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잘 회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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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살아가는 데에 정신없어 제 인생을 살필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퇴임하고 시간이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제 인생길을 돌아보게 됩니다. 비록 살림은 좀 곤궁하겠지만 이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 남은 인생을 잘 회향하고 싶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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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옛날에 어느 딸이 소를 몰고 나갔어요. 근데 소를 몰고 나간 딸이 안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안 들어오니까 어머니는 부엌에서 그냥 화가 나서 발발발발 뛰는데 아버지는 그러거든요. “나갔으면 소를 다 처리했겠지, 뭘.” 하더랍니다. 그래서 딸이 들어왔는데 그냥 맨손으로 그냥 터덜터덜 들어왔어요. 그래서 “왜 소는 안 가져 왔느냐?” 그러니까 딸이 하는 소리가 “네 기둥을 매고선 네 발을 묶어 놓고 그 가운데다 불을 질러서 구워서 동네방네 사람들하고 다 구워서 잘 먹었습니다.” 이거예요. 이해가 갑니까? 이해가 안 가죠?
그 아버지 따라서 벌써 딸은 깨침이 있었단 얘깁니다. 그 어머니도 깨우쳐 주려고 그렇게 해도 어머니는 아둔해서 영…. 그러니깐 그냥 펄펄 뛰고 그 소를 얼마를 주고 샀는데 그 소를 갔다가 다 구워서 동네방네 사람들을 다 먹였느냐고 야단을 하죠. 그러니까 딸이 있다 하는 소리가 “나도 없고 소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데 뭘 그렇게 야단을 하십니까. 어차피 소 한 마리 가지면 동네방네가 다 먹어야, 즉 말하자면 이 세상이, 삼세가 다 먹어야 할 일인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하십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엉뚱나간 소리를 하는 거죠.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가 바로 현재 일심으로 돌아가니 그게 과거가 따로 있고 미래가 따로 있고 현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거 소 한 마리 가지고 다 먹였다는 게 그게 얼마나 거룩한 일입니까. 삼세를, 삼세의 모든 인연들을 다 먹였다는데. 동네방네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거죠. 왜냐? 이게 그걸 모르면 팔자 운명으로 돌아가지만 우리가 과거도 현실이고 미래도 현실이고, 현실도 공했다. 그저 마음에 따라서 육신은 움죽거리니까 어떤 거 움죽거렸을 때 내가 움죽거렸다고 할 수 없겠죠. 매사 게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가워서 악수를 하니까 “어떤 게 먼저 가더냐.” 하니까 마음이 먼저 가더라. 그러니깐 손이 그냥, 그냥 따라서 그냥 가더라. 그러니까 몸뚱이 하나 움죽거리는 게 전체예요. 전체인데 그렇게 움죽거리는 걸 잘 리드해서, 잘 다스려서 이렇게 자기가 마음을 잘 내면 될 거를, 요만한 것도 잘 못 내고 크게 만들어선 그냥 불려 가지고는 오히려 그냥 자기가 상처가 나고 문제가 이루어지는 거죠.
여러분이 살면서 그 마음을 안유시켜서 편안하게 만들고 사는 게, 캠핑 나와서 한 철 사는 게 다 그러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냄비가 있으면 냄비대로 솥이 있으면 솥대로 그냥 이렇게 사는 거죠, 뭐. 한 철 사는 건데. 그렇게 좀 마음을 넓게 쓰고 그렇게 한 철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에서 탤런트들이 한 철 고렇게 영화 막이 내리면 그뿐인 거를 뭐, 갈 때 거지 역을 맡으면 어떻고 머슴 역을 맡으면 어떻고 대왕 역을 맡으면 어떻습니까? 칼잡이 역을 맡든 도둑 역을 맡든 어떤 역을 맡아도 그게 단순하게 한 막이 내리면 그뿐인 줄 알고 있으니깐 그거 아무렇게나 나가도 편안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 모습을 가지고 그냥 몇천 년, 몇만 년 살고 이러는 줄 알고, 그냥 모두 이거는 차곡차곡…. 물론 그렇죠. 깨끗하게 하고 사는 거는 좋아요. 그러나 욕심 많게 쌓아 두려고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죠, 모두가. 이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죠. 그래서 내가 낑겨 둔 뭐가 있다면 빨리 내줘야 마음이 시원하니까 빨리빨리 그 즉시에 이렇게 나누어 주듯이 또 마음도 역시 그래야 우리가 회향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집을 지어서 끝을 마쳐도 회향이고 밥을 지어서 밥을 먹고 나도 설거지를 다 해야 회향입니다.
이 회향이 너무 많고, 이 만물만생이 다 여러분들의 아래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스승이에요. 돌 하나라도 스승이에요. 그게 없다면 우리가 보고 배울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구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보고 배울 수가 있어요. ‘저렇게 나쁘게 해선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요. 보니깐 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중세계의 진리니까, 삼세를 돌아가는 수레와 같은 진리이니깐 우리는 ‘삼세를 뛰어넘었다, 점프했다, 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금방 밥을 굶게 되든 그냥 뭐가 되든 그냥 그 주장자 거기에, 자기는 심부름꾼이니까 그 주인더러 그냥 맡겨서 ‘네가 끌고 다니든지 살리든지 죽이든지 너 맘대로 해라.’ 하고는 그냥 편안하게 해 두면 다 제가 형성시켜 놓은 거기 때문에 다 끌고 다니며 먹여요. 예전에 내가 그랬어요. 칫솔 하나 안 가지고 나갔지만 끌고 다니며 다 먹이더라고요. 하다못해 뿌리 하나를 먹이고 싹 하나를 뜯어서 먹여도 먹이더라고요. 살기 위해서 먹는 거지, 맛있게 먹으려고 그거 먹는 거는 아니잖아요.
저 나무들을 보세요. 나무들이 말입니다, 자기 뿌리에 그냥 몽땅 다 달려 있는데 싹이 무슨 걱정입니까, 글쎄. 바람이 부니 걱정입니까, 비가 오니 걱정입니까?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뿌리에다가, 뿌리에서 다 하는 거기 때문에 뿌리가 싹을 죽이게 되면 요 뿌리가 더 내려서 깊이 박혀요. 그것도 생각이 있고 말을 하고 그래요. 흔들흔들해서 비가 와서 넘어질 것 같으면 뿌리를 그냥 사방에다가 넓게 박아요. 그래서 저런 나무들도 초식도 그런 생각을 하고 ‘아이고, 저 올해는 많은 비가 오고 많은 장마가 드니까 내가 뿌리를 튼튼하게 둬야겠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실천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못 해서 어떡하겠느냐는 얘기죠.
그러니까 생각을 그저 아무것도 거기 붙임 없이 오직 살아나가는 그 모두를, 일거수일투족을 다 거기서 한다고 생각을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 구녁밖엔 없어요. 구녁 없는 구녁이 그 구녁밖엔 없다고요. 일체제불이 통과하는 구녁은 그 구녁밖에 없다고요. 그리고 일체 만물만생이 통과할 수 있는 구녁이 그 구녁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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