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낫게 해 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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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경기도에 어떤 기도원이 있는데 현대 의학으로써 나을 수 없는 암이라든지 백혈병이라든지 다른 기타의 병들도 거기 기도원에 가면 낫게 해 준다고 합니다. 거기에서는 우리 마음에서 찾는 주인공이 낫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낫게 해 준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다 맡기면 예수님이 알아서 다 낫게 해 주신다고 하는데, 저희들이 주인공에 믿고 맡겨서 병고액난을 해결해 나가는 것과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믿고 낫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요? 누가 낫게 해 주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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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항상 그러면 바깥의 노예가 돼야 되지 않을까요? 항상 빌어야 하고, 항상 낫게 해 달라고 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불교에선 그렇질 않아요.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즉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 세세생생에 벗어나려 하는 사람들은 말입니다, 이 마음은 체가 없어서 너와 내가 말을 할 때, 벌써 이 전기가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해지는 순간이에요. 합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한쪽에서 ‘네가 불이 들어오게 했다. 내가 불이 들어오게 했다.’ 이렇게 할 수가 없단 얘기죠. 알아듣겠어요? 양쪽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쳐야 불이 들어오죠. 그러니까 이쪽 놈이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저쪽 놈이 했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 하하하. 그러니까 말을 하는 순간에 이 마음과 마음은 전기와 같이 탁 붙어서 불이 들어왔다 이겁니다. 그랬으니 어떤 놈이 낫게 해 줬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네 마음, 내 마음이 둘이 아닌 데서 불이 번쩍 켜진 거죠.
그러니 그거를 가지고 부처님께서 낫게 해 주셨다 이런 소리를 할 수 있게끔 되는 거지요. 그런데 왜 부처님이 낫게 해 주셨다고 안 하고 ‘당신네들이 할 수 있다. 당신네들이 낫게 했다.’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한 열매가 열려서 익어서 만 가지 맛을 내게 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기가, 자기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상대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낫게 했지요. 안 그런가요? 업보도 자기가 짓는 거요, 선보도 자기가 짓는 거요, 바로 애고도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이요. 그러니까 자기가 무너뜨리는 것이니 자기가 하는 것이지요.
사랑도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지 받는 것이 사랑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부모가 자식을 생각을 할 때 때리든지 안 때리든지, 욕을 하든지 욕을 안 하든지 부모는 자식을 무조건 사랑을 해요. 그거를 자비라고 해요. 무조건 하는 것이 자비예요. 거기 이유가 붙어서 사랑을 한다, 뭘 한다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진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자비가 될 수 없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여기서는 업보가 붙을 자리가 없다는 걸 강조하고 있지요. 병이 붙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여러분 자체가 없는데 병 붙을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없다는 그 자체는 너무 고정되게 있지 않고,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고, 걸어온 자체가 없고, 말한 자체가 없고, 이름을 부른 자체가 없어요. 자체가 없이 돌아가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말이에요. 그러고 돌아가니, 비유한다면 비행기 프로펠러가 돌아갈 때 아주 보이지도 않지요. 그런데 그렇게 돌아간다면 먼지 앉을 게 있나요? 우리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우리 의식이 그런 거를 몰라서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사니까 그렇지, 이거 하나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것도 (물컵을 가리키시고) 지수화풍을 통해서 바로 우주개공이 여기에도 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밖으로 “하나님이시여, 예수님이시여!”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바깥으로 끄달리는 것밖에는 안 됩니다. 바깥의 이름 하나를 가지고 붙들고 늘어지니까요. 그런다면 병은 더러 낫는다고 하지만 자기를 깨달을 수는 없어요. 자기를 깨달아서 자기가 벗어날 수는 없다 이 소리예요. 세세생생에 벗어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를테면 자기 영혼을 건질 수 없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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