리가 사람으로만 태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털옷을 입을 수도 있고 뱀 허물을 쓸 수도 있는 거고, 그런다면 그 습을 떼지 못해서 또 그렇게 허우적거리고 고생을 할 것입니다. 인간의 허물을 쓸 수도 있는 거지만, 인간도 얼마나 차원이 천차만별로 많습니까?
살아나가는 걸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상인은 상인대로, 또는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화가는 화가대로 또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철학자는 철학자대로, 아주 자연히 누가 그거를 가리지 않아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같이 끼리끼리 모여서 끼리끼리 장단 맞추고 끼리끼리 그렇게 모두가 정말 그 춤에 맞춰서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의학적으로나 모든 문제, 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또는 미술적으로나, 어떤 천문학적으로나 천체물리학적으로나 이러한 문제 등등이 여러분 앞에 기술이 주어진 대로 과목이 주어진 대로, 그러니까 배추 장사를 하더라도 규모 있게 이 주인공 자기가 있기 때문에 한다는 겁니다.
그럼 이 몸뚱이 이것은 참자기의 시봉자밖엔 안 돼요. 즉 말하자면 시자다, 또는 심부름꾼이다 이렇게 말해도 되겠죠. 마음이 동하질 않으면 이 자기 마음 주인공이 고집이 세어 가지고요,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않거든요. 여러분도 살아 보셨죠? 내가 하기 싫고 내가 거기에 틀리다고 할 때는 전혀 아주 그냥 몸이 움죽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게 누구의 심부름꾼이겠습니까? 자기의 자기가 심부름꾼이죠.
내 참나인 주인공이 다 하는 것이고 그 주인 거지, 나는 관리인이요 심부름꾼이다. 부지런히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이러한 바쁜 세월에서 그대로 나는 심부름을 부지런히 하고 내 주인공의 뜻에 의해서 나는 부지런히 뛸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어떠한 걸 막론해 놓고 해결 못하는 것도 없고, 또 못한다 할지라도 안되는 것도 고정되지 않고 되는 것도 고정되지 않습니다. 그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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