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했는데...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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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했는데...

본문

질문

벌써 연꽃 철이 다가 와서 저희 동네에도 화사한 연들이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연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저의 삶도 또한 나와 내 주위를 맑고 향기로움으로 채워 나가기를 서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 탄생 설화에 보면 탄생하셔서 일곱 발자국을 떼셨고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신화적인 표현으로만 보아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진흙땅에서 연꽃이 핀다고 했죠? 그 모든 고난을, 자성의 고난을 다 겪고 나면 홀연히 연꽃이 피듯이, 저런 진흙땅에서 연꽃이 피는 거야 누구나가 보고 누구나가 말하고 누구나가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 몸이라는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더러운 물이 묻지 않는다고 한 거죠. 마음이 체가 없는데 묻을 건덕지가 있어야 묻죠. “마음은 체가 없어서 묻을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에 관습과 집착과 욕심과 애정과 원한, 이런 모든 게 쌓여서 연꽃이 피지 못하고 자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그러니 진흙땅에서 연꽃이 피어도 더러운 물이 묻지 않는다는 그 뜻을 한번 새겨 보시도록 하세요. 우리 인간의 꽃이, 즉 마음이 홀연히 피어나면 그 꽃이 바로 마음의 연꽃입니다. 이 마음의 연꽃이 피면 그것을 견성이라고 하죠.

그래서 마음의 연꽃은, 즉 ‘육근(六根) 육진(六塵)’ 이렇게 할 때, 육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의 연꽃을 참나라고 이름해서 붙이는 거죠. 참나를 찾는 데에 그 방편이 된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누진(漏盡)이라고 하는 그것을 찾게 됨으로써 그 모든 것을 벗어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셔서 일곱 발자국을 떼었는데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연꽃이 발밑에 피어나서 그걸 밟고 나오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한 발짝 떼어 놓을 때에, 즉 말하자면 용무입니다, ‘내가 이 발자국을 떼어 놔야겠다.’ 하고 떼어 놓는 게 아닙니다. 그렇죠? 내가 가겠다 하는 것도 없이 그냥, 말도 없이 그냥, 갈 때가 되면 그냥 그냥 갑니다. 그렇게 발자국을 하나하나 떼어 놓을 때, 뒷발자국은 없어지면서 앞발자국 떼어 놓을 때마다 그것이 용무입니다. 즉 말하자면 공법이다 이겁니다. 몸속에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들어 있는 한 개체가 발자국을 떼어 놓을 때, 그러니까 연꽃으로 비유하자면 ‘내 마음이 연꽃이 피어나듯이 움죽거린다’고 했습니다. 즉 말하자면 한 발짝 떼어 놓을 때 내 마음이 피어나는 연꽃처럼 움죽거린다 이겁니다. 움죽거리는 연꽃이란 얘깁니다. 지는 연꽃이 아니라 움죽거리는 연꽃! 그래서 “연꽃이 피게 되면 지는 것도 없고 피는 것도 없는 것이 연꽃이니라.” 이겁니다.

그래서 ‘마음의 연꽃을 밟고 일곱 발자국을 나왔다’ 이러는 건, 우리가 육체에서 벗어나야 자유인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근본 뿌리, 즉 불종(佛種)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곱 발자국을 떼어 놓는다고 방편으로 말씀을 하셨죠. 그러면 또 타의에서 찾는 게 아니라 우리 몸속에서 그렇게 찾아야 하는 거죠. 내 몸을 한 발짝 한 발짝 떼어 놓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마음으로 붙잡고 갑니까, 그냥 놓고 갑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은 아무 요동이 없이 그냥 발자국을 떼어 놓죠.

살림살이도 그렇게 사시란 말입니다. 왜? 살림살이도 그러하니까 말입니다. 이 발자국 떼어 놓는 것처럼 순간 보고 흘러가고 이것 보고, 이것 보고 흘러가고 저것 듣고, 저것 듣고 흘러가고 이것 듣고 이렇게 돌아가는데, 여러분은 내내 좋은 게 있으면 좋다고 붙들고 언짢으면 언짢다고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그게 놔지질 않는 겁니다. 한번 가만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언짢아도 한 찰나 좋아도 한 찰나인 것을 좋다고 붙들고 즐겁다고 야단이고 그게 행복이라고 하고, 또 언짢으면 언짢다고 울고 가슴 아파하고 그냥 그걸 붙들고 늘어지니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잘못한 거면, 만약에 부도가 났다 이럴 때, 그 과정을 내내 붙들고 그냥 ‘어떡하면 빠져나갈까.’ 하고 온통 그것만 생각을 하고 있게 되죠. 그거 하나뿐이 아니라 일체를 다요. 조그만 거든지 큰 거든지 다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한테도 그렇게 살지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부도가 나서 숟가락 하나도 건질 수 없다고 하는 분이 있길래 그거를 몽땅 놔 버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거기다 놓고 그냥 뛰시라고 그랬어요, 그냥. 그랬더니 나중에는 부도를 다 해결하고 참 고맙다고 하시기에 당신한테 내가 고맙다고 해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돌아가질 않아요. 흙물이라면 흙물대로 놔 버려야 새 물을 또 쓸 텐데, 흙물 담아진 거를 그냥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새 물이 들어올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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