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참 고통을 모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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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들은 결혼하신 분도 물론 계시지만 대개는 안 하시잖아요? 그러나 인생에 있어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게 자식을 키우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고 이런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심을 떠나서 혼자 수행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물론 그 수행의 여러 가지 모습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렇기 때문에 중생의 참 고통을 모르는 게 아니냐, 그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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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사실상 시집 장가를 안 간다, 이러한 뜻은 뭐냐 하면 인생이 한 철이라 영화배우들이 살다가 막을 내리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거든요. 그런데 그 한 생, 한 철을 살다가 모든 것을 연결 지어서 착을 두고 사랑한답시고 싸우고 이렇게 하다 보면 자기가 세세생생을 얻지 못해요. 영원한 자기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얘기죠. 그건 왜냐하면 마음은 벌써 자기 육신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 공기주머니에서 벗어나야 되거든요. 우리는 공기주머니 안에서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한 생 동안에 우리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중에는 다 얻어서 다 베풀어야 되거든요. 그러면 세세생생을 얻는 거죠. 얻으려고 해서 얻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자기가 미생물에서부터 둘이 아닌 까닭에 수없이 거쳐 오면서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어온 그 자체의 관계를 수없이 해 나왔거든요. 그 공부를 하다 보면 그거를 저절로 알게 돼요. 그러니까 자기가 얼마만큼 그 고생을 하고 먹히고 먹고 이렇게 나왔다는 걸 알게 되죠.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도 인간은 정신을, 정수를 뺏기고 산다. 또 뺏어먹는 놈이 있다. 뺏기고 먹고 이렇게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모습을 갖다가, 즉 말하자면 연구를 했지만, 지금은 정수를 빼다가 놓고 연구 대상을 삼는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얼마나 급하냐 이겁니다, 사람 사는 게.
자기 하나만이라도 벗어나야 자기가 인연됐던 그 무리들을 다 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죠. 아주 투철하죠. 칼을 뽑았으면 이 칼이 다 건질 수 있는 칼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느냐. 투철하게 양면을 놓고 그냥 자기를 바숴 나가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왜 군더더기를 붙여 가지고 가겠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지금 살얼음판을 딛고 가느냐, 또는 빌딩에 불이 났는데 지금 그 구멍을 찾아서 사느냐 죽느냐가 달려 있는데, 그 가운데서 불이 나서 구멍을 찾는데 장가들 생각이고 시집갈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거와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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