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밝혀야 마음이 밝아지나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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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밝혀야 마음이 밝아지나요?

본문

질문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저희 신도들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서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고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나와 조상님과 더불어 밝히는 촛불재를 지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촛불재를 통해서 정성스럽게 불을 밝혀서 한순간에 그 어둠이 사라져 버린다면,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꺼져 버리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님들을 의지해서 밝혀야 하는 방편을 쫓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른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도리를 명백히 아셔야 하며 마음의 촛불, 즉 인등이 항상 밝혀져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 백 일 동안 켠다고 한다면 백 일 동안만 불이 켜져 있고 백 일 동안만 진리가 돌아가고 그럽니까? 생각들 해 보세요. 일 초도 쉬지 않고 우리는 생활을 하고 있고 또 찰나찰나 마음이 바뀌고 화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를 만날 땐 자동적으로 자식이 돼서 말도 행도 뜻도 그렇게 돌아가고, 또 아내가 오면 아내가 오는 대로 자동적으로 남편이 돼서 금방 “여보!” 할 수 있는 그런 자동적이고 자유로운 힘이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다는 거죠. 오신통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할 때가 여러분이겠습니까. 어떤 사람 만날 때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공했느니라. 색이 즉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니라. 너희들은 둘로 보지 마라. 모두가 한 찰나 한 찰나 돌아가는 그 이치를 알면 공한 도리를 알 수 있느니라.” 그러셨습니다. 만약에 나로부터 알 수 있다면, 여러분 육신 속에 업식이 한데 뭉쳐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움죽거리게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제일 먼저 설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 뭉쳐 있는 고덩어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만 알면 바로 즉시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과거에 걸어온 길을 짊어지고 나와서 그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악업이든 선업이든 그 업식 자체가 합쳐진 것을 ‘나’ 하나가 짊어지고 들어간 거죠. 아버지의 뼈를 빌리고 어머니의 살을 빌려서 그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바로 자기의 업식을 짊어지고 그렇게 여러분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이치로 따지고 볼 때 집만 얻어 가지고 여러분이 그 안에서 살림을 하는 거죠. 이것을 절실하게 생각하고 여기에서 공부를 하신다면 이 세상에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여러분의 보배를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또 인등도 인등이지만, 부처님께서 과거에 49년 동안 말씀해 놓으신 경전을 볼 때 “수많은 사생의 마음을 물방울이라고 비유한다면, 바다에 전부 들어가도 두드러지지 않고 다 퍼내도 줄지 않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물컵에 여러분의 마음 한 방울, 물 한 방울 넣어 보십시오. 컵의 물이지 한 방울의 물이 따로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자리는 어느 것도 붙지 않는 자리입니다. 체가 없으니 붙을 자리가 없죠.

더 말한다면 부처님의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면서 성장하는 마음 이런 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마음, 바로 내가 대신 죽어 줄 수도 있는 마음 그 자리에는 어느 것도 붙지 않습니다. 이유가 없고요. 자식이 물에 빠지면 부모는 그냥 들어가서 건지거든요. 자기 죽는 줄 몰라요. 거기 무슨 이유가 붙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와 같이 자식이 빠졌을 때 뛰어드는 그 순간의 마음, 자식을 생각하는 어버이의 그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과 둘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마음이 따로 있고 부처님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마음은 두루 하시고, 육의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두루 하지 못하는 차이는 있지만, 내 걸 다 버려서라도 너를 살리겠다는 그 마음은, 잘돼라 하는 그 마음은 부처님 마음과 같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더 큰 바다든 한 그릇은 한 그릇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작은 그릇에 물 한 그릇 떠도 한 그릇, 큰 그릇에 물 한 그릇 떠도 한 그릇, 더 큰 그릇에 물 한 그릇을 떠도 한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의 한 그릇이라고 해서 한 그릇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가 셋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이 하나가 돼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불법을 배운다고 해서 부모를 소홀히 하고 자식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 선원에서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초삼일까지 새해맞이 촛불재를 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의식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본래 안다면 아마 전자에 선지식들이 그렇게 방편을 일러 주시고 많은 설법을 하지 않았을 거고 또 부처라는 이름도 없었을 겁니다, 아마. 그런데 모르니까 염불도 있어야 했고, 그 옛날 법을 다 갖추어야 했고, 지금 현재 법과 예전 법이 둘이 아니게 우리는 항상 따라야 하는 것이 예의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뜻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모르면서 남이 하니까 그냥 따라 해서는 아니 되죠.

그런데 우리가 왜 촛불재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보이는 물질의 촛불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촛불재를 하는 것은 방편으로써, 마음이 없으면 그 촛불을 들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본래 마음이 밝아 있지 않다면 밝다고 생각을 할 수도 없고, 내 마음을 밝힌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본래 마음이 밝혀져 있기 때문에 그 촛불을 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다 가설이 돼 있다고 항상 얘기하죠. 한 가정에 내 자식, 내 부모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다 가설이 된 겁니다. 전체가 그렇게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돌아가신 부모도 내 마음이 밝혀지면 그 마음도 밝혀진다는 얘깁니다. 전기 가설을 하지 않으면 불이 안 들어오듯이, 그것은 자연히 되어 있는 마음의 가설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식이다 부모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설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이 촛불 하나 켜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의 마음을 밝아지게 할 뿐 아니라 현재의 내 마음도, 양면을 다 밝아지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촛불을 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거나 열심히 하는데도 안된다거나 또는 본인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말썽을 피우는 것도 다 업식으로 인한 거니까 본인이 마음의 촛불을 켜 들고서 간절히 관하게끔 만들어 주고, 또 본인이 부득이 못 하게 되면 부모라도 대신 해 주어서 그 간절한 마음의 전달로 지혜 물리가 터지게 하는 겁니다. 각자 내가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내가 해 놓지 않고 내가 무엇을 받을 게 있겠습니까? 내가 해야만 내가 한 것만치 받을 겁니다. 그러니까 촛불재라는 것은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태워서 어두움을 없애고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처럼,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명을 밝히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항상 마음의 뿌리가 밝아지도록 발원하는 방편이자 진실한 의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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