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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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님들께서 늘 일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거 보면 참선 공부하는 데도 그런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부러 생각을 할 때는 막연하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것도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생활에 빠져 잊고 살게 됩니다. 올 새해에는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싶은데 막연하게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확실하게 느껴 보고 싶습니다. 도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이걸 똑바로 아셔야 됩니다. 생활을 떠나서는 참선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 법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선을 한다, 와선이다 입선이다 행선이다 이 모두가 앉으나 서나 생활이 그냥 참선이기 때문에 그걸 한데 합쳐서 참선이라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 앉아도 여러분이 앉은 것이고, 선 것도 여러분이 선 것이고, 눕는 것도 여러분이 눕는 것이고, 똥 누는 것도 여러분이 똥 누고, 먹는 것도 여러분이 먹고, 자는 것도 여러분이 자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니라면 부처는 없죠. 아니 부처만 없는 게 아니죠. 세상도 없고 가정도 없고 형제도 없고 부모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선이라고 그러는 거는 이론이나 학설, 말을 잘해서 연구를 잘하고 또 교리를 잘 알아서 체계 있게 한다고 해도 참선이 아닙니다. 참선이라는 것은 내가 살면서 실험하고 체험하면서 느끼면서 가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마음을 잡고 발견해서 발전시키고 창조력을 기르고 생활이 과학인 줄 알고 그대로 가는 것이 참선입니다. 이 세상에 어린애를 낳는 것도 바로 과학입니다. 벼를 심어서 쌀을 만드는 것도 과학입니다. 그 쌀로 밥을 지어 놓는 것도 과학입니다. 어느 것 하나 과학 아닌 게 없습니다. 어느 거는 과학이고 어느 거는 과학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생활 속에서 물리가 터지려면 이런 것도 좀 알아 두셔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일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왜 스님네들이 허허벌판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그 비를 맞으면서 그냥 풀섶에 그냥 앉아 있고 물이 흘러 내려가는 데 앉아 있기도 하고 천둥 번개가 치고 그러는 데 앉았기도 하고 높은 산골짜기에 앉아 있기도 하는 줄 아십니까?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감사한 줄을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쇳송을 했지만 ‘오종대은(五種大恩)을 알라, 일체제불과 더불어 일체 생명 전체에 감사할 줄 알라’ 이 소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을 내지 않고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도 감사한 줄 알아야 됩니다. 지·수·화·풍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줄 알고 이 세상 풀 한 포기도 감사히 생각할 수 있어야만 된다 이겁니다, 곤충 하나도.
그건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수억겁 광년을 거치면서 쫓고 쫓기면서 먹히고 먹으면서 이 세상에 거듭거듭 거쳐 나오면서 진화돼서 인간이 제일 나중에 났다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부모가 내 부모요, 어느 자식이 내 자식이라고, 이렇게 생각하겠습니까? 거듭거듭 거치면서 짐승의 부모도 됐다가 짐승의 자식도 됐다가, 곤충의 부모도 됐다가 곤충의 자식도 됐다가, 또 딴 부모의 자식이 됐다가 딴 부모가 되고…. 거듭거듭 구름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고 또 딴 구름하고 모이고 흩어지고 또 모이고 이렇게 하는 것과 우리 인생살이가 같습니다. 그러니 남의 부모만 남의 부모고 내 부모만 내 부모라고 할 수 없는 그 도리가 바로 이 진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오종대은을 아는 사람, 그 모두 둘이 아닌 줄을 아는 사람은 보살의 행을 할 수가 있다. 모든 데 착을 두지 않고 사랑할 줄 알고….
이 돈이고 흙이고 돌이고 생명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돌아가지 않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닙니다. 다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두를 가지고 이거 끊어질까 봐 붙들고는 얽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옳다고 하면서 타의에서 구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진실되지 못합니다. 진실되게 믿으면서 진실되게 구하고 진실된 나를…, 참나를 구하는 소식을 그때서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살아 보시지마는 어떠한 경험을 얻는다 하더라도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면 할 수 있겠습니까?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이 뛰어넘을 수 있는 겁니다. 기술도 그렇고 모든 게.
그런데 생활에서 행하면서 그대로 참선이라고 하는데도 그것도 지키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습니까? 허공을 믿습니까, 이름을 믿습니까, 형상을 믿습니까? 모든 거를 잘 살펴서 세 가지가 다 충분해야만 따르라고는 했습니다. 뜻과 말과 행을 따르라고. 믿는 건 자기 자신을 믿는 겁니다. 자기, 즉 수십억 마리를 마음으로 다스려서 한마음으로 묶어 세운다면 바로 주장자입니다, 그게. 그리고 중심입니다. 그 중심이면서도 찰나찰나에 돌아가니까 공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저런 풀잎 하나도 감사하고 저 물이 흘러가는 것도 감사하고…. 물이 여러분한테 그렇게 말할 겁니다. “나같이만 살았으면 아무 일 없을 텐데….” 물이 그럴 겁니다, 아마. “나는 어떤 게 막혀도 그냥 이렇게 돌아서 내려가니까 아무 지장이 없는데 사람들은 막히면 뚫고 나가려고 애쓰니깐 더 막히는 거지.” 하고 흉을 볼 겁니다. 또 흙은 흙대로 자기처럼 살라고 합니다. 아무리 파 제끼고 해도 왜 파느냐, 아프다, 어떻다 한마디 없어요. 뒤집건 메꾸건 뭐, 짓밟건….
그래서 모든 것이 나 아님이 없고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바로 그렇게 둘로 보지 않는다면 서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해요. 개가 그냥 서로 싸우는 거 같이 보이죠? 그건 사람들이 들에 부부가 나가면서 서로 장난하고 그러는 거나 똑같은 얘기죠. 사랑하는 소리가 그냥 사람이 볼 땐 싸우는 걸로 봅니다.
그러니까 이 모두를 나같이 알고, 즉 여러분같이 알고 감사히 생각하라. 그 은혜를 생각하라. 국왕의 은혜도 알아야 하고, 국민의 은혜도 알아야 하고, 부모의 은혜도 알아야 하고, 형제의 은혜도 알아야 하고, 모든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 같이 살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 수는 없죠. 혼자 산다면 옷도 입지 말아야 하고 먹을 것도 먹지 말아야 하고, 뭐, 땅도 딛지 말아야 하고 이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주 만유를 창조해 나가는 인연의 필연적인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큰 것만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 돌아가는 지혜를 찾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진실하게 떼어 나간다면 그 안에서 물리가 터지는 기쁨과 고마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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