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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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본문

질문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믿음을 갖고 참된 도의 길을 갈 수 있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지금 종교라고 해서 믿고 다닌다 이런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종교를 믿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들, 이 껍데기인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살고 있고 이끌어 가는 내가 있으니까 꼭 그것은 서로가 상봉하고 받아야 되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믿어야 되겠다. 믿지 않는다면 나를 누가 믿으며 내가 딴 사람을 누구를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를 내가 믿어서 발견할 수 있는 거. 진짜로 믿지 못한다면 모든 게 허사죠. 이 세상에 모두 믿을 거는 나 하나를 잘 믿을 수 있어야만이 전부 믿을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그렇게, 일로 가는 길도 일로 올바르게 가게끔, 자동적으로 되게끔 이렇게 마련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법이 얼마나 자동적이고 얼마나 신비한지, 정말이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신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에 가 보시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다 이렇게 살아 보시지만, 인생은 살아 보면 살아 보는 대로 맘대로 말할 수도 없고 맘대로 들을 수도 없고 맘대로 할 수도 없고, 만날 갇혀 있는 거나 같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곳곳마다 가는데 누구를 만나는 데마다 섭섭지 않게 하고 섭섭지 않게 행동하고 항상 웃고 말할 수 있고, 어떠한 성낼 일이라도 성 안 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혜입니다. 모두 여러분이 지혜로워서 성내고 말할 거를 성 안 내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길이 잘 가지 못하게 돼 있는 거를 아주 평탄하게, 판판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이 마음으로 길을 만드는 것은 마음대로 길을 만들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우리가 파고 자르고 모습으로 이렇게 하면서 길을 내는 거는 길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그것은 내가 진짜 살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 사람 공장에서 하는 일이죠. 이 지구가 사람 만드는 공장이라면 말입니다. 사람 만들어질 때까지 얼마나 겁을 지내면서 고통을 받는 줄 아십니까? 사람 돼 가지고만 고통 받는 게 아니죠. 수없이 모습을 바꿔 가면서 나왔는데 또 다시, 또 다시 우리가 이 공부를 우습게 생각하고 해서 지금 살아서 느껴보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그냥 도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모습을 가지고 또 나온다면 그 모습을 벗기 위해서 또 앨 써야 되니까요.

아주 쉽게 생각하면 자길 믿어야 부처님이 믿어지죠. 그렇죠? 부처님이 그러시더랍니다. "얘야, 아픈데 일어나지 마라. 내 모습을 보고 일어나지 마라. 네가 너를 진짜로 믿는다면 나의 모습 없는 나도 네가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진짜 그냥 우습게 생각하고 '인생은 사는 게 이런 거야.' 하고 그냥 그렇게만 하고 가신다면 정말 인생은 거듭거듭 찾지 못해요.
 
진짜 돈을 쥐고 다니면서 나를 찾으려도 찾을 수 없고 내 자리를 찾으려도 찾을 수 없어요. 여러분의 자리는 이 우주 허공 중에 어떤 자리도 내 자리 아님이 없는 거예요, 알고 본다면. 그런데 그걸 몰라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수레바퀴에 그냥 엉걸려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가 그 도리를 안다면, 우리 지구의 에너지가 다 없어져서 인제 수억 년을 가면서 에너지가 된 거를 우리가 그냥 쓰고, 쓰고만 사니깐 없어질 수밖에요. 그런데 우리 마음공부는 이 지구의, 즉 말하자면 벽을 벽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이런 문도 문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그래서 문 없는 문을 알아야 된다. 이 보꾹도 문이고 이 천장도 문이고 다 이게 문이 아니 될 수 없죠. 글쎄 어디든지 그렇게 내가 자유스럽게 발판을 디딜 수 있다. 허공도 딛고 날 수 있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자유스러운지 모든 걸, 그걸 말로 어떻게 다 하리까. 말로는 다 못해요. 여러분이 보지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하고 해 보지도 못했으니까 거짓으로 생각할 거거든요. 그러니깐 그것을 말로 다 못해요. 그러나 여러분이 할 양으로 애를 쓰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겁니다.
 
정말 진짜로 가는 데마다, 곳곳마다 남을 만나는 데마다 그렇게 하라. 그렇게 웃고 살아라. 그렇게 빨리빨리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막 우그러져서, 즉 말하자면 조상이라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집안이 낭가가 났다 이러더라도 빨리 펴라. 빨리 펴야지 그걸 우물쭈물하고 이거 생각 저거 생각 하다가는 펴지도 못하고 그거를 해결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몸은 여기 있더라도 저 어디에 무슨 일이 있다 이럴 때도 그냥 거기 가서 해요, 그냥. 여기다 하면 거기 내 몸이 열로 변경을 해서 하더라도 다 할 수 있으니까. 내 몸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무라도 인연이 있으면 모습이 돼서 다 서로가 맞먹어 들어가니까. 이 소리 거짓말로 알지 마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경을 보고 외로 꿰고 바로 꿰고 안다 하더라도 그거는 도가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치가 이거를 알아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게 물질세계가 50%라면은 무의 무심세계가 50%입니다. 무의 세계의 무심. 그런데 언제나 내가 있는 데에 있는 거지 내가 없는 데에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 각자 내가 있기 때문에 불성이 있는 거고 자불이 있는 거고, 그 자불이 자기가 알아지면, 상봉을 하게 되면 연등불이 되고 그렇게 화합니다. 그런 수없이 말로 형용할 수 없고 생각으로 형용할 수 없는 일들을 그렇게 아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이치.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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