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을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나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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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나요

본문

질문

『한마음요전』과 마음공부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신도들이 한 권씩은 다들 구입해서 공부에 참구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어떤 분은 하루에 몇 구절씩 읽고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평소에 큰스님의 법문을 많이 듣다 보니까 이제는 요전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다 안다, 심지어는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어느 분이 옳고 어느 분이 그르다 하는 말을 하기보다는 마음공부 하는 과정에서 경전의 중요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하는 점이 더 궁금합니다. 평소에 경전을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대해야 하며, 특히 『한마음요전』을 어떻게 참구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부처님께서는 사십구 년을 설하셨고 그것을 경전으로 편집해서 냈어도 이날까지도 모두들 그 마음을 모르고, 그러면서도 그 마음을 움죽거리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로서는 경전을 봐야 옳다, 경전을 안 봐야 옳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마음 자체는 다 똑같지만 이 오장육부 속에도 모습들이 천차만별로 다르고 행도 다르고 모두 다르듯이 이 세상만사의 모든 마음 내는 그릇은, 마음 내는 차원은 천차만별로 달라서, 그건 그릇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할 뿐이지 누가 봐야 옳다, 안 봐야 옳다 할 수는 없죠.

생각을 해 보세요. 경전을 써 놨어도, 풀이를 해 놨어도 기복으로 풀이를 많이 해 놨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기복으로 써 놓은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참고적으로 지혜를 넓혀 가고 마음을 계발하려면, 즉 지혜롭게 발전을 하려면 자기가 어떤 때는 모르는 게 있으면 한번 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은 일이죠. 그래서 목차 목차대로 있으니까 자기가 아쉬운 대로 한번 넘겨서 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요. 우리가 보고 듣지 않으면 이름을 몰라서 생각도 안 납니다. 우리 먹는 것도 그렇죠. 우리가 먹어 봤으니까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거지, 보지도 못하고 먹어 보지도 못하고 맛도 모르는데 어떻게 먹고 싶은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참고적으로, 길잡이로서 꼭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책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불교 자체에서 개선할 게 너무도 많은데 그 책을 만약에 잘 보고 습득해서 넘어간다면 그 책은 살아 있는 겁니다.

어떤 돌부처가 말입니다, 옮겨 놓으려고 하니까 꿈에 나타나서 “나는 가기 싫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다시 모셔 놨답니다. 그와 같이 돌 하나도 생명이 없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 책에 말입니다, 일체제불의 마음이 다 들어 있는 겁니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딴 사람이 한 게 아닙니다. 다 한마음으로써 다 같이 한 겁니다, 그게. 이 세상의 진리이자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그냥 글귀로 해 놨을 뿐이지 모두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해 놓은 겁니다, 그게. 그러니까 누가 했다, 누가 안 했다 이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참고적으로 우리가 보고 알아야 되지 않나. 그래야 마음의 발전이 되면서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나죠.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날 때는 가차 없이 갖다가 먹을 수 있죠.

그런데 예를 들어서 “응, 그 사람이 얘기하는 건 만날 그 얘기가 그 얘기야. 그런데 뭘 그래?” 이러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글을 외워서 배우라는 게 아니거든요. 외워 가지고 그 외운 거는 다 버리더라도 그 뜻을…. 내가 진짜 갖다 먹을 수 있도록 행을 중용으로 해라, 정신계와 물질계를 중용으로 해라 이런 뜻이 담겨 있는 거지, 그걸 외워서 읽으라고 해 놓은 게 아니거든요. 읽다 보면 때에 따라서 어떠한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면 생각이 나거든요.

예를 들어서 하다못해 차 사고가 날 일이 생겨도 읽었던 대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차 사고가 안 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이 보이지 않는 데, 이 우주 자체 허공에 말입니다, 생명들이 꽉 차 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때 어떻게 부딪쳐서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몸뚱이나 혹성 자체도 다 대기권에서 통신으로 들일 건 들이고 버릴 건 버리고 대치할 건 대치하고, 이렇게 해서 다니게끔 돼 있거든요. 보이지 않는 데 그렇게 꽉 차 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문득문득 스스로 생각날 수 있도록 그런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서 그 책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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