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공의 맛을 볼 수 있으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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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공의 맛을 볼 수 있으려면...

본문

질문

『금강경』의 대의(大義)를 교학에서는 ‘파이집 현삼공(破二執 現三空)’이라 해서 집착을 없애고 공한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말하고 삼공은 아공(我空) 법공(法空) 보살공(菩薩空)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분별이 끊어진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이 이 마음공부를 통해서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금강경』에서 설하는 참다운 공의 맛을 볼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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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전에 큰 조사 스님네들은 말씀도 안 하시고 법상에 앉으셔서 주장자를 한 번 꽝 치고선 ‘이 눈이 보이느냐.’ 하시곤 낚싯밥을 던져서 건지게끔 하는 말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은 너무들 말로는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부처님 법이 어떤 것이냐.” 하면은 손가락을 드는 사람도 있고 춤을 추는 사람도 있고 일어나서 걸음 걷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많습니다. 그리고 ‘참 맛이 좋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고 물을 떠다 놓는 사람도 있고 합장하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많아요. 그것은 생략하고, 그런 말을 아무리 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가슴에 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바로 여러분의 그 깊은 잠재의식 속에, 참나가 공(空) 안에 들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기에게 맡겨 놓으라고 하는 그것도 내가 공했고 이 세상이 다 공했으니 포함해서 공한 주인공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내게 보이는 게 있기 때문에 부처도 이루고 세상이 공한 줄 알고 나도 공한 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主人空)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다가 모든 일체 생활을, 들이고 내는 것을 다 몰락 놓고 ‘다 당신이 하는 거, 들이고 내는 걸 바로 당신이 하는 거니까 당신이 다 알아서 길잡이가 돼 주실 거다.’ 하고, 또 길잡이가 될 거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도 안 되는 거는 ‘나를 테스트 해 보는구나.’ 하고선 놓고, 또 되는 거는 감사하게 믿고 놓고, 모든 것을 맡겨 놓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은사 아닌 은사, 참은사를 만날 것입니다. 진짜 은사! 자기를 수시로 이끌고 다닐 수 있는 참자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가졌을 때 그것을 한 소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도 얘기했죠? 땅에서 싹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고 어른들이 어린애 낳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어린애를 출산했을 때 갓 나와 가지고 어른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한 소식 얻었다 할지라도 어린애 갓 낳은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내가 한 소식 했다는 말 할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내가 갓 나와서 사리를 알고 판단을 할 정도로 커졌을 때는 이 세상 돌아다니면서 크고 작은 걸 알기 때문에 자기가 체험하면서 놓고 다시 또 체험하면서 놓고, 참자기가 그렇게 거침없이 여여하게 돌고 행한다는 걸 알았을 때 어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한 소식 얻었다고 결론지어서 꽂아 놓지 말라는 얘깁니다. 한 소식 얻었다고 해서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될 수도 있고 늙을 수도 있고 늙었다가 또 애가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우리는 어른이 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심부름도 해 주고 심부름 하는 걸 받기도 하죠. 우리가 지금 높은 일만 합니까? 어린애를 낳아 가지고 똥 기저귀도 빨고 똥을 씻기도 하고, 어린애를 기를 때에 별의별 일을 다 합니다, 궂은일을. 어른이 돼서 애의 밑을 씻어 줘야 하고 애는 애기 때문에 또 애 노릇을 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높아도 높은 게 없고 얕아도 얕은 게 없이 평등한 진리의 그 뜻을 항상 생활 속에서 파악하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스스로 샘물이 솟듯, 솟아나는 그 샘물의 맛을 알고 역력하게 나를 끌고 다닐 수 있는 나의 참주인공이 진짜 생기는 것입니다, 홀연히. 그저 생산이 되기만 하면은 그때 가서는 언젠가는 성불할 단계가 오고 언젠가는 열반할 단계가 오죠. 어린애만 낳아 놓으면 저절로 어른 되고 늙어지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서 그 차원을 알고 차원이 높아져서 나중엔 백지로서 크고 작은 게 없고 내세울 게 없을 때는 또다시 요다음에 모습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여러분이 내 모습이기 때문에 따로 모습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자유스럽게, 여기만 내 집이 아니라 우주 삼천대천세계가 다 내 집이니 그저 한 찰나에 이 집도 내 집이요, 저 집도 내 집인데 따로 내가 내 몸을, 내 모습을 그려서 또 내놓을 게 뭐 있겠습니까?

알아듣기 쉽게 요렇게 말을 해 드리는 건데 이 차이가 얼마만큼 크고 귀중한 뜻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이 도리를 완벽하게 안다면 내가 당신이 될 수 있고 당신이 내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모습은 다를지언정 마음이야 어찌 다를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마음이 둘이 아닐진대 당신 하나가 이 나라의 임금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어떠한 문제가 잘못돼 돌아갔을 땐 내가 그 대통령 속에 들어가서 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거를 잘 지켜 나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커버해 나갈 수 있고…. 대통령의 마음도 그러겠지마는 그 마음과 이 마음이 둘이 아니어서 마음으로부터 오관을 통해서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기가 잘못 끌고 간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그것을 확 고쳐서 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모습을 따로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매한가지인 이런 세상에 내가 그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그 속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여기저기 나 아님이 없다 이겁니다.

그 뜻은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선신에 이르기까지, 부처에 이르기까지 어디고 아니 닿는 데가 없이 내 몸 아닌 게 없다는 얘깁니다. 내 자리 아님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 “이런 것이 옳다, 저런 것이 옳다. 이런 것이 좀 낫다. 이것은 정법이 아니다. 사법이다. 무당이다.” 이렇게 흉볼 것도 없고…. 만약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높이 보이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런 거를 흉보지 말고 ‘저런 거는 이렇게 해야 할 텐데….’ 마음 속으로…, 겉으로 입 밖에 내어 구업을 짓지 말고 항상 이익하게 마음을 내 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얘깁니다.

어린애들을 기를 때에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면 그 자녀들이 잘못한 거를 드러내겠습니까? 도둑질을 했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숨길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내 자식을 사랑하듯이 숨기면서 거죽으로는 말없이 안으로 굴리면서 이익하게 마음을 내 주는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며 부처님의 뜻이며 바로 보살의 행이라고 봅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우리가 남을 해하게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아마도 억겁을 걸쳐 가면서 요만한 거 하나라도 내가 한 것만치 내게 돌아올 것입니다.

세상에 만약에 조그마한 소나무가 없다면 중치 소나무가 없고 중치 소나무가 없다면 큰 소나무가 없고, 또 삐뚤어진 게 없다면 바로 선 게 없을 겁니다. 조화가 이렇게 이루어져서 진리라고 이름을 지었고 산천초목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자연의 조화가 이렇게 보기 좋다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삐뚤어진 사람, 똑바로 곧게 올라간 사람, 옆으로 굴려진 사람, 땅 끝에 붙어서 자라지도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사람의 모습은 그렇지 않지만 마음이 그러해서 우리의 삶도 그렇게, 그런 행을 하면서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그 마음이 중하지 몸이 중한 게 아닙니다. 마음에서 비롯되어서 모든 것을, 몸은 행하게 되고 앉게 되고 서게 되고 말하게 되니까요. 우린 부처를 이룬다 하기 이전에, 깨치기 이전에 이 도리를 알아야 깨쳐도 ‘아하, 다 이렇게 하나하나 나투어 가면서 놓아가고 돌아가는 이 텅텅 빈 그릇을, 괜히 여기다가 내 마음으로 담아 놓고 무겁게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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