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잡아다가 방생한다는 것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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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잡아다가 방생한다는 것이…

본문

질문

예전에 아는 사람이 방생하러 간다고 하기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제 생각엔 고기를 일부러 잡아다가 방생한다는 것이 좀 이해가 안 갑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는데 이런 방생도 부처님 뜻에 맞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건 놀부의 짓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에만 넣으면 사는 줄 알지 마십시오. 물도 몫몫이 다 있어요. 여러분이 볼 때는 물이면 물, 그냥 다 똑같은 줄 아시지만, 우리가 또 어떤 동네라도 영등포가 있고 종로가 있듯이, 또 그 어구에 들어가면 지게꾼도 ??야, 너 여기 어딘 줄 알고 들어와? 여기 구역은 내 구역이야.?? 이렇게 합니다. 이런 거와 마찬가지로 물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통방통합니까.
 
그렇듯이 고기도 다 자기 자리를 알고 고향을 알고 그러기 때문에 방생을 한다고 고기를 다 집어넣으면, 개흙에서 사는 게 있고, 또는 모래 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게 있고, 또 자기 고향 찾아서 가는 게 있고, 거북이도 그렇고 붕어도 그렇고 자기 고향을 다 찾아갑니다. 그러니 붙잡는 데 죽고 갖다가 놓는 데 죽고 또 담아 가지고 가는 데 죽고 갖다 넣는데 죽는단 말입니다. 또 갖다 넣으면 저 놀던 데로, 저희 집으로, 십 리가 되든 오백 리가 되든 그것은 한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집 찾아가느라고 허기가 져서 죽기도 하고, 또 그 물에 넣어서 병이 들어서 죽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게 다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거기다 이름을 쓰고 온통 야단을 해서 거북이도 넣고 그러지마는 그거는 자기를 자기가 죽이는 일입니다. 달리 살생이 아니라 그게 살생이라고요. 그러니 얼마나 고생을 시키는 겁니까. 여러분이 그 원리를 몰라서 그렇지 그 원리를 안다면 너무 고생시키는 겁니다.
 
우리도 예전에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징용으로 끌어가서 탄광으로 붙잡아 갔거든요. 탄광으로 가 가지고서는 8?15해방 때 딱 놔놓으니까는 제 집 찾아가느라고 전부 그러다가 삼분의 이가 죽었습니다. 그 짝이에요, 딱 아주. 그러니 여러분이 방생이라고 해도 그건 방생이 아닙니다.
 
방생이라는 게 왜 생겼느냐 하면, 그전에는 많은 미꾸라지와 남생이, 뭐 자라, 새우, 또는 붕어 이런 것들이, 지렁이 뭐 할 것 없이 그냥 산중에도 비가 오면 쭉 널렸었어요. 그러면 스님네들이 어떡한 줄 아십니까? 깡통에다 물을 담아 가지고 거기다가 죄 흙바닥에서 펄펄 뛰는 거를 담아서 이렇게, 어떤 땐 손으로도 집고 그러는데 손으로 집으면 그 비늘이 없어지면 죽을까 봐 이거를 그냥 어떠한 그 체로다가 이렇게 해서 담아 가지고서는 쏟고 쏟고 이렇게 해 가지고 물에다 갖다 넣어 준 게 그게 아마 유래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놀부처럼 잡아다가, 남 잘 사는 걸 잡아다가 그렇게 물에다 도로 놔 주는 게 방생이 아니라, 고기가 물을 잃고 바닥에 나와서 펄펄 뛸 때 그때 집어넣어 주는 게 방생이에요. 그리고 방생이 무슨 고기 방생만 해서 방생이 아니고요, 방생이라는 것은 어머니 없고 아버지 없는 고아가 정말 학교에도 못 가고 또 먹을 것도 못 먹고 고독하게 이리저리 저거 한다 할 때, 그때 참 보살펴 주는 게 방생이요 둘째, 또 사람이라는 것이 그 먹지 못해 부황이 나고 이럴 때 보태 주는 게 방생이요. 있는 것을 가서 내가 그냥 이름나게 하느라고 방송국에 갖다 내고 그러는 건 방생이 아니에요, 사실은. 특히 이 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내 주머니에 오백 원이 있으면 가다가 차비가 없어서, 백 원이 없어서 앨 쓰는 사람이 있다면 백 원을 주시되, 주시는 사이 없이 주시면 그 백 원은 이자가 늘어서 삼백 원이 들어옵니다. 여러분은 그 묘법을 모르실 겁니다, 아마. 여러분의 마음이 우주 법계를 돌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걸 몰라서, 요 물질 하나만 가지고선 요러니 이게 나가서 이자를 붙여올 수가 있어야죠. 장속에는 금이 있어도, 이자를 붙이지 않는다면 그 금이 늘어나갑니까. 그러니 점점 좁아지고 그저 곶감 꼬치 빼먹듯 빼먹기만 하니 점점 줄어갈 수밖에요. 그러니 마음이 가난하면 집안도 가난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보면은 도와주고, 또 죽을 사람 있으면 살려 주고, 또 줄 사람 있으면 주고, 또 받을 게 있으면 받고, 이렇게 하다 보면, 남을 살리면 언젠가는 그 사람이 또 나를 살려 주게 됩니다.

또한 방생이라는 건 물질만 방생이 아니라 이 마음, 이 마음으로 주는 방생은 영원한 것입니다. 남이 괴로워 할 때 마음의 안위를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내서 한마디 해 준다면 그것도 방생이요, 모든 게 마음 한생각을 잘 내 주는 것도 이게 방생입니다. 마음 하나하나 내 주는 게 전부 방생입니다. 이 도리를 공부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서 이끌어 주는 것도 역시 방생입니다. 우리가 방생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모두가 자기한테 하는 겁니다. 우연히도 없고 공짜도 없습니다. 다 자기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방생한답시고 억지로 잡아다가 놔 주는 놀부 방생을 하지 마시고 마음을 인의롭게 써서 전부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 버리는 마음, 일체 방생하는 마음으로 보살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데 가재가 살겠다고 길을 막고선 두 팔을 이렇게 벌리고선 오똑하게 서 있습디다. 길을 가니까 밟을까 봐. 그것도 살 양으로 하는 거죠. 내가 그걸 보고선 껄껄 웃었습니다. ??야, 가재야. 너는 왜 가재라고 이름을 했지??? 하면서 ??너도 살겠다고 그러는데 연쇄적으로 전부, 생명이 있는 거는 전부 살겠다고 이렇게 나서는구나. 내가 너를 왜 밟니? 미리 그렇게 좌절하고 그러지 마라.?? 하면서 그 풀이파리로다가 이렇게 끌어서 물에다 넣어 주곤 지나갔습니다마는, 그게 방생입니다. 방생이 어떤 것이 방생인지 그것을 똑똑히 아셔야 합니다. 물이 강이나 어떤 연못이나 이런 데서 수증기로서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거든요. 그래서 땅으로 스미는 것도 있고 강으로 흘러서 그 바다로 들어가는 물도 있고 연못에 그냥 고이는 물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절간에 그냥 많은 미꾸라지나 거북이나 새우 뭐, 이런 거 고기들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예전엔 물에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많이 잡아 내기 때문에 그렇게 그렇질 않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그냥 마당에, 도량에 그냥 펄펄 펄펄펄 뛰었습니다. 그럼 스님네들이 ?야, 방생하자.?? 하고선 통을 들곤 주어 담아서 물에다가 갖다 넣어 주곤 했습니다. 그게 방생이지, 도대체 여러분은 왜 물에 가만히 노는 걸 잡아다가…. 자꾸 갖다가 사 가지고 넣으니깐 자꾸 잡아오죠. 그 어린 것들을 말입니다. 왜 그럽니까?

방생이라는 것은 만들어서 방생을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방생을 하려고 놀부처럼 잡아다가 또 넣는 게 방생이 아니라 스스로서 남이 괴로워할 때 마음을 내서 한마디 해 줘서 바로 마음의 안위를 가질 수 있어도 그것도 방생입니다. 또 물질적으로 없어서 참 애들이 등록금을 못 낸다거나 이래도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걷어서 그 학비를 내게 해 주면 그것도 방생입니다. 물이 없어서 물 바깥에 나와서 펄펄 뛸 때에 물에 넣어 주는 것이 방생입니다. 마음 하나하나 내 주는 것도 전부 방생입니다. 우리가 방생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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