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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의 참선에 대해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생활 참선을 특히 강조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절에 다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앉아서 좌선도 해 보고 그러는데 생활 속에서 어떻게 참선을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왔다면 물질계의 50%만 가지고는 도저히 자유스럽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계 50%와 같이 작용을 해야만이 인간이 자유스럽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성불이다 부처다 이러기 이전에 말입니다. 전자와 전자가 같이 작용을 해야만이 불이 들어오죠? 에너지가 나온다는 얘깁니다. 만약에 이 전자와 전자가 갖다 대는 게 부(父)라면, 불이 들어오는 건 바로 여러분의 불성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 안에는 지금 수십억 개의 그 의식과 모습, 생명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 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위 공장 하나만 하더라도 여러분의 공장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직원이라고 해도 될 수 있지만 여러분의 한마음입니다. 위 공장이니 장 공장이니 소장 공장, 대장 공장, 방광 공장, 이 공장이 하도 많아서 외울 수도 없습니다. 이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직원을 부리는 나나 어떻게 둘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직원이 없으면 무효입니다. 사장이 없어도 무효입니다. 그러니까 이 집은 결국은 그 나의, 내가 일하는 나 자체의 집일 수도 있고, 절에서는 시자라고 합니다마는 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인이 사는 데 관리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는 건 봤지만 차가 운전수 끌고 다니는 건 못 봤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이 이래라 하면 이러고 저래라 하면 저러지 몸이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이 마음이라는 것이 크나큰 우주를,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빛깔도 없지만 고 아무것도 없는 그릇 없는 그릇에 이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담을 수도 있지만, 하나도 몰라서 그대로 ''내가 걸었지. 내가 하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하다가 몸 떨어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여러분의 영원한 근본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악업 선업이 바로 이 몸속에 수십억 마리가 있습니다. 의식이 말입니다. 그 의식이 많은 대로 여러분은 망상이 나온다, 뭐가 한다 그러죠? 그러나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고 현재는 공했으니까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 하나도,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보는 거나 듣는 거나, 나오는 거나 가고 오는 거나, 만남이나 먹는 거나, 고정된 게 있습디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냥 여러분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발자취 남기지 않듯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발자취를 붙들고 늘어집니다. ''어저께 이럭하고 했는데 아, 고놈이 고럴 수 있어?'' 하고, 뒷발자취를 그냥 붙들고 늘어집니다. 또 ''그것이 어저께 잘됐는데, 그놈의 거.'' 하고, ''아이구, 그놈의 게 다 없어졌어!'' 그러고선 그냥 또 붙들고 늘어집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 불바퀴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도 그냥 있는 게 없습니다. 우린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버스 안에서 버스가 어딘가로 돌아가도 이 지금 여러분은 버스 안에서 내다보지도 못하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도 아예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몸속에 들어 있는 수십억 마리의 의식들이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바로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숙명통, 그것은 비유하건대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자동적으로 이 악업 선업은 내 몸뚱이 속에서 그 의식들에 의해서 그냥 나옵니다. 자기가 나올 때 아주 소임을 맡아 가지고 나오듯이, 영화배우들처럼. 그래서 내가 지금 일러 드리고 싶은 것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입력이 돼서 나오는 것을 입력을 되해라 이겁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죠? 땅 위에서 가다 엎드러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지 딴 데 짚고 일어나지 않죠?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건 그 자리에다 맡겨 놔야 앞서 입력된 게 무너지죠. 연방 넣으면 넣는 대로 앞서 넣은 게 무너지고 또 들어가고 하면서 항상 그릇은 비어 있는 거라 이 소립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것이 현실에 나오는 거니까, 모든 유전성이나 영계성이나 세균성이나 업보성, 인과성 이 모두, 애고성이나 오간지옥성, 이런 것들이 모두 무너져야 새 맛을 볼 수 있을 텐데 무너지질 않고 그냥 그저 묵은 데서 나오듯 연방 나오니 여러분은 그걸 마음대로 하실 수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러니까 앞서의 모든 것을 녹여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는 자기 주인공에다가 놓고 돌아가야 된다. 안되는 것은 ''거기서 안되는 것도 나오는 거니까 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지. 거기서밖엔 할 수 없어!'' 하고 놓는 거지 ''해 주시오!''가 아닙니다. 기도가 아닙니다. 그게 관법입니다. 즉 말하자면 거기다 맡겨 놓고 관찰하고 지켜보고 체험하는 것이 즉, 참선입니다. 앉아서 좌선이다 입선이다 또는 와선이다 행선이다, 이런 것들을 다 통틀어 합해서 생활 자체가 참선입니다. 여러분, 참선 아닌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천칠백 공안 아닌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 세상만사가 다 하나도, 참선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마가 발이 많은데 "저거 발이 많아도 하나도 안 걸려?" 하면 그리마가 가다가 우뚝 서고 걸리듯이, 그냥 걸리지 않고 항상 하다가도 그저 누가 말만 하면 걸려요. 이 참선이라는 이 자체가 아주 묘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수박이라면 작년 씨를 올봄에 심었단 말입니다. 심어서 싹이 나서 수박이 열렸어요. 그랬는데 참선인가 뭐 좌선인가 한다고, 또는 화두를 받았다고, 이거는 과거의 내 씨를 찾고 있단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벌써 그 씨는 화해서 싹이 돼서 수박이 열려서 수박이 익어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수박씨가 있는 줄 모르고 자기 바깥에 자기 나기 이전에 가서 찾으려고 앨 쓴다 이 소립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지금 얼마나 이 시대가 발달이 되고 그랬는데 그것을 못 벗어난대서야 되겠습니까. 이 모두가, 산(生) 사람 개개인이 다 주어져 있는 그 재료만 가지고 여여하게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인간이란 99%를 바로 여여하게 살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한 장의 백지장 사이를 몰라서 모두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하는 이런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좌선 해 나가시는 거, 그것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고렇게 얍상해서 앉아서 좌선을 하면 ''앉아서 좌선을 내가 해야지.'' 하고 합니다. 그건 말 안 해도 뜻으로 벌써 ''어휴, 내가 이거 할 시간인데.'' 하고 합니다. 다 했으면 벌써 ''시간이 다 됐는데 아, 일어나서 뭐 해야지.'' 하고 인제 합니다. 그러면 좌선할 때만 지구가 돌아가고 좌선 안 할 땐 안 돌아가나요? 항상 도루묵이 되는 거죠.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도루묵쟁이. 그러니 앉는다는 생각도 선다는 생각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유가 있으면 하는 거고 여유가 없으면 못하는 거죠. 그런데 못하는 거, 하는 거 따로 없다. 행선 해도 행선이요, 좌선 해도 좌선이요, 입선 해도 입선이요, 드러누워서도 와선이요, 어느 거 하나 참선 아닌 게 없습니다.
지금은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살아 보시죠? 그런데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게 전체가 참선 아닌 게 없다 이 소립니다. 부처님 불당에만 가야만이 또 부처님이 계신 줄 알고, 부처님이 멀리 계신 줄 알지 마시고 여러분이 계신 곳에, 여러분이 화장실에 갔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화장실에 있기 때문에 부처는 거기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자녀들을 낳아서 학교에 보내듯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그 뜻을 확실히 알고 싶다면 절에 자주 나가서 공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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