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잘 쓰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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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마음공부도 잘하고 싶은데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음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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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이 인간으로 살면서도 마음을 잘 쓴다는 것이 여러 가지를 포함해섭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겪어 보니깐 내가 그걸 너무도 잘 알겠어요. 이거는 밖으로 보고 들이는 것도 자기가 하는 거고 안에서 나오는 것도 자기가 나오는 건데 그거를 분리해서 자꾸 생각들을 한단 말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주인공 속에서 나오는 것이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고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현실에 생각하고 가는 것도 그놈에서 나오는 거요, 안에서 나오는 것도 그놈이 하는 겁니다. 즉, 들이고 내는 게 다 그놈이 하는 거란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 안에서 스스로 나오는 그 참자기의 뜻이 아니라면 이 겉으로 보고 사량으로 돌리는 게 어두워요. 요렇게 요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요거는 이렇게 이렇게 할 생각이 돌지 않는 거죠. 이게 돌질 않으니 어떡합니까, 글쎄? 하나하나 이건 말로 이루장창 할 수가 없는데. “아이, 스님.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이렇게 됐으니 어떡합니까?” 이러면, 내가 생각할 때는 자기가 분명코 생각을 해서 그렇게 한 건데 생각이 엉뚱나가게 돌아가고 있어요, 생각 자체가. 그 사람으로 돼 가지고 생각이 어떻게 그렇게 엉뚱나가게 생각이 안 나느냔 말입니다. 간단하게 해치울 것도, 그것이 바로 두 놈이 아니고 그 한 놈도 없다고 만날 말을 하는데도 아이, 그걸 두 놈으로 갈라놓고선 이건 사량이고 이거는 내 주인공이 하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하는 것도 없고 내가 사량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도리를 알아야 사방천이 밝아서, 참 스스로서 그 오온이 밝아서, 칠보가 정말 가득 차 있어서 내가 그대로 자유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그렇지 못하고는 항상 끄달린단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남편이 일을 갔는데, 석 달 기한을 하고 일을 갔다 이겁니다. 그런데 거길 가는데 “스님, 거길 가니깐요, 애 아빠가 그냥 먹질 못하고 일은 고되고 그래서 아주 그냥 뭐 다 죽게 생겼어요.” 그런단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냥 갔던가?” 그러니까 “네.” 이런단 말입니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어딨습니까. 여자로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자식이든지 남편이든지 부모든지 그걸 불문에 붙이고 말입니다. 그래, 가는데 먹지 못하는 거 번연히 알면서, 일 고되다는 거 번연히 알면서, 지금 굶어 죽는 거 아니고 벌어다가 그래도 예금통장에 조금이라도 넣고 사는 사람이, 그래 맨손으로 그냥 가요? 아, 생각해 보세요, 글쎄. 아니, 왜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말입니다. 고런 일에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간다면 다른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이 통이 똥그랗게 된 통은 똥그란 뚜껑이라야 맞고, 네모가 난 통은 네모 뚜껑이 맞는다. 그것이 맞지 않는 거라면 이건 세세생생에, 즉 말하자면 지옥이니라.” 이상에 맞지 않는 부부라면은 이건 지옥이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업을 짓는 거는 더 말할 수 없거니와 돌부처도 돌아앉게 된다 이 소립니다. 이 업 짓는 것도 자기네들이 맞지 않게 해 놓고 자기네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경험을 못하고,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물에도 들어가 보고 구덩이에도 들어가 봐야 그 깊이를 아는데, 그건 여기저기 다 다니면서 자기가 체험을 해 보지 않는 반면에서 나오는 어두운 마음이거든요. 밝은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체험해 보는 데서 무지한 밝음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실패를 해 가면서 연구를 거듭거듭 해 봐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하면서도 자기가 자기를 뜻을 보려고 테스트하는 건 모르고 어떠한 게 나타나도 그거 또 둘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난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 자리에 다시 놓으면 될 것을, 이걸 둘로 보니깐 온갖 집안이 형편없이 그 자기의 마음의 분신이 이것저것 생겨 가지고는 온통 집안이 우환이 끓는 겁니다. 그러니 모든 걸 태워 버리고 모든 것을, 우환을, 가난 또는 병고, 인연, 유전, 업보 이런 것을 모두 떼 버리려면 나 자체가 없어야 됩니다. 붙을 게 없어야 돼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 자체도 없고 너 자체도 없고 중생 부처도 없고, 이것은 이름이 부처요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진의를 몰라서 이거는 무지하게 그런 문제가 있어 가지고는 그냥 끄달리고 돌아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물질적인 거를 가지고 야, 이건 불쌍하다, 이거는 뭐가 어떻고 너는 나쁘고 너는 좋고…, 이렇게 따지지 말라 이겁니다. 모든 거는 잘되고 못되는 건 한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한생각에. 잘되고 못되는 게 한생각에 달려 있다 하는 것은 잘되고 못되는 것을 다 놔버린 상태에서 그대로 한생각으로 굴려서, ‘아하! 너는 아주 불쌍하니까 그냥 내내 너는 사람으로서 틀림없게 살고 또 성공해라. 그리고 이 뜻을 잊지 마라.’ 하면은 그냥 그대로, 그대로 가는 거거든요, 그게. 그대로 가는 건데, 그런 무주상 보시가 부처님한테 있고 보살한텐 있는 건데, 야! 이놈의 이것이 어떻고 저것이 어떻고 이런다면 무주상 보시는 벌써 없어지고 마는 거예요. 벌써 이게 가로 걸려요. 이 물질이 벌써 생각에서 가로 걸려서 그렇게 길이 밝혀지질 않게 되죠.
이 물질이라는 거, 예를 들면 여러분은 자식이 지금 금방 죽을까 봐 겁나고 공부 못할까 봐 겁나고 그냥 뭐 금방 야단이지마는, 자식도 나도 다 없는 겁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하는 것도 그 자체 내에서, 다 오고 가는 데서 자기 꺼지는 불은 꺼지고 생기는 불은 생기는 거지 뭘 그럽니까. 자식들이 고만고만해서 이 자식들을 누구한테 맡길 데도 없고 그런데 자기가 죽는다면 그 자식들을 길러 놓고 죽는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그 자식들 다 내버리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죽는 겁니다. 그런데 죽을 때 난 저 자식들 길러 놓고 죽는다고 하고 죽나요? 못하죠, 죽는 길에는. 이렇게도 죽고 저렇게도 죽고 그러는데 뭐 야단들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금방 내 자식 죽는다, 내가 죽는다, 내 가족이 죽는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라야만이 죽지 않고 오히려 밝아집니다.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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