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기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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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큰스님 법문 중에 어느 소녀가 홀로이 배고픔도 이기지 못하고 추움도 이기지 못해서 닥치는 대로 먹고 닥치는 대로 불을 지펴서 그 불씨는 그대로 불기둥이 돼서, 천 길이나 되게 불길이 솟았고 그 둘레는 만 둘레나 되니, 오고 가는 사람이 모두 두루 옷을 벗고 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꺼지지 않는 불기둥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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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요거 한마디를 더 해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꿰고 뚫어서 인간 주처 자체하고 결부된 이 자체를 바로 전력이라 해도 좋고 에너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요걸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잘 알아들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에너지가 불타고 있듯이 있는데, 그것을 움죽거리지 않으면서도 능력을 배출시킬 수 있는 그 무한의 기둥, 불기둥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데 이 마음으로써 거기다가 만약에, 예를 들어서 얘깁니다. ‘병이 났으니 이 병을 너밖에 해결할 수 없다!’ 하면 그 불기둥에서 자연적으로 약사라는 이름을 가지고서 빈손이 하나 나와서 병이 난 사람한테 결부가 됩니다. 바로 한 찰나에 결부가 돼서 한 찰나에 그 병을 없애 줍니다. 예를 들어서 불기둥에서 나간 거니까 불로다가 그냥 제거시키는 거죠. 어떤 거든지 막론하고 제거가 되는 거죠.
그러면 거기에 빈손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겠습니까? 빈손이 말입니다. 우리가 거기에다가 ‘명이 짧으니 명 좀 길게 해 주십시오.’ 한다면 칠성부처의 빈손이 나오게 돼 있거든요. 칠성부처라는 그 이름이 빈손에 쓰여 있어요. 허허허…. 그래서 그 칠성부처의 빈손이 나와서 한 찰나에 결부가 돼서 그 명을 다소나마라도 이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죠. 그것뿐이 아니라 지장보살의 빈손도 있고 산신의 빈손도 있고 주해신, 주림신 뭐, 모두 우리가 연결할 수 있는 대로, 용도에 따라서 내 앞에 닥치는 대로 그 불기둥에 넣으면 자동적으로 빈손의 그 이름이 탁 나오면서 자기와 결부가 되는 거죠. 과학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원자의 그 기둥 안에서 입자가 수만 개가 있는데 그 입자가 나올 때는 바로 입자 하나에 칠성부처니 지장이니 뭐, 전부 헤아릴 수가 없이 그렇게 나와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응신이 돼서 찰나에 이끌어 주신다 이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처님의 한생각이 아촉이요, 한생각이 아미타요, 한생각이 지장이요, 한생각이 관세음이요, 한생각이 그렇게 천차만별로 나툽니다. 그거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응해 주는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니 물에서 죽게 됐을 때는, 즉 말하자면 해신으로서 생각을 하게 하면 금방 용신이 돼 버립니다. 용신이라는 것은 작용을 하는 걸 말합니다. 생각만 하고 작용을 안 한다면 무효죠. 그래서 부처님의 한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한생각을 내시지 않는다면 법신이 없고, 법신이 없다면 바로 보현신이 없어요, 작용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대로 우리에게 지금 생명의 근본, 그 뿌리인 근본이 있고, 생각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법이고, 작용하는 것이 바로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작용하면서 지금 살고 계시는 생활 속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부처님도 계시고 도심도 있고 도도 있고 공부할 수 있는 재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부처님을 찾고 경전을 보기 이전에 내 마음부터 그렇게 단련을 해 가지고 경전을 한번 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싱그럽고 광대무변한 것인지를 아실 겁니다. 경이라는 것도 교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다스리면서 배우고 나갈 수 있는 교입니다. 그 경을 보고 배우는 것도 자기의 마음 다스림에 의해서 결부돼야지 아무것도 모르고 경만 읽으면 잘되는 줄 알아서는 도저히 부처님의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고 대치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차원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종지가 있고 접시가 있고, 조그만 게 있고 큰 게 있고, 사발이 있고 대접이 있고 큰 자배기가 있고 이렇듯이 말입니다. 사람도 종지와 같은 차원의 그릇이라면 간장밖에 담을 수 없습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여러분의 차원이 접시라면 그저 나물 무친 거밖에는 놓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의 그릇이 바다가 되라 이 소립니다. “그 불기둥에 놔라. 놔라.” 하는 것은 한바다에 물 몇 그릇 붓는다고 두드러지지도 않을 것이고, 물 몇 그릇 퍼낸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맑은 물, 더러운 물, 구정물, 흙물, 핏물, 고름물 할 거 없이 다 들어가도 다 바닷물일 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가라앉혀서 그대로 양식이 돼서 만생을 다 먹이고도 남을 수 있게끔 되는 것이 바다의 이치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넓고 광대무변한 겁니다. 마음은 체가 없어서 이 마음 하나가 지금도 여러분의 집을 점프해서 갔다가 올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면 밥통에 밥해 놓은 것도 볼 수 있고 자기 가정에 무엇을 해 놨는지 볼 수 있듯이, 공부를 하면 그렇게 볼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무엇을 해 놓고 살고 있고 무엇을 어디다 두고 한 것까지도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보고 계시죠? 그렇다면 빛보다 더 빨리 가서 보고 오신 거 아닙니까? 그러니 말입니다, 이 공부를 하게 되면 그냥 아무 데나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그쪽 것을 보고자 해서 그것이 찰나에 봐질 때, 한 귀퉁이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 첨보해서 보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중한 공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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