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본문
질문
불교인이면 누구나 배워서 알고 있는 삼법인(三法印) 중에 ‘제법무아(諸法無我)’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이 “제법에는 이름하여 붙일 것이 없다.” 하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법에 이름하여 붙일 것이 없다면 오늘 수행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왜 이 공부를 그렇게 해야 됩니까? 또 ‘나’라고 할 것이 없다면 업은 어디에 붙은 것입니까? 진실한 뜻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르침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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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이 얘길 항상 합니다만 여러분이 찰나찰나 아버지 노릇 하고 엄마 노릇 하고 자식 노릇 하고 형제 노릇 하고 그러죠? 그런데 그렇게 찰나찰나 생활하고 돌아가되 찰나찰나 그렇게 많은 모습으로 천차만별 돌아가는데 어떤 노릇할 때 꼬집어 나라고 할 수 없으니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초월해서 돌아가니까 함이 없이 한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될 때에 나라고 할 건가, 남편이 될 때에 나라고 할 건가, 자식이 될 때에 나라고 할 건가, 나라고 할 것 없이 사이가 떨어지지 않고 찰나찰나 나투며 화해서 돌아가니까 나라는 걸 이름해서 세울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공했노라, 나는 없노라,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노라, 나는 한 일이 없노라고 하는 겁니다. 또, 나는 여러분한테 설법한 일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여러분이 생활 속에서 쳇바퀴 돌아가듯 남편 노릇 했다, 자식 노릇 했다, 아버지 노릇 했다 하면서 순간순간 돌아가는데 어떤 거 할 때에 남편이 했다고 그러고 어떤 거 할 때에 아들이 했다고 하겠습니까. 모든 게 그렇게 돌아가니 나라는 게 너무 많아서 그냥 아버지 노릇 하고 남편 노릇 하고 자식 노릇 하고 사위 노릇 하고 친구 노릇하면서 여여하게 돌아가는데 어찌 붙을 게 있겠습니까.
공해서 없다는 거를 알면 붙을 게 없을 것이고, 천차만별로 바깥으로 끄달리고 ‘내가 있다, 내가 했다, 내가 줬다’ 하면서 나, 나, 나 이러고 돌아가면 그냥 매사에 걸려서 돌아가죠. 여러분이 음식을 먹고 소화를 잘 시켜서 먹는 대로 소화가 잘 되면 그대로 여여한 거고, 어떠한 거든지 욕심을 내고 먹으면 체해서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대변이 제대로 나가지 않으니 걸려서 죽습니다. 그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마음을 잘 써서 소화가 잘 되면은 걸림없이 돌아가고, 모든 걸 재료로 알고 실천을 해서 체험을 한다면은 마음의 발전이 되고, 지혜로운 마음이 생기고, 과학적인 문제가 거론되고 창조력이 생기지마는, 만약에 그런 마음이 없다면 내내 걸려서 무심의 50% 정신세계는 모르고 물질세계만 알아서 절름발이로 살게 되는 겁니다.
지금 시대는 정신세계가 아니라면 안됩니다. 정신을 뺏기고 정신을 뺏어서 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육으로 잡혀 먹혀야 잡혀 먹히는 게 아니거든요. 정신을 뺏어 먹고 사니까 정신을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 정신공부를 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그 자체를 생각해 본다면 수행을 누가 하는지, 내가 없으면서 내가 있는 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궁금한 그것마저 맡겨놓아 한번 본인 스스로 체득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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