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행동을 하면서도 마음이라는데…
본문
질문
제가 아는 사람이 절에 열심히 다니는데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마음자리에서 시키는 거라고 하면서 아주 당당하게 다니는 걸 보면 저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이해가 안되는 진 모르겠는데 과연 마음공부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여러분이 공부를 할 때 첫째 모든 것을 놓는다,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 그것이 방하착이라면 즉, 모든 잡념과 모든 전자에서부터 얻은 그 습성을 다 녹여버리고 자기의 참 생수 맛을 봐서 자기가 자기를 알았을 때, 또 이차적으로 자기를 또 다시 한 번 체험하면서 상대방과 나와 다시 죽는 법을 또 배워야 된다. 상대방과 나와 다시 죽는 법을 배워야 된다. 고 다음에 세 번째, 상대방과 나와 더불어 같이 나툴 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상대방과 나와 죽지 않는다면 상대방과 나와 같이 나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를 이러한 경험 저러한 경험, 우리가 살림살이에서 다 하고 돌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아주 처음 공부하시는 분은 놔 버리는 데, 맡겨 놓고 사는 데 여념이 없어야 하는 것이 생활을, 온갖 작동을 다 하면서도 그 작동하는 것이 바로 자기 주인공에서 모든 것을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운전수가 차를 몰고 다니듯이 그 운전수에 차는 달려 있는 거죠, 차가 운전수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렇듯이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자기 전자부터의 종문서는 몰락 태워 버릴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있고, 내가 탄생했을 때 엉뚱하게 내가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엉뚱한, 이 세상에 걸맞지 않는 말과 행이 솟아나올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오관을 통해서 내가 보고 이것이 걸맞지 않는다면 자기가 제재해서 거기다 놔야 되는 법입니다. 무조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안에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도 무조건 들어서는 되지 않는 거라고 봅니다. 안팎이 다 그렇겠죠?
그래서 양면을 다 쥐고 이것이 옳으냐 이것이 옳으냐 하는 것을 갈피를 잡고, 더디게 갈 필요도 없이 자기가 즉각적으로 이게 잘못됐다는 거 잘됐다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됐다는 걸 번연히 안다면 이것을 믿고 들어가라. 믿지 않는다면 물론 불평이 나오고, 또한 상대가 있으면 불평이 나옵니다. 믿고 상대가 없다면 불평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믿지 못하는 까닭에, 만약에 이 소릴 들었다 저기에서 저 소릴 들었다, 저걸 봤다 이걸 봤다 했을 때에 믿지 못하는 까닭에 그렇다. 믿지 못하는 까닭에 소릴 들었기 때문에 분이 일어난다. 소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말을 한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만약에 저 사람이 나라면, 둘로 보지 않았다면, 믿는다면 ‘아, 그렇기도 하겠지. 고정됨이 없으니까 때에 따라서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지.’ 하는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 한마디 할 게 없고, 거기에 말할 것도 없고 안 할 것도 없는 거죠. 자기 안에다 모든 것을 ‘아, 내가 지금 현재에 생각할 때는 이러한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째 이렇게 될까?’ 하고 생각이 됐을 때는, 안에서 굴려서 자기가 자신에게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할 수 있는 그 방법이 바로 내가 지금 세 단계가 없는 세 단계에 의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 도리를 거기에서 넘기지 못한다면 같이 죽어서 같이 나툴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공부하는 사람일수록 더 이거는 심사숙고해야 된다.
때에 따라서는 여러분의 살림살이처럼 가정에서도 남편이 급하면 급한 대로 나가서 뛰다가 사흘도 못 들어오고 나흘도 못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남은 바빠서 돌아치는데 불평 불만 하겠습니까, 그걸 안다면. 제때에 밥도 못 먹고 제때에 잠도 못 자고 제때에 참, 그 몸을, 피로한 몸을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들어온 사람더러 말하겠습니까? 그걸 모르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겁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당신 어디 갔다 왔어?” 하고. “나는 죽도록 그 가정을 위해서 했는데 이건, 당신이 좀더 집에서 이렇게 해 줬으면 자식들과 모든 것이 이렇게 편편할 거를 왜 당신은 나가서 그렇게 돌보지 않느냐? 전에는 안 그러더니 맘 변했다.” 이거거든요. 그러나 남편은 그게 아니라 남의 속을 일일이, 나가서 일하는 걸 일일이 말할 수는 없고, 또 만약에 말을 해서 어떠한 불리한 조건이 생길 수 있는 말이라면 말을 못하는 거죠. 그렇다면 말을 못하고 나를 믿어라. 모든 것을 이렇게 하는 것도 믿어지고 저렇게 하는 것도 믿어진다면 아무 말 대상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좀 지혜를 넓힌다면 어떠할까요? 하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둘을 생각하고 셋을 생각하고 넷을 생각하고 백을 생각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그걸 알 텐데 그걸 모르고 좁게 생각한다면 아니 됩니다. 그러면 더 커질 수가 없고 한 발을 한번 뛰어넘을 수가 없이 거기에서 멈춰지는 그런 경향이 있으니 항상 마음을 안으로 굴리면서 지혜를 넓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이전글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21.10.25
- 다음글사람이 달라지질 않아요 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