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가 터질 수 있는 공부 방법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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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께서는 법문 중에 물리가 터져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물리가 터질 수 있는 공부 방법이 무엇인지 그것을 소상히 일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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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이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에 여러분 생명이 있기 때문에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그 까닭에 공기가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숨쉬기를 ‘만든다’ 하면은 벌써 그건 아닙니다. 한도가 있는 것은 인위적입니다. 그러나 우린 자연적으로 생명이 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공기가 들고 나서 우리는 호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이게 뭐 별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겠지마는 그게 아닙니다. 조금도 에누리가 없고 얼마나 무서운 도리면서도 자비한 도리인지 모를 겁니다. 요만큼 하나 새, 틈이 없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이 이해를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마는 우리가 마음 씀씀이를 쓰는 데에 전체가, 작은 거든지 큰 거든지 좋은 거든지 나쁜 거든지 거기서 다 나옵니다. 틈이 없어요.
요거를 하나 얘기를 할까요. 제가 예전에 산중에 들어가서 돌아다닐 때에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진리는 목적지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시발점인가 하면은 종점이고, 종점인가 하면은 시발점이 돼서 도저히 그것은 분간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대로 그냥 다리를 떼어 놓은 것이죠. 떼어 놓다 보니깐 어느 산중에 근근 들어갔는데 때에 따라서는 참, 장난이라고 할까요? 장난이 아니라 공부라고 할까?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서슴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통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가다가 어느 절이나 어느 집에 들어갔습니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은 사람 같지 않으니깐 내쫓았습니다. 내쫓아도 안 나가면은 그냥 떠다박질러서 그냥 내쫓죠.
그러면 그 사람이 원망이 되는 게 아니라 웃음이 나는 겁니다. 왜 웃음이 나느냐. 글쎄, 왜 일부러 가서 거기서 자고 싶지도 않은 거를, 이 산울 밑에 어디 잘 데가 없어서 거기 가서 일부러 잔다고 해 가지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 발길로 채이고 떠다박질러지고 넘어져서 피가 나고 그러느냐 말이에요. 그걸 가만히 생각을 하니깐 말입니다, 엎드려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깐 어떤 생각이 났느냐 하면은 ‘야, 저 사람에게 괜히 내가 죄를 지어 주고….’ 나는 나대로 우습기만 한 겁니다. 그래, 어디 잘 데가 없어서 저 천막이나 쳐 놓고 있는 데 가서 자자는 거냐 이겁니다. 천막은 본래 쳐져 있고 본래 탁 터져 있는데. 그건 한생각에 달려 있는 건데. 아, 그거 얼마나 편안해. 세금 달라는 소리도 없고 와서 자란 말, 자지 말란 말도 할 거 없고 그런데, 풀 속을 헤치고선 거기 가서 턱 드러누우면 만사가 편안한 것을, 글쎄 그게 무슨 짓이냐 말입니다.
그리고 또 뭘 얻어먹자고 들어가는 거야, 또. 얻어먹긴 뭘 얻어먹어? 아, 맨 먹을 건데. 이 세상에 먹을 게 없는 데가 어딨어요? 모든 풀이 다 먹을 거예요. 그런데 먹을 거를 그렇게 찾고 다니면 먹을 게 안 나와. 먹을 게 보이지도 않고, 또. 먹을 걸 찾지 않고 ‘어차피 한 번 죽을 거 해골이 있고 뼈다귀 있는 데로 가겠다’ 이런다면은 아예 먹을 게 나오죠. 해골들이 다 쫓아다니면서 해 줘요. 그러나 내가 죽지 않겠다고, 살겠다고 먹을 걸 짊어지고 다니거나, 자겠다고 어디 가서 구걸을 하거나, 노비를 얻거나 이런다면은 절대 그것은 생기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승엘 들어갈 수도 없고요. 산 몸으로 어떻게 저승엘 들어갑니까. 네? 산 몸을 가지고, 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들어가느냐 이겁니다. 마음이 죽어야 들어가지.
그래서 야단을 맞고 싱그레 웃고선, 본래는 그러한 마음을 굳이 가지고 갔던 게 아니기 때문에 ‘아하, 이것이 바로, 내가 예전에 누구한테 들은 바대로 이것이 바로 탁마요, 이것이 바로 탁발이요, 이것이 바로 선법의 도리를, 지혜로운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로구나!’ 하고선 스스로 나를 끌고 다니는 내 참나가 고마워서 말입니다, 싱그레 웃고서 ‘야, 이렇게 다친 이 무르팍은 금방 낫겠지.’ 하고선 그냥 갑니다. 산으로 올라갈 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입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은 그전에도 그런 말을 벌써 몇 번째 했으나 되풀이하죠.
큰 묘지에다가 등을 기대고 자려고 떡 앉아 있으니까 아, 거기서 머리를 풀어 산발을 하고 나와서 신발 한 짝 훔치러 왔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린 줄 아십니까? 묘지는 큰 우주의 근본 전체를 말하는 겁니다. 묘지, 묘산은. 이걸 뜻으로 배워야지 어떠한 물질로다가 배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엉뚱하게 그냥 물질로 가 버리고 말아 버려요. 뜻으로 아셔야 돼요. 그래서 신발 한 짝은 이승에 발 한 짝, 저승에 발 한 짝을 디뎌야 왕래를 하죠.
그런데 그걸 처음에 들을 때는 그냥 별안간에 각중에 그렇게 일어나니까 내가 너무나 놀라서 막 뛰었습니다. 그냥 막 뒤로 가는데 그믐밤에 뒤로 가면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때도 어린 마음이니깐 그렇겠죠. 그래서 가다가 주저앉아 궁둥이를 찍고 보니까는 그냥 얼마나 아프던지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면서, 번쩍 나는 순간에 뭔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어, 샐 틈이 없구나!’ 귀신이고 뭐고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왜? 나한테서 나왔다 나한테로 들고, 나한테서 나왔다 나한테서 들고 그러는데 그 자리의 조작이지 딴 데서는 조작이 없어, 도저히. 그걸 아셔야 됩니다. 딴 데서 들어오는 조작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자리입니다. 나고 드는 조작이 거기지, 나고 드는 조작이 거기라는 거를 알게 되면 속지 않습니다. 절대 속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속아서 이리 팡 치고 저리 팡 치고 하는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석존께서는 속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항복을 했고 자기가 항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서 턱 앉아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샐 틈이 없이 여기에서 나고 드는데, 날 때도 샐 틈이 없고 들일 때도 샐 틈이 없는데 아니, 각중에 뭐가 나서….’ 하고선 딱 앉아 있으니까 물리가 터지는 겁니다. 우주의 섭리라든가 이런 문제가 전부 마음으로부터 오관을 통해서 다 섭리가 터지는 겁니다. 이렇게 해야지, 머리에서 계발을 하려고 하지 마세요. 마음에서 그렇게 들이고 내는 게 빈틈없다는 그 사실에, 즉 뿌리 없는 기둥이 하늘을 받치고 빙글빙글 돌릴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내가 자꾸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오관을 통해서 지혜로운 마음과 또는 물리가 터져서 참, 용이 됐어도 물이 없어서 헤엄을 못 치다가 물을 만나 헤엄을 마음대로 칠 수 있는 그러한 여러분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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