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한 분만 모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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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른 절에 가면 신중단이니 지장전이니 관음전이니 대웅전 외에도 여러 보살님들을 모시고 있는데 스님께서 부처님 한 분만 고집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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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양 무제가 그렇게 절을 짓고 별의별 짓 다 하고, 옷을 갖다 주고 먹을 걸 다 갖다 주고 그렇게 시주를 많이 했는데도 달마 대사는 서슴지 않고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공덕은 하나도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타신을 찾아서 빌면 모든 것을 태산같이 차로 실어다가 놓고 빌어 봐도 그건 공덕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무를 본다면 그 나무 몸체와 가지와 잎새, 그 모든 것을 위해서라면 어디다 물을 줘야 됩니까? 뿌리에다 물을 줘야 바로 이파리도 싱싱하고 모든 게 다 싱싱하고 열매도 굵고 크게 열립니다. 뿌리에다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해서 그렇게 가꿔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자기 뿌리에다 주질 않고 항상 남의 이름을 찾고 모습을 찾고 온통 야단입니다. 이 이름 찾고 저 이름 찾고, 칠성을 찾아서 명을 길게 해 달라고 빌질 않나, 또는 지장을 찾아서 좋은 데로 가게 해 달라고 그러질 않나, 또는 용신을 찾아서 물에 가더라도 물에 빠져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러질 않나, 지신을 찾아서 길에 가다가 급살을 맞지 않게 해 달라고 하질 않나, 약사를 찾아서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그러질 않나. 그저 요기 놓고 빌고 조기 놓고 빌지 않으면 마음들이 개운칠 않아서, 만약에 요기 놓고 요기 놓질 않으면 ‘아이구, 우리 남편이 잘 안되면 어쩌나. 우리 자식이 잘 안되면 어쩌나?’ 이런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 관습에 의해서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한 아버지에다가만 약속을 하면 됐지, 한 아버지에게만 약속을 하면 그 아버지가 남편 노릇 할 때에 또 할 거고 자식 노릇 할 때도 할 거고 다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식이 따로 있고 남편이 따로 있고 아버지가 따로 있고 할머니가 따로 있고 형님이 따로 있는 줄 안단 말입니다, 모두. 부처님의 마음이, 그래서 생각을 내셔서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이 동방에는 아촉이요, 서방에는 아미타요, 이 세상 사바세계에는 관세음이요, 지천국에는 지장이요, 모든 사람들이 그 병고에 휘달리는 데에 응해 줄 수 있는 거는 바로 약사보살이요, 이렇게 이름을 지어 놨단 말입니다. 이래도 이해가 안 갑니까? 한 부처님이 하시는 거나 한 가정에 아버지가 하는 거나, 이게 비유를 한 겁니다.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앞에 다 얘길 해도 되는 건데 그만 요기 갖다 놓고 빌고 조기 갖다 놓고 빌고….
그것이 어디서 생긴 거냐. 이조 때 불교를 탄압할 때, 스님들이 도대체 먹고 공부할 수가 없어서 산신이니 독성이니 칠성이니 죄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은 겁니다. 예전에는 정성을 들이면 쌀 한 말이면 큰 됫박 말이었죠. 부처님한테 그거 한 말만 갖다 놓으면 뭘 먹고 공부를 합니까. 그러니까 여러 군데다가 갖다 놓고 빌어야만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는 이상에는 좀 그것을 알아서 좀 벗어나기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근데 영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종교에 자유스럽고 한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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