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떡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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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서 살아 있는 사람도 생활하기가 힘든데 돌아가신 조상님들까지 정성스럽게 모시고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 조상님을 위한 재사를 간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방편을 내려 주셔서 저희들은 자손들 힘들게 하지 않고 간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자손들은 이 마음공부를 하지 않아 선원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재사를 지낼 때 올리는 우주떡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재사를 지내고 천도재를 지내야 조상님을 진정으로 위할 수 있는지 저희 자손들을 위해 가르침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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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 식구가, 한 식구가 이 세상 식구라고 본다면 우리가 수박 하나를 갖다 놓고 그 수박을 짜개서 식구가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씨는 되남았거든요. 그래서 그 씨를 심어서 또 중생들이 다 먹고 그 씨는 또 되남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떡 한 그릇이 중생들을 다 먹이고도 되남는 떡이죠.
재사 지낼 때 얘기 좀 해야겠네요. 스님네들이 상을 차려 놓고 염불을 하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상을 차려 놓으면 스님네들이 공부를 했든 안 했든 스님네들이 아는 것만치, 스님네들이 ‘아, 돈 얼마를 내놔서 내가 이 음식을 이렇게 차려서 요렇게 해 놨다.’ 이걸 알고 있겠죠, 스님네들이. 그러면 영가가 들어와서 그것만 압니다. 공부를 못한 스님네들한테 밥 한 그릇을 올리고 재사를 지낼 때는 그 상에 차려 놓은 것밖에는 모르니까 영가도 들어와서 그것밖엔 모른다 이겁니다. 그러나 공부한 스님네들이나, 예전에도 선사들한테, 그 산 부처님한테 밥 한 그릇을 올리면 그 공덕이 수미산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공덕이 크고, 그래서 그 선사들이 문을 탁 열어 놓고선 이 세상 삼라대천세계를 전부 요리를 해서 그 밥 한 그릇에다 포함해서 탁 놓으니까 그 밥 한 그릇을 먹고도 되남더란 얘기죠. 그러니 ‘이 세상만사 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거 아님이 없는데 내가 뭐 부족할 일이 있겠는가.’ 하고 영가가 스스로 그냥 한자리를 하게 되는 거죠. 마음먹은 대로요.
그렇게 자유스러운 거를, 만약에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예를 들어서 진짜로 이걸 믿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 한해서만이 얘깁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그것을 못할 때는 “스님, 스님과 한마음이 돼서 천혼문만 써서 밥 한 그릇 놓고 저 좀 해 주세요.” 해도 그것은 됩니다. 우리가 가난하든지 가난치 않든지 이 불교를 배우는 데는 무슨 지식이나 학식이나 또는 이론이나 또는 가난한 거나 부자나 이런 거를 떠나서 배우는 것입니다.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어느 스님이 객승으로 어느 절에 갔답니다. 아, 가니깐 말이에요, 아주 춥고 그래요. 추워서 뭐, 잘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중들은 하나도 없더래요. 근데 그 절에 보니까 커다란 목불이 턱 있거든요, 뒤에는 탱화가 있고. 그러니까 탱화 하나면 족하겠다 하고 그냥 목불을 들어다가 도끼로 풍풍 패서 자기 자는 방에 뜨끈뜨끈하게 때고선 터억 잤죠. 스님네들은 천도식을 하고서 새벽녘에 온 거죠. 와 보니까는 아, 불상이 없어졌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객중이 그냥 네 활개를 쩍 벌리고 그냥 뜨끈뜨끈한 방에서 자고 있거든요, 자기네는 추워서 죽겠는데. 그러니까 멱살을 들어서 “이놈의 객, 이놈의 중놈! 아니, 불상을 갖다가 방에다 때고선 자는 놈이 어디 있느냐.” 그러면서 “아니, 부처님을 이렇게 없애 놨으니 어떡하면 좋으냐.” 하고 방방 뛰거든요. “그게 부처님이걸랑 저 아궁이에 가서 뭐 사리가 있나 좀 찾아 봐라!” 그랬답니다.
그래 불을 아무리 뒤져 보니 사리가 나옵니까, 목불인데? “그거 봐라. 그거는 나무지 부처가 아니다.” 이거야. 그러니 부처가 없으니 어떡하면 좋으냐고 방방 뛰는데 아, 난데없이 어느 여인이 어린애를 못 낳는다고 삼신 불공을 하러 왔어요. 그러니까 부처님도 안 계시니 이거를 어떻게 하느냐고 방방 뛰다가 할 수 없으니까 탱화 앞에다가 밥을 지어다 놨죠, 인제. 공양을 지어다 놓고 하니까 “야, 오늘 내가 뜨뜻하게 잔 대신 내가 불공을 드려 주지.” 이러고는 나가더니 이 장삼 자락을 척 쳐들더니 말입니다, 왜 다기 물 모셔 놨지 않습니까? 거기에 손을 턱 담그더니만, 허허, 그 공양 해다 놓은 거를, 공양을 척척척척 둥글려서 쥐어 가지고는 그 탱화 부처님 입에다가 말입니다, 타악 붙이면서 하는 소리가 “이거 생남불공을 하러 왔으니 사내애 하나 줘!” 그러고선 턱 붙여 놓고 “야, 인연 있으면 내년에 또 보세.” 그러곤 가거든요.
아, 그럭하고 그냥 가니까 뭐, 어쩔 수 없죠. 그 절의 스님네들은 졌죠. 사리 있나 보라고 그랬고, 하하. 그러니까 그렇게 그냥 턱 붙여 놓고 갔는데 그 달부터 애기가 있어서 생남을 했거든요. 그래 그 이듬해에 생일이 되니까 또 그 절에 와서 불공을 드리는데 그 스님이 나타난 겁니다, 그 객승이. 나타나 가지고 “허허! 입에다 밥을 한 뭉칠 넣어 줬더니 밥값을 했구먼.” 아, 이러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이게 우스운 게 아니라 그 속에는 참 무진 법문과 광대무변한 그런 법력이 있었다는 사실이죠.
그러니 모든 게 둘이 아닌 도리와 둘이 아니게 나투는 도리를 그 스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아서 일체 부처님이 한 찰나에 드시고 한 찰나에 나시는 도리를 다 알고 계신 거죠. 그러니 우리가 부처님 법을 배울 때 나 떠나서 부처님 법을 배우려고 하지 마시고 부처님 그 형상은 모두 내 형상이요, 부처님 마음은 내 마음이요, 부처님의 생명은 내 생명이니 둘로 보지 마시고 진실하게 일배를 올리더라도, 백팔배를 올리기 이전에 일배도 일배요 백팔배도 일배입니다. 아침에 마음먹었던 것과 저녁에 마음먹은 것이 어찌 시간과 공간이 비어 있겠습니까? 둘이 아닙니다. 그 도리는 무심 축지법을 안다면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도리를 알게 되고 나툼을 알게 되는 그 법입니다, 바로. 그러니 여러분이 그저 빚이라도 내다가 상을 잘 차려 놓아야만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가난하면 그냥 자기 먹는, 즉 말하자면 아주 급박하걸랑은 냉이죽을 끓여 놨더라도 그걸로라도 하시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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