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가 무엇이며, 무엇을 관해야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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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관(觀)에 대해서 여쭤 보겠습니다. ‘일체를 관해야 한다’ 하는데 일체가 무엇이며, 무엇을 관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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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요새 모두 화두를, 일체를 놔두고도 또 화두를 잡고 끊어질까 봐 애를 쓰는데, 일체라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와서 지금 찰나찰나 화(化)해 가면서 돌아가고 있으니 일체지요. 자기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주가 있듯이 말입니다. 모든 것은 일체 같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둘이 아닌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체, 일체” 하죠. 그러니 지금 ‘일체 모두 놓고 관(觀)하라’ 이런 것입니다.
내가 날더러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난 네가 형성시켰고 수억겁 광년을 거쳐 오면서 네가 나를 운전해 왔어. 진화시켰어. 형성시켰어. 그러니 나를 이끌어 가지고 가는 것도 너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 하게 하는 것도 너니까….’ 그 속에서 나오는 거 그 속에 닥쳐오는 대로 놓는 것이 관하는 거죠. 그래서 맡겨 놓는다면, 앉으나 서나 바로 도량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앉은 자리에 자부처는 있는 것이죠. 자부처부터 알아야 바로 우리 마음속의 그 모든 의식 자체 생명들이 같이 화합을 해 주게 됩니다. 내 국토부터 다룰 줄 알아야, 바로 보살로 화해서 남의 국토도 내 국토와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소리죠. 그래서 ‘관하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 말 한마디 하고 넘어갈 것은,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이 태초요,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이 화두입니다. 그런데 그 화두마저도 공했다 했거늘,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 했거늘 거기에다가 또 남의 화두까지 받아 가지고 ‘이게 뭣고?’ 하고 먹지 못한다면 그것은 십 년, 백 년을 가도 지금 시대에는 아니 된다 이거죠. 왜냐. 전자에는 그게 씨가 먹었지만 지금은 모두 머리로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아요. 천체물리학이니 과학이니, 또 지리학이니 의학이니 천문학이니 이런 것이 전체, 머리의 알음알이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씨가 먹질 않습니다. 밥 한 그릇 남이 준 거를 들고 ‘이 뭣고?’ 하고선 이것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도 공했고 그것도 공했거늘 어찌 그거를 들고 끊어질까 봐 애를 쓰느냐 이겁니다.
또 좌선을 할 때는 내 안으로 관한다면 그게 같이 들리지마는 바깥으로 끄달리면서 좌선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안 하느니만 못하다. 왜냐. 지금 시간과 공간이 초월돼서 모든 소용돌이가 찰나에 이렇게 돌아가는데, 지구가 돌아가고 혹성이 돌아가고 우주가 돌아가고 사람도 돌아가고 사람의 마음도 돌아가고 고정됨이 없는데, 좌선을 하고 앉았으면서 하루 8시간을 앉았다 하더라도 단 5분 한 것만 못하다 하는 것은 사람들이 좌선을 할 때에 관하라니까 화두를 들고 그것이 끊어질까 봐 애를 쓰고 ‘이게 뭣고?’ 하는 게 관하는 건 줄 안다 이 소리죠. 새 물이 들어오면서 헌 물은 배출되고 이렇게 돌아가는 시대에, 만약에 그 물을 그냥 두고 있다면 그 썩은 물을 그냥 우리가 쓰는 거와 같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도 그랬죠. 선지식들이 “위로 눈을 뜨지도 말고 아래로 내려 보지도 말고 코끝을 내려다보고 아주 정연하게 관하라.” 이런 말을 했거늘, 그것은 무슨 소리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내다봐라. 그리고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바로 중도에서, 중용에서, 중심을 잡고 모든 것을 똑바로 중도에서 보라 이런 소리죠.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안 해요. 요새 너무 아는 게 많아서 그런지 혼란을 일으키고 말입니다, 남의 소리나 듣고…. 부처님이, 석가세존이 이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석가세존의 몸뚱이를 믿으라고 한 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고, 진짜 믿는 것은 그 부처님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항상 서리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물질을 보고 끄달리지 말고 그 마음을 뚫어 보기 위해서 내 마음부터 뚫어 봐라 이 소리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나를, 나라는 존재를 버려라. 버리는 게 아니라 맡겨 놔라. 아집을 버리고 말입니다. 그것은 왜냐. 여러분이 여직껏 살면서도 고정되게 보신 게 있습니까, 들으신 게 있습니까. 또 말하는 게 있습니까, 가고 오는 게 있습니까. 먹는 것이 고정됩니까. 하나도 고정된 게 없어요. 그런데 자동적으로 이 사람 만나면 이 사람 만나는 대로 뜻과 행과 말이 나가고, 저 사람 만날 땐 저 사람 만나는 대로 뜻과 행과 말이 나가니 그건 무슨 연고냐 이겁니다. 그러니 나라는 게 어딨는가. 누구 만날 때 내가 만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는 없는 게 부처다 이런 소리죠. 그래서 관하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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