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중요한데…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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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중요한데…

본문

질문

마음공부를 하는 데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공부한다 하면서도 막상 어떤 큰일에 부닥칠 때는 내가 할 수 있을지 겁부터 먹게 됩니다. 정말 믿는다면 그러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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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좀더 이 공부를 하게 되면은 깨닫고 안 깨닫고 그걸 떠나서 자기를 자기가 진실로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옛날에 약초를 캐는 어느 착한 나무꾼이 하나 있었습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약초를 캐면서도 항상 그 어머니를 잊지 못한 채, 나오면 며칠이 걸리니까, 한 달도 걸리고 그러니까 그 어머니를 위해서 항상 마음의 기도를 하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약초를 캐다가 고만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서 아주 몹시 다쳤습니다. 산골에서 다쳐 가지고 내려올 수도 없고 그러니깐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어느 대선사가 나타났습니다. 나타나서 하는 소리가 “너 낳기 이전 너의 아비는 지금 네가 다친 꼴을 보고 울고 있구나. 아비는 울고 있고 아들은 아파하는구나.”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고 울다가 말고 그렇게 여쭈니 “바로 네가 생기기 이전 너는 지금 울고 있는 그 마음이니라. 네 몸이 아파하면 네 마음이 의욕이 없어지는 것도 네 아비가 자식을 위해서 의욕이 없어지느니라. 네가 의욕을 잃지 않는다면 그 아비도 의욕을 잃지 않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아비는 더하고 덜함이 없기 때문에 너 하는 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말을 해 줬습니다. 그러고는 간 곳이 없어졌으니, 그러자마자 다리가 일어나도 안 아프더랍니다.
 
그래서 나무를 하러 다니든 약초를 캐든, 어떠한 짐승이 있든, 불쌍한 걸 보든 항상 이 창문을 통해서, 이 두 눈을 가지고 말하는 겁니다. ‘창문을 통해서 아버지가 똑똑히 보시고 이것 좀 살려 주셔야 되겠습니다.’ 했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본다고 했습니다. 이 눈은 창문에 지나질 않아요. 눈이 아니에요. 창문에 지나지 않고 그 창문 속에는 진짜 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비의 눈이라고 했어요. 그 아들은 자기의 눈이 눈이 아니고 창틀이고, 그 창틀 속에는 바로 아비의 눈이 시퍼렇게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항상 그러던 중 어느 날 부랴사랴 이 약초를 또 캐러 가다 보니까 덫에, 이렇게 깊이 흙을 파고선 그 덫을 놓지 않습니까? 고만 그 풀을 딛고 가다가 고만 산돼지가 그 덫에 걸렸단 말입니다. 그래 빠졌겠죠? 빠졌는데 이 나무꾼이 가다 하는 소리가 그걸 보고 “아버지!” 하고, 대답이 있겠습니까? “아버지!” 그러니까 “왜 그러느냐?” 자기가 그런 겁니다. “저 돼지가 덫에 걸려서 저렇게…. 저 생명도 생명이거늘 어찌 그냥 보고 가겠습니까, 보지 못했다면 모르지마는.” 하니까 “그럼 네 맘대로 살려 주려무나.” 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이렇게 자기가 또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하고선 그 떨어진 나뭇가지 아주 기다란 걸 가지고 가서 거기다가 이렇게 넣어 놨습니다.  그러니까 돼지는 거기에서 그만 그걸 밟고 나왔습니다.

예전의 산돼지는 사람도 잡아먹고 그랬답니다. 그러나 산돼지더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비가 너를 살려줬거늘 앞으로 네 모습을 벗고 사람이 되려면은 사람을 해치지 말라.” 그랬습니다. 돼지가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그 돼지는 산에서 으뜸가는 맹수가 됐습니다. 그 사자라는 맹수가 됐는데도 글쎄, 돼지는 그때의 그 나무꾼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몸, 모습을 바꿔서 맹수가 됐는데도 그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무진 노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 몸까지 그 나무꾼에게 바쳤다는 얘깁니다. 그건 뭐냐. 그 나무꾼의 못 잊은 그 마음과 이 맹수의 마음은 항시 둘이 아니어서 고만 이 모습도 벗으니까 아주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대인이 됐다는 얘깁니다.  대인이 돼서 참 어진 정승으로서 많은 중생들을 제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이 얘기를 했냐 하면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이 몸이 아프거나 또는 어딜 다치거나, 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이런다면 아예, 참 살 의욕이 없어지는 듯합니다. 여러분을 볼 때 참 내 가슴이 아플 때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만 고치는 게 부처님 법인가?” 이러지마는 그게 아닙니다. 보석이나 뭐나 다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죽게 된다면 아무 의욕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 얼마나 묘합니까? 그러니 자기 몸을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 겁니까? 야, 몸뚱이가 좀 아프다고 해서 그 마음은 얼마나 의욕이 없어지고 참 그냥 슬프고 눈물이 나고 이러거든요. 아이, 생각 한번 해 보세요, 얼마나 자기를 자기가 사랑하나.
 
그런데도 믿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가 아프면은 서로 같이 아파 주고 울면 같이 울어 주고 의욕이 없어하면 같이 의욕이 없어하는데도 불구해 놓고 자기를 자기가 업신여기고 못 믿어서 저 먼 데 부처님이 계시다 하면은 그냥 ‘부처님, 날 좀 도와주시오. 이 몸 아픈 것 좀 낫게 해 주시오’ 하고 빌곤 합니다. ‘우리 남편 낫게 해 주십시오. 우리 남편 잘되게 해 주시오. 자식 잘되게 해 주시오. 나 몸 좀 안 아프게 해 주시오.’ 하고선 빌고 있다 이 소립니다. 그러면 얼마나 멉니까, 그게?
 
바로 사랑하는 나에게 내 자부처가, 자신(自神)이 계신데도 불구해 놓고, 일체 신이, 바로 한마음에 계신 거를 알면서도 그것을 못 믿고 그렇게 빙빙빙빙 돌아간다면 앞으로 어떻게 내 몸과 내 국가, 가정 이런 거를, 내 자식을 어떻게 길러 나가면서 어떻게 그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것입니까? 네? 지금 현재뿐만 아닙니다. 세세생생에 끝간 데 없이 말입니다. 우리 끝간 데 없이 수억겁 광년이라 할지라도 일 초에 달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마음의 도리를 의심치 말고 믿으십시오. 자기의 자신의 주인공을 믿으시면서 거기다가 일체를 다, 들이고 내는 건 다 거기서 하는 겁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닫을 때 저 빗장을 쥐지 않는다면 열고 닫을 수 없습니다. 뭐 길게 말한다고 해서 공불 잘하고, 또 짧게 말한다고 해서 공불 못하는 게 아니니 심사숙고하셔서 앞으로 조그만 것, 가정에서나 또는 회사에서도 그렇고 실험을 통해서, 가고 오면서도 그걸 한번 침착하게 생각해 보실 그런 여건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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