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부딪쳤을 때 욱 일어나는데…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상대와 부딪쳤을 때 욱 일어나는데…

본문

질문

공한 도리를 알아보겠다고 공부를 하면서도 상대와 부딪쳤을 때 욱 일어나는 제 마음을 보면 힘이 쭉 빠지게 됩니다. 그냥 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정말 진짜로 실천하면서 제대로 공부 한번 해 보고 싶은데 도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은 내가, 그 사람이 내가 돼 볼 줄은 한 번도 생각 안 해 봅니다. 해 보는 양반들도 있겠지마는 대부분 안 해 보고 넘어갑니다. 서로가 말다툼을 할 때도 한번 그 사람이 내가 돼 본다면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를 잘 알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 자체,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내가 돼 본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고깝게 듣지도 않을 것을, 내가 돼 보지 않는 그런, 내 주장만 하는 그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내가 잠시 어느 그 사람이 돼 보니까 너무나도 참혹하고 괴로웠습니다. 내가 병 앓는 것처럼 얼마나 고달팠던지 그 문전에 나오면서 그 사람이 또 문전에 나가는 것이 바로 내가 나가는 것 같고, 내가 나가면서 생각해 보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눈물이 흘렀거니와 나 역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후에 그 사람의 병은 나았죠. 물론 내가 낫게 한 것도 아니고 그가 낫게 한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공심으로서의 공용을 하고 있으니, 공한 자체가 바로 부처님이니까 내가 했다고 할 수도 없지만, 바로 내가 있기 땜에 길을 인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길을 인도했으면 바로 인도한 사람도 있거니와, 내가 있으니까 길을 인도를 받고 생각을 낸 겁니다. 이게 길잡이입니다.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 부처라면 생각을 냈으니깐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도리이자 법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모든 것을, 우리가 고깝게 듣기 이전에 내가 그 사람이 한번 돼 본다는 거. 또 남이 아프면 한번 그 아픔을 내가 대신 그 사람이 돼 볼 수 있는 그 마음 가짐가짐. 모든 것을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다면 가정이 화목하고 남남끼리도 화목할 수 있고, 또 친척들하고도 화목할 수 있건만 어디 그렇습니까, 지금 세상이. 그저 마음으로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을 안 해 주니까 할 수 없이 말다툼을 하게 되고 이러는 수가 또 많습니다. 그럴 때는 말을 아예 하지 말고, 마음과 마음끼리 통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다는 얘깁니다.
말을 해서 듣기 좋은 말은 하고 또 듣기 싫은 말은, 해서 소용없는 말, 외려 더 악화를 일으킬 말들, 이런 거는 좀 삼가면서 자기 주인공에 일임해서 맡겨 놓으면서 항상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게끔 지혜를 갖는다면 우리가 공부하는 데도 ‘야! 우리가 집안에 이렇게 급한 일이 있는데 공부하라고? 공부보다도, 참선하기보다도 지금 아프고 괴롭고 가난이고 또는 우환이 끓는데 어떡하면 좋으냐.’ 하고 그걸 급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우환과 가난, 또 병 이런 것들이 다 내 주인공, 그 ‘공’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는다면 거기에서 다 그것이 슬슬슬슬 녹아 가면서 봄이 오듯이 그렇게 녹는답니다. 모든 게 다요.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사람이 누구나가 자기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여러분이 적게 아프든 많이 아프든 또는 몸이 아파서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진정코 아픈 사람이 많아요. 진정코 마음이 아파.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프고 참,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이 항상 돼 주는 마음으로써…. 아니, 이건 가면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가면을 쓰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아니고 가설하는 것도 아닙니다. 같이, 항상 마음을 같이해 주고 있습니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지. 아프지 않게 우리 같이, 아픈 거 아프지 않은 거를 다 한데 합쳐서 우리 아프지 않게 하자.’ 하고 같이 항상 같이해 줍니다. 그럴 때는 어느 땐가 꼭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살 겁니다.

우리 인간이 부처님 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한군데로 기울어져서, 종교에 미쳐서 이렇게 기울어지라는 게 아니라 평등한 진리를 파악하고 대승이 뚜렷하고 참…. 인간이라는 이 두 글자 자체가 얼마나 성스럽고, 참 아주 개발적이면서도 영구적이고, 포괄적이면서도 어디까지나 생동력 있고 자유스럽고,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누가 종교를 믿으면 “아니, 왜? 우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 놓고 보면 뭘 어떻게 하고 산단 말입니까? 그럼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죽으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죽는다 하면 사는 길이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나 자체는 사량과 더불어 육안으로 보는 거고, 육의 이 모든 달린 데서, 즉 오관을 통해서 들이고 내고, 이거는 사량적인 문젭니다. 그러나 잠재의식 깊은 속에서 같이하고 100%가 움죽거린다면, 우리가 연구한다고 개발한다면, 우린 인간으로서 첨단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유인이니 각을 이루었느니 도니 이렇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공부를, 공부라고 할 것도 없지마는, 참선이라고 할 것도 없지마는, 평상시에 일분일초도 떼어 놓지 않고 자기가 사는 것이 그대로 참선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자기를 세우고, 자기한테 모든 것을, 자기가 하는 거 자기한테 놓으라는 얘깁니다. 사량적으로 아만을 일으키고 아상을 일으키고, 내가 제일이고 내가 하는 거고, 내 거고 내가 줬고, 내가 줬기 때문에 살고…. 모든 것을 이렇게 마음을 먹어서는 절대 이 공한 진리를 알 길이 없습니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