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불에 임하는 마음 자세와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가짐?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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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에 임하는 마음 자세와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가짐?

본문

질문

함께 공부해 나가는 도반들과 담선을 하는 도중에 예불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법우가 내 마음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는데 밖에 있는 부처님께 예를 올리기 위해 굳이 예불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한편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나를 비우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불에 임하는 마음 자세와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공부해 나가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예불을 모시는 게 그냥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예불을 마치고 점심 사시마지를 올리고 저녁 예불을 마칩니다. 그것도 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생각해서 우리가 아침은 과거고 점심은 현실이고 저녁은 미래로 따져도 됩니다. 그것을 한데 합쳐서 삼심을 일심으로 두고서, 아침에 하든지 점심에 하든지 저녁에 하든지 이렇게 열심히, ‘한마음 공덕이 있게 해 주시라’가 아니라, ‘한마음 공덕이 되게끔 할 수 있는 거는 당신밖에 없노라’고 이렇게 예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불 모시는 데에 어떤 사람은 내 한마음에서 하라니까 뭐, ‘한마음에서 하면 됐지. 주인공만 찾으면 됐지.’ 이러고선 법당에 안 들어가는 이치가 많습니다. 그거를 수차적으로 생각을 해 봐요. 그런데 꼬박꼬박 아침 점심 저녁은 잘들 잡수시더군요. 어때요?

이 정성이면, 이 마음을 스님네들이 내면 온 누리의 일체 보이는 생명이나 보이지 않는 생명이나 모두 한마음이 돼서 운집하는 그런 시간이거든요. 우리가 시간을 정망해 놓고 하지를 않고 그냥 삼세의 뜻을 한마음으로 쥐고 아침에 하든, 점심에 하든, 저녁에 하든 이렇게 같이 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를 가도 한마음이요, 여길 와도 한마음이요, 집엘 가도 한마음이요, 한마음은 다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스님네들이 한마음을 내서 할 때는 같이 기울여서 하는 것이, 백지장도 마주 들어야 쉽다. 하다못해 창호지를 발라도 그렇고 도배를 해도 그렇고 혼자서는 어렵다. 바르는 놈이 있으면 붙이는 놈이 있고 붙이는 놈이 있으면 바르는 놈이 있고 이렇듯이 우리가 그렇게 해 나가야 된다.

그러면 예불을 모시는 사람이 있다면 예불에 대해서 한마음이 돼서 같이 하는 사람이 있어야 참 신심이 돋아지고 스님들의 마음도 ‘아유, 저 사람네들, 저분들….’ 이렇게 신심이 생길 거 아닙니까? 그런데 ‘너 중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이 주인공만 찾으면 된다니까….’ 이거는 개별적인 마음이지 포괄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세 가지 지켜야 하는 예절이 있습니다. 부처님 앞에 가서 모두가 삼정례를 깍듯이 하는 것은 부처님도 내 한마음 속에 계시니까, 바로 부처님의 뜻과 법과 행과 같이 한마음이 된다는 뜻에서 삼정례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촛불을 켜 놓는 것은 바로 우리 산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고 향을 켜 놓는 것은 영령들의 양식을 말하고, 또는 공양미를 해 놓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모두 한 그릇을 놓고 중생들을 다 먹이는 태양과 같고, 다 먹이고도 되남는 그런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생각을 하고, 얼른 쉽게 말해서 ‘나는 뭐, 법당에 안 가도 되지.’ 이런 생각은 버리셔야 될 겁니다. 부처님도, 이게 알고 보면 형상도 자기요, 마음도 자기요, 생명도 자기요, 모두가 자기 아님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도 나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요, 내 뜻에 있는 것이요,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왔으면 벌써 예를 지켜야 하겠기에 법당에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앞에 닥친 거를 마다하고, 뿌리치고 도망가는 거나 같습니다. 항상, 앞에 오는 거를 막지 말고 싫다 하지 말고 가는 거를 잡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가르쳐야 지혜가 모두 턱 터져서, 사방이 툭 터지고 지붕이 없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대인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싫다, 저것은 좋다’, ‘이것은 좋다, 이것은 언짢다’ 하는 것을 떠나라 하는 것은 항상 다가오는 거를 마다하지 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고 이러라 이런 것입니다. 유도리가 있어야죠, 사람이. 그게 지혜입니다. 그냥 바늘을 저 벽에다 꽂으면 꽂는 대로 빼면 빼는 대로 이래서는 유도리가 없어서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빼는 건 빼는 거고 끼는 건 끼는 거지, 뭐.” 요렇게 한다면 그거는 유(有)의 물질세계에서는 맞을지 모르지마는 무(無)의 세계와 유의 세계가 합쳐서 작용을 하는 데는 맞지 않습니다.

법당에도 좀 유도리가 있게, 예불 모실 때는 반드시,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같이 한마음으로서 하는 겁니다. 형상인 부처님께도 우리 마음들이 거기다가 예배를 올리고, 거기다가 부처님이라는 그 생각을 하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의 그 부처님의 마음도 역시 둘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얘기하자면 여러분의 혼백이 다, 그 마음들이 한마음으로 돼서 부처님이라고 섬기는 그 모습에 운집이 돼 있다 이겁니다, 전부. 그러니 그 또한 여러분의 형상이요, 여러분의 마음이요, 여러분의 생명 아니겠습니까? 형상이라고만 보기 이전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 예절을, 예전에는 삼정례는 물론이거니와 일곱 발자국을 뒷걸음을 쳐서 돌아서서 나왔다 이겁니다. 그렇게 그 안정된 마음으로 지극한 그 행동을 하는 겁니다. 누가 그럭하라, 말라 이래서 그런 게 아니라. 지극한 예절이죠.

그리고 법당에서는 누가 향을 먼저 꽂았느니 나중 꽂았느니 이런 거를 탓하지 마시라 이겁니다. 불도 그렇습니다. 내 마음의 불과 그 촛불과 바로 연결되는 겁니다. 마음의 불이 있고 그 불이 있는 것이지, 내가 있고 내가 정성을 들이니까 그 불도 있는 것이지 내가 없고 불이 어딨습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의 정성이라면 남이 켜 놨어도 그거를 또다시 켜고 그러면서 싸우지 마시라 이겁니다, 마음으로 흠집 가게. 또 ‘아이구, 내가 켜 놔야지.’ 하더라도 아, 기다리고 있다가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유, 그 불이 그 불이고 그 불이 그 불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그저 밝은 태양이, 우리 이 세계에, 지구에 비춰 주는 이 태양은 바로 우리의 한마음에 하나뿐이지.’ 하고서 불 하나를 켜 놨다 하더라도 전체 그 불 하나로써 신도님들의 전체 마음을 밝혀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 소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거기에만 부처님이 계신 줄 알고 애를 쓰지 마시고요. 옛날에 부처님을 모셔 놨더니 온통 거기 매달려서 뭐 야단법석이니 이 마음공부 시키기에는 너무나 어렵더라고요. 여북하면 그 부처님을, 불상을 내려다가 마당에다 놓고 도끼로 찍었겠습니까? 마음 떠나서는 부처도 없다 이겁니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여러분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모두 없애 보기도 하고, 일원상을 해 놔 보기도 하고, 부처님을 모셔 놓아 보기도 하고, 모셔 놨다 또 부수기도 하고, 허허, 이렇게 노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걸 못 보걸랑은 자기 형상부터 보시고 자기 마음부터 한번 뒤돌아보시고 자기 행동하는 거를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그러면 부처님이 밝게 보일 겁니다. 말만 잘 들어서, 앵무새처럼 말 잘하라고 말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말을 하더라도 듣는 게 없이 들어라 이겁니다. 왜냐하면 내 뿌리를 바탕으로 두고서 들어야 듣는 것이지, 함이 없이, 들음이 없이 듣는 것이지 뿌리를 망각하고 듣는 것은 그냥 바람결같이 지나가는 것이고 이론에 그냥 접하는 얘깁니다. 말만 잘해서 실천에 옮겨지는 게 아닙니다. 말보다도 실천이 더 먼저입니다.

그러니 예불 정례 똑바로 잘하시고요. 절에 오는 분이 예불 정도도 모른대서야 그거 말이나 됩니까? 허허. 그러니까 예의법도 법은 법이니까 제일 중요한 게 ‘법당에 들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 이런 거를 좀 잘 정돈해서, 좀 펼치고 크게 생각해서, 여기 와도 예불 모실 때는 반드시 들어가서 같이 한다는 거, 그것은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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