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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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나를 발견하고 의식에서 벗어나면 되는 줄 알지만 의식에서 벗어나도 자기 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가르침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는 지금 몸뚱이라는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몸뚱이가 살고 있는 집은 지구입니다. 지구인데 우리 몸뚱이가 수명이 있듯이 지구도 수명이 있다고 봅니다, 물질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인간만 생명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전체 생명이라고 볼 때 그래도 고등 동물이라고 한다면 인간을 최고로 치죠. 인간이 돼야만이 부처를 이룰 수 있고, 한마음으로 전체가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지혜를 가질 수 있고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가 이 공부를 해서 그렇게 깨달아서 포용력 있게, 지혜롭게 참 걸림 없이 갈 수 있다면, 예전에도 자주 주장자 얘기 했듯 저런 달세계나 저런 모든 혹성들에게도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어떻게 해서 가지고 있느냐.

여러분은 지수화풍에서 소생돼 가지고 지수화풍을 지금 쓰면서 살고 있고 지수화풍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지수화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수화풍에서 지수화풍을 먹고 삽니다. 그 속에서, 복합적인 재료가 다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 질량은 수만 개의 이름을 가졌다 하더라도 거기서 다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계발이 되는 것도 그렇고, 참 과학이 발전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은 다 거기에서 나오는 거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계발이 되고 또 인간이 많이 늘어나고, 그것이 증강된다고 할까요? 우리가 먹고 사는 것도 또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는 거고. 그러니깐 그건 식량이라고도 할 수 있죠.

또 우리가 자원이나 식량을 더 만들지 않고 곶감 꼬치 빼 먹듯 빼 먹으면은 그것은 마치 은행에 예금해 놓은 것을 꼬박꼬박 빼다 쓰기만 하고, 벌지 않아서 나중에는 통장이 비는 것처럼 살림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마음공부를 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없을 때는 가져올 수도 있고 있을 때는 남에게 줄 수도 있는, 그런 영향력과 지혜로운 마음이 생길 수 있죠. 즉 이 육체에서 마음이 벗어나면은 이 몸뚱이라는 물질도 굴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벗어나지 못하면은 굴릴 수 없다’ 하는 것은 여러분이 독 안에 들어 있다면 독을 굴릴 수가 없고, 독 안에서 벗어난다면 독을 굴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독이 혹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 혹성 안에 있는 재료를 마음대로 용도에 따라서, 크나 작으나 앞에 다가오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얘기죠. 그러면 재료라든가 이런 거는 어디에서 어떻게, 그렇게 멀고 먼데 어떻게 조달이 되느냐고, 구름 잡는 얘기라고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진리이고 길입니다. 또 그 길을 부처님께서 가르치셨고요. 또 나 역시 없는 거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 한생각은 체가 없어서 요기 요거 (법상을 가리키시며) 생각하는 거나, 저 달세계 생각하는 거나 둘이 아니라 이 소립니다. 그런 까닭에 그것도 서로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간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라고 한 것은, 오고 가기만 하면 뭘 합니까? 교류가 돼서 우리가 맛을 봐야 하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여러분이 장사를 해도 이익을 봐야 되고, 회향이 돼야 되는 거죠.

그와 같이 예를 들어서 본다, 듣는다 또는 가고 올 수 있다, 그 마음을 서로가 교환하고 알 수 있다 또는 그것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고 있다 이럴 때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거기에 통신력과 광력·전력·자력이 충만히, 우리가 지수화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만히 교류가 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모든 재료나 우리 살아나가는 계발의 문제라든가, 또는 식량 문제라든가 이런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살아야 하는 건데 ‘깨달으면 한계가 없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한계가 있는 것만 알지 마시고 한계가 없는 것도 좀 아셨으면 하는 겁니다. 무한량, 한계가 없이 영원하다는 그 문제도 좀 생각해 보실 수 있는 그런 영향력과 지혜를 가지시라 이거죠.

그러면 만약에 그런 멀리 있는 것과 우리가 교류가 되지 않는다면, 벽이 쌓아진다면 우리는 어디로 피난을 가겠습니까? 내 집이 망가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또 한 가지, 우리가 식량이 부족하면 어디로 가서 얻어먹겠습니까? 또 재료가 없다면 어디서 나서 쓰겠습니까? 이런 거 세 가지만 말해도 우리는 이 마음 자체가 그렇게 충만하고 교류가 될 수 있고 벽이 없고 그렇다는 부처님 말씀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몸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몸인데, 그럼 몸하고 지구하고 우리가 비교해서 볼 때 ‘몸을 이끌어 나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는 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몸이 주인이 없으면 얼른 망가질 거고, 내가 깨달아서 주인이 있다면 내 몸도 고쳐서 쓸 것입니다. 그러면 가고 싶으면 가고 그냥 벗고 싶으면 벗고 말고 싶으면 말겠죠. 그것이 자유입니다, 이 옷을 벗는 것도. 그런데 그렇게 한계가 있듯이 그럼 지구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한계가 있겠죠. 그러나 이게 겉껍데기가 있고 속껍데기가 있고, 그 안에 셋째 번에 아주 그 얇은 껍데기가 우리 뱃가죽에도 있듯이 또 있습니다. 별성도 껍데기를 벗으면 새 빛이 나면서 다시 살듯이, 인간도 이 껍데기를 벗고서 다시 또 몸을 바꿔 가지고 다시 나오는 이치에 의해서 우린 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몸이 없어졌다가 다시 나고, 났다가 다시 꺼지고 이러는데, 이러한 혹성이나 저러한 별성 같은 거는 이것이 꺼멓게, 예를 들어서 그 껍데기를 벗으면서 그대로 속에서 새 빛이 다시 날 수 있는 것이 그게 한계가 없다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서 같이 교류를 할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이 있다면 그렇게도 할 수 있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자주 천수경도 하시고 염불도 하시죠? 염불하시는데 내 마음이, 한마음이 즉 관세음(觀世音)이고 지장(地藏)이고 독성(獨聖)이고 산신(山神)이고 용왕(龍王)이고 이렇게 일체가 내 한마음에 들었다고 돼 있죠. 그 한마음에서 그 이름이 나가는 거고 한마음에서 씀씀이가 다 가락대로, 차원대로 나가죠.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소릴 하느냐 하면, 여러분은 말로만 ‘내가 관세음이고, 내가 부처고, 내가 지장이고, 이 마음에, 그 한마음에 다 들었다는데, 뭐.’ 이렇게 꼿꼿이 세우는 마음이 있단 말입니다. ‘내가, 내가 부처니까 인간은 다 부처가 될 수 있고, 다 부처다.’ 하는 그 마음만 알고 이론만 알고 있지 진짜 행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내가 이 공부를 빨리 해야지.’ 하는 급한 마음을 가지시기 이전에 여러분은 자기의 아집이라든가 아상을 놔 버려야 하고,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하고, 또는 시간도 지켜야 하고, 의리도 지켜야 하고, 도의도 지켜야 하고, 사랑도 지켜야 하고 그러니까 자만이나 아만을 부리지 말고, 착을 놔야 하고, 욕심을 놔야 하고, 투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모든 악한 것은 내 마음으로 안아서, 예를 들어 이 물 한 컵에 있는 (법상 위의 물컵을 들어 보이시며) 물방울이 아주 악인이라고 합시다.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걸 내 물그릇에 넣어서 같은 한그릇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관세음보살의 행입니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이 여러분의 이름에 속한다고 볼진댄 그렇게 넣어서 안아서 녹여 주고, 병자가 있으면 병자가 있는 대로 여기 넣어서 안아 주고, 또 가난이 있으면은 내 가난과 같이 생각해 줄 수 있는, 이익을 줄 수 있는 마음이라야 되고, 그래서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또 죽는 사람이 있어도 내 마음으로, 한마음으로 안아서 나를 만들어서 다시 내놓는다면 그것이 바로 천도입니다. 이 마음과 마음이 서로가 서로를 안을 때, 참 그것은 즐겁고 여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그렇게 될 때에는 밉고 곱고, 너는 잘못하고 잘하고 이것을 따진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보살들이 될 수 있는 100%를 가지고 있고 99%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99%다 할지라도,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다 될 수 있어도 이 행을, 그대로 선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건 중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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