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는 마음으로 마음을 녹이는 거라는데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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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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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는 마음으로 마음을 녹이는 거라는데

본문

질문

이제 새해를 맞이하면서 촛불재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제가 어느 스님께 절에서 천도재를 모실 때 스님들께서 영가를 보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조상 영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마음을 녹여 주시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천도하는 조상의 모습을 못 보면서 어떻게 재사를 모시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옛날에 이런 점이 있었죠. 어느 분이 재사를 지내러 왔는데, 처음 오시는 분인데 그 난리 때 어떻게 돌아가셨대요, 부모님이. 그랬는데 내가 왜 부모를 담요에다 이렇게 싸서 그냥 아무렇게나 그냥 묻었느냐 이랬어요.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때 난리 때에 그 담요을 깔고 돌아가셔서 담요 깐 채 그냥 말아서 치웠다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런데 "그게 잘못 됐습니까?" 하고 물어요. 지금 우리가 하고 다니는 모습이나 죽어서  그렇게 해 가지고 있는 모습이나 보는 사람이라면 좋지 않지 않겠느냐. 그리고 참 공경이라기보다, 은혜라기보다 그건 떠나서라도 좀 잘 해서 묻었으면 좋지 않겠느냐 이렇게 얘기했더니만 "그렇겠습니다." 그러고선 인제 말이 없었어요.
 
고다음에 어느 친척 분이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또 재사를 지내러 왔는데, 법당에 이 조상이 올라가시는데 말이에요, 발뒤꿈치에 이만한 솜 한 덩어리가 달려서 올라가요. 그래서 그것을 자세히 봤어요, 솜 한 덩어리를. 그래서 자세히 보고는 다 지내고 난 뒤에 인제 그랬어요. 왜 조상님 발뒤꿈치의 솜은 떼지도 않고 염을 했느냐 이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발뒤꿈치에 부스럼이 나서 아주 저거 해서 떼지 못하고는 그냥 뒀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근데 떼지를 못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소독약으로 저거 해 가지고 딱 뭘로 붙여 놓지, 어떻게 그렇게 흉하게 그렇게 했느냐 이러고 했더니만 너무도 기가 막혀 해요. "그거를 떼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 내가 그것을 보고서 그것을 봤다고 하는 게 옳겠습니까, 봤어도 보지 않은 것처럼 하고 그냥 떼 버리는 게 좋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 그런 분들이 더러 많죠. 6대조 할아버지라든가 5대조 할아버지라든가 증조할아버지라든가 그 할아버지가 할 일을 못해서 태어날 때 그 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수가 있죠. 그 집으로 다시 태어날 때 그 모습을 아주 닮아서 그냥 나오신다고 그래요. 그러나 그 양면의 모습을 찾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그 인연이 된 마음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지낼 때에 '그 본다 하더라도 봤다고 하지 마라.' 한 뜻이 그런 연고로 그런 말을 하지 마라 했던 거고 또 그런 말을 묻걸랑은 "'마음으로 연결이 돼서 조상님들 다 봤습니다.' 이렇게 하거라." 이런 얘기를 한 예가 있습니다.
 
어느 땐가 인제 여기 스님네들이 안 들어왔을 때 그전 얘깁니다만, 이거 잘 들으셔야 합니다. 조상님이 돌아가 총에 맞아 죽었나 봐요. 알지도 못하는 조상인데 총에 맞아서 피를 줄줄줄 흘리고 이 옷이 뭐 아주 말도 못해요. 줄줄 흘리고 그냥 들어와요. 그런 거 만약에 이 중이 모자란다면 그런 걸 보고 그냥 깨끗이 해 드릴 수 없다면 문제가 크죠. 그런 걸 깨끗이 입혀 드리고 그런 걸 다 닦아 드리고 목욕시켜 드리고 이렇게 해서 올리는 거는 이 중들의 책임이란 말입니다. 모르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이 중들의 책임인 것이 뭐냐 하면 "함이 없이 하라. 응신이 된다 하더라도 응신으로서 함이 없이 하라." 이게 보살행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그분의 조상님, 저 천도시킨 그분의 꿈에 "참 고맙다. 나는 이렇게 잘 입고 목욕하고 이렇게 인제는 아주 세단차를 타고 간다. 참 고맙다. 잘 살거라." 하고 가더랍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그게 총에 맞으셔서 그랬는데 어느 때에 그랬느냐 하니깐 6?25 초기에 그랬답니다. 묶여서 그냥 그렇게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거를 씻어 낼 수 없다면, 이 지금 마음공부 하는 분들이 왜 그 공부를 해야 하느냐. 그거를 씻어 낼 수 없다면 이 생시에 그냥 곤욕을 받는 겁니다. 이 보이지 않는 데서 구정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괜찮은데, 보이지 않는 데서 구정물이 들어와서 진탕 만탕이 된다면 그 고통을 산 사람들이 그냥 받습니다. 그 백지장 하나 사인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관하시라. 놓으라. 아주 믿고 놓으시라. 입력이 돼서 그러니까 그 입력을 없애야만 되니까 그냥 의심하지 말고 놓으시라." 이렇게 말합니다. 의심을 하고 또 의심 안 하고 했다가 또 의심을 하고 또 의심…. 그러면 줬다 뺐었다 줬다 뺐었다 이게 그냥 망가지죠.
 
어떤 분은 그 임신을 해서도 아주 어려운 집이죠. "스님, 병원에 가니까 기형아라 그러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기형아가 무슨 기형아야? 기형아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자꾸 관해." 그랬어요. 그 말은 그렇게 아주 간단하고 쉽죠. 근데 그 일을 하는 데도 간단합니다. 간단한데도 그게 그만큼 그 일을 할 수 있게끔 자기를 만든 그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 일을 간단하게 할 수 있게끔 한 자기가 얼마나 고생이 됐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하니까 고생이 아니에요. 어떻게 내가 그런 공부를 하게 됐고, 어떻게 해서 그런 걸 알게 됐으며, 어떻게 해서 만법이 이렇게 찰나찰나 이렇게 들이고 낼 수 있었을까. 이런 걸 전부 알았을까. 이 한 지구 안에서도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나라,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 거를 그 나라에서 그래도 누가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이게 개선돼 나가죠. 그래서 생김생김이가 그 유달리 참 보기 흉하게 생긴 분들도 저 외국에 보면은 많이 있습디다. 그런 걸 볼 때 참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래도 세 번 탄생을 했다가 또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래도 고르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그것을 막상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그때에 왜 그것을 떼 주지 않았느냐, 왜 또 그렇게 저 담요에다 말아서 그냥 그렇게 했느냐, 그리고 왜 그 방바닥에 그냥 그 담요가 타서 죽게 만들었느냐, 언제 돌아가셨기에 피를 그렇게 흘리고 총에 맞았느냐. 이게 물은 것이 그 후의 생각에 '아이고, 그걸 차라리 내가 안 물었더라면….' 이런 후회감이 들더군요. 아는 분에게 그렇게 했으면 상관이 없을 텐데 모르는 분한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 좀 문제가 야릇하게 아는 사람으로 고립되게끔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알면서도 함이 없이 해라, 앎이 없이 해라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함께 살던 분들은 그냥 조상들의 상호를 알 수 있으나 위 조상들은 모르죠. 그러나 이런 말이 있죠. "보는 것도, 또 어디서 온 것도, 남의 마음도, 가고 옴도, 듣는 것도 모든 거를 거기다가 개입시키지 말고 그냥 놓고 응신으로서 응용하라. 보는 거를 본다 하지 마라. 그건 도가 아니니라." 이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응용할 때 이거는 항상 여러 스님네들한테 그렇게 말합니다. "봐도 본 사이 없이 봐라. 해도 하는 사이 없이 하라. 가고 옴이 있더라도 가고 온다 말하지 말고 걸림 없어라." 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이 모르는 분들은, 아는 분은 그러지 않겠지만 모르는 분들은 그 말에 꼭지를 뭅니다. 그래서 잘못 빗나가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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