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처럼 자비하게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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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격이 좀 무뚝뚝한지 아이들이 제게 가까이 오는 거를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도 아이들을 엄마같이 따뜻하게, 큰스님처럼 자비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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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지금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과 같이 틈을 주지 않는 마음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데 거기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돌고 있는 도리를, 본래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 치의 틈도 없이 돌고 있는 이 세상을 바로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래부터 자기의 근본은 시공을 초월하고 모든 상대적 세계를 초월하여, 고정된 바 없이 쉴 사이 없이 나투어 돌아가고 있으므로 본래 그 어떠한 악업 선업마저도 붙을 자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상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항상 얘기하듯이 부처님께서는 ‘생활에 어떠한 악업 선업이 있다 해도 결코 거기에 속지 말라, 걸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근본 자리는 어디에도 고정되게 머무는 바 없지만 그 어디에도 쉴 새 없이 나투어 돌아가고 있으므로, 그것을 “공했다, 주인공이다”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오로지 자기 주인공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진실하여 결코 물러섬이 없다면, 마치 타는 불에 떨어지는 눈처럼 어떠한 악업이라도 스스로 녹아버려 해결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인공에 대한 믿음에 물러섬이 없다면 자연히 일체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일체를 둘 아니게 보게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자비가 우러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백지 위에 그려진 글씨를 알려고 10년, 20년을 애쓰지 말고, 글씨 쓴 백지, 곧 “너 자신부터 알아라! 너 자신부터 믿어라!”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자신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 마음이 탁 터지게 되고 또 모두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되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일체 모든 것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왜 그 ‘고(苦)’를 당하고만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려고만 하지 하나라도 실행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그러니 알려고 하는 그 마음을 쉬고, 알려고 하는 그놈이 누구인가를 지켜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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