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바깥으로 끄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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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참나를 발견해 보겠다고 늘 안으로 마음을 집중하려고 하는데도 어느 새 이 마음이 바깥으로 끄달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바깥으로 끄달리지 않고 참나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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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주인공이라고 하는 자체는 개별적인 내가 아닙니다. 내 몸속으로도 수십억 마리가 지금 회전을 하고 있는가 하면, 내 마음으로 짓는 그 찰나가 고정됨이 없이 공해서 돌아가고 있거든요. 바깥의 외부의 일도 바로 나 자체 이 개별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밖으로도 개별적인 나가 아니요, 내 속에 있는 생명들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니다 이 소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는 건 ‘내가 이렇게 살고 있지.’, '나야. 내 거야.' 이럴 수가 없죠. 여러분 몸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회전해 주고 생명을 유지시키고 또 여러분을 이끌어 가고 말도 하게 하고 똑똑하게 다니게도 해 주는데 모두 내가 혼자 나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몸속에 들어 있는 그 생명체들은 무시하는 거죠.
모두가 둘이 아니게 한마음으로서 서로 고정됨이 없이 내부나 외부나 같이 공생, 공용, 공체, 공식 하고 이 우주 전체가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개별적인 나 하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을 총합해서 ‘주인공'이라 한다면 내 근본에다가 맡겨 놔야죠. ‘야! 내가 억겁 천년 전서부터 이끌어 온 것도 바로 내 주인공이요, 나를 형성시킨 것도 내 주인공이요, 바로 지금도 끌고 가는 게 바로 내 주인공이요, 내 주인공밖에는 해결할 수가 없다. 내 아픈 것도 내 주인공밖에는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 내가 가난한 것도 이끌어 주는 건 바로 내 주인공밖에 없다. 내가 일이 막혀서 안 되는 것을 이끌어 주는 것도 내 주인공 밖에 없다.’ 이렇게 진짜 당황하지 않고, 이 물질적으로다가 자꾸 끄달리지 않고, 옆에서 죽는대도 눈 하나 깜작거리지 않고 주인공에다 맡길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저절로 바로 승천이 돼요. 각자 여러분 한 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대도 없고 생활도 없고 부딪칠 일도 없고 부처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부처가 있는 것이고 진리가 있는 것이며, 생활이 있는 것이고 바로 가정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바깥으로 끄달리지 마시라는 것은 세 가지 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를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둘째, 내 몸을 이끌어 가는 데에 있다. 셋째는, 내 가정과 모든 사회를 끌어가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것은 왜냐하면 부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너무 멀리 찾아요. 부처님이 가죽 속에 모두, 이 원 안에 전체가 들어 있다면 주인공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풀포기 하나 빼놓지 않고 같이 다 들어서 동일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이 나 이외에 따로 있는 줄 알고 ‘나 좀 잘되게 해 주시오. 우리 아들 좀 잘되게 해 주시오.' 칠성한테 가서 빌어야지, 산신한테 가서 빌어야지, 여기 가서 빌고 저기 가서 빌고 그러다가 보니까 용왕까지 가서 무슨 뭐, 거북이나 미꾸라지나 이런 거…, 이름 써서 갖다가 넣고선 그것도 또 잘해 달라고 해요.
이렇게 하다 보면 여러분은 귀신 아닌 귀신 짓을 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가르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귀신 짓을 한다면 여러분이 죽어서도 그 의식이, 그 습성이 그대로 남아서 요다음에 또 나와도 그 습성 그대로 가질 겁니다. 그러니 그 습을 떼지 못해서 또 그렇게 허우적거리고 또 고생을 할 테죠. 사람으로만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털옷을 입을 수도 있고…. 만약에 뱀 허물을 쓸 수도 있는 거고 인간의 허물을 쓸 수도 있는 거지만, 인간도 얼마나 차원이 천차만별로 많습니까?
살아나가는 걸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상인은 상인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화가는 화가대로, 또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철학자는 철학자대로 아주 자연히 누가 그거를 가리지 않아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끼리끼리 모여서 끼리끼리 장단 맞추고 끼리끼리 그렇게 모두가 정말 그 춤에 맞춰서 사는 거예요. 배추 장사를 하더라도 규모 있게, 이 주인공 자기가 있기 때문에 한다는 겁니다.
이 몸뚱이는 참자기의 시봉자밖엔 안 돼요. 즉 말하자면 시자다, 또는 심부름꾼이다 이렇게 말해도 되겠죠. 마음이 동하질 않으면 이 자기 마음 주인공이 고집이 세어 가지고요,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않거든요. 내가 하기 싫고 내가 거기에 틀리다고 할 때는 아주 그냥 몸이 전혀 움죽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게 누구의 심부름꾼이겠습니까? 자기의 자기가 심부름꾼이죠. 나는 관리인이요, 심부름꾼이다. 부지런히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는 이러한 바쁜 세월에서 ‘그대로 나는 내 주인공의 그 뜻에 의해서 부지런히 뛸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어떠한 걸 막론해 놓고 해결 못 하는 것도 없고 또 못 한다 할지라도 안 되는 것도 고정되지 않고 되는 것도 고정되지 않으니, 그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주인공이 그렇게 진실하게 믿어진다면 나도, 모두가, 모든 일체 생명이 다 같이 호응을 하고 돌아가는 겁니다. 마음이 그렇게 없다면 인연이 없는 일이죠. 그러니 내 몸속에 있는 그 생명들도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일체 놓는다면 악업이나 선업이 다 자동적으로 녹아 버리고 바로 그 생명들이 바로 보살로 화해서 여러분의 털구멍으로 들고 나면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간다 이겁니다, 오히려 나쁘게 하기 이전에.
그러니까 여러분은 바깥으로 끄달리지 말고 그 주인공을 진실히 믿어야 합니다. 내가 저 죽은 걸 보는 것도 주인공 때문이요, 남한테 따귀를 맞는 것도 주인공 자기 탓입니다. 자기가 눈에 보이니까 맞은 거지, 눈에 안 보이면 맞을 리가 있나요? 자기 탓이지. 나는 잘했는데 왜 저 사람이 때렸느냐고 하지 마시라 이거죠. 자기가 있기 때문에 맞은 거니까. 그러니 맞은 것도 자기 탓이죠. 어저께 어떠한 문제가 생겼으니까 맞는 겁니다. 꼭 때려야만 맞는 게 아니라 불손한 일을 했으면 불손하게 들어올 거고 선한 일을 했으면 선하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깨닫는 데에 목적이 있는 거고 나의 병도, 나를 건강하게 끌고 가는 것도, 가난한 거를 끌고 가는 것도, 모든 게 여기 여러분이 체험하고 그것을 연구하고 또는 지혜를 기르면서 그렇게 해 나가신다면 스스로 그렇게 됩니다. 그 외의 말은 더 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여러분을 발견을 해야 그때서부터 진짜 공부니까요.
그런데 깨치지 못했다고 해서 내 가정을 화목하게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만 해 나가신다면 오늘부터라도 내 마음이 편안하고, 바로 내 마음이 편안하면 남의 마음이 편안하고, 한 가정이 화목하고, 내가 밥을 굶어도 허허 웃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생기고. 나로 인해서 옆에서 운다 하더라도 내가 거기다가 놓고 가면 거기까지 밝게 불이 들어와서 우는 것을 뚝 그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못 믿는 겁니다. 번연히 알면서도 못 믿는 사람, 그건 배냇병신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체험을 해 보고 ‘아하! 이렇게 신성하고 맛 좋은 것은 난 처음 봤어. 처음 먹어 봤어. 처음 느껴 봤어.’ 이러는 거지 남이 느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내가 나를 보고 “여러분한테 내가 이익을 줍니다.” 또 “여러분한테 내가 특별히 무슨 뭐를 잘합니다.” 이렇게 해서도 아니 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내가 목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는 스스로 자유인이 돼야 됩니다. 스스로 정말이지 지혜로운 마음과 우주를 다 집어삼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러한 자유인이 되신다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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