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는 애완견이 축생고에서 벗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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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애완동물들을 많이 키우는데 그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동물로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 곁에 있으니 마음공부를 하기가 더 쉽겠죠? 저도 애완견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그도 빨리 진화돼서 축생고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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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 가까이에 개나 고양이, 집에서 기르는 말, 소 이런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많이 보고 왔고요. 그런데 우리 사람들도 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 몇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런 짐승들도 몇 안 되지만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이 있습니다. 그네들은 인간처럼, 인간이 돼야만이 벗어날 생각도 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두 발로 걷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항상 사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자기 생명까지 겁니다. 몽둥이로 때려도 울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하면서 그렇게 바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보다 더 나은 짐승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주인의 은혜를 생각해서 항상 생명과 몸을 다 바쳐서 때로는 그 식구가 다 죽을 거를 면케 해 주는 그런 짐승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짐작하시겠죠.
옛날에도 내가 말했죠. 어느 대갓집에서 농사를 지으면 항상 이 쌀을 갖다 놓고선 그 싸래기 빻은 거는 항상 쥐들 먹으라고 풀어 놔 줬다고요. 그 주인이 지혜가 풍부해서 그렇게 마음대로 먹게 놔두니까 쌀을 건드리지를 않았더랍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식구가 다 죽게 생겼어요, 쥐들이 보니까. 그 은혜를 생각하면 어떻게 갚을 길이 없어요. 그 은혜를 생각하고 많이 배웠어요, 쥐들이.
그래서 쥐 모습을 벗어 버리려고 무지하게 앨 쓰고 가던 중 어느 날, 그 옛날에는 기와집을 하면은 그 진흙을 갖다가 그냥 포겸포겸 놓아 가지고는 기와를 올렸더랍니다. 근데 그게 오래돼서 몽땅 가라앉으니깐, 자는데 그 식구가 다 죽겠거든요. 그래서 쥐 새끼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다 나와서, 마당에 나와서 막 삑삑거리면서 춤을 췄답니다. 막 춤을 추니깐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여러 마리가 그러니깐 ‘이거 잠 못 자겠네.’ 하곤 나왔더랍니다. “얘, 이거 구경해라. 쥐들이 춤춘다.” 하고 그러니깐 식구가 다 나왔다 이겁니다. 다 나와서 그 구경을 하는 도중에 지붕은 폴딱 그냥 가라앉아 버렸죠. 그렇게 지붕이 가라앉으니깐 그때서야 춤을 멈추면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다 헤어지더랍니다.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람을 거쳐야 부처가 되는 까닭에. 부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걸 벗어버리기 위해서지. 그렇게 해서 그 은혜도 갚을 뿐만 아니라 은혜라고 할 것도 없이 그네들은 인간이 그 너그럽고 지혜롭게 살림살이하는 거를 다 지켜보면서 배웠더랍니다. 그래서 그 식구들도 살리고 그 쥐 새끼들도 다 홀연히 다 벗어났더랍니다. 인간으로 말이에요. 인간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
이 쥐 새끼만 그런 게 아니라 물에서 있는 거라든가, 허공에서 있는 거라든가, 들에서 있는 거라든가, 땅속에 있는 거라든가 다 공부하는 그 모습이 보입니다. 모습은 다 다르지만 오래오래 살다 보면 그런 마음이 진화가 되고 또 마음이 열리고 지혜로워지고, 그래서 남을 해치지 않고 독성을 뿜지 않고….
어느 보살님은 항상 개를 보면서 ‘너는 새끼를 뱄는데 나는 어째서 새끼가 없어서 대를 잊지 못하게 하느냐.’ 하면서 항상 눈물을 흘렸더랍니다. 그러니깐 그 개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항상 같이 눈물을 흘렸더랍니다. 그러다가 새끼를 놔 놓고는 금방 죽더랍니다. 그래서 ‘왜 죽었나. 새끼를 놔 놓고 죽었으니 이걸 어떡하면 좋은가.’ 하고 우유를 먹이면서 인제 새끼들을 기르는데 개 어미가 죽고 난 뒤 바로 애가 들어섰어요, 그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그 애를 기르는 데도 그렇게 영리하고 착하고 의리와 도의를 지키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렇게 밝고 이름이 빛이 나더랍니다. 그 개는 순간의 모습이 개였지만 순간에 바뀌어서 사람으로 그렇게 탄생을 해서 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살리려고 그렇게 앨 써도 저놈의 강아지 왜 짖느냐고 그냥 듣기 싫다고 몽둥이를 가지곤 그냥 때리고 돌맹이질을 하고 그러거든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그래서 아이, 도둑만 알지 보이지 않는 데서 들어와서 사람을 헤치는 거는 모르기 때문에, 즉 말하자면 그 개는 수 년 그 집에 있으면서 그 인간의 도리를 다 배웠고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그냥 자꾸 짖고 하는 건데 ‘저놈의 개가 짖어서 잠도 못 자게 한다’고 돌맹이로 치고 이런단 말입니다. 그러면 뛰어 달아나갔다 또 와서 그러고 또 와서 그러고 그러더니 그냥 그 식구들을 위해서 개가 그냥 죽었더랍니다. 피를 토하고 죽었더랍니다.
근데 어느 스님이 지나가다 그걸 보시고 “어, 이 집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 개는 모습을 벗었구나.” 이러시면서 “허허, 그것 참 기특하구나.” 이러면서 “너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지하게 인연을, 좋은 인연을 만나서 잘 배우고 사람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 것이니라.” 그러곤 그냥 말을 하고 가더랍니다. 그래서 그 주인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선 그 개를 얼른 거둬다가 묻어 줬더랍니다.
그렇듯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두 발로 걷기 위해서 그렇게 자기 생명과 자기 모습을 다 버리고 나섭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인간이 되면은, 중생이라고 비유를 했지만 너는 곤충에 불과하니라.”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수백 년 수천 년 내려오면서 진화가 돼서 사람은 됐으나 사람 속에 뭐가 들었나요? 그렇게 지은 인연밖엔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먹고 살아야 하고 입고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그 구조가 완벽해서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죠.
그러니깐 이 참, 부처님께서도 얼마나 그거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래서 “조복하라. 네 몸속에 있는 중생들도 둘이 아니게 조복하라.” 그 모습 속에 있는 곤충들이 이 사람과 둘이 아니어서 하나로 공해야 이 곤충 몸을 다 벗어버릴 수 있는 거죠. 이해가 가십니까?
우리 인간의 이 모습은 곤충의 집합소예요. 그 모습은 인간이고 부처라고 하지만, 마음도 그렇다 하지만 마음도 천차만별로 마음을 쓰기 때문에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곤충도 인간으로…. 우리가 살아 있으면서 그 곤충도 인간으로 화해서 하나가 돼야지, 그걸 조복을 받았다고 하고, 우리가 죽어도 죽은 게 없고 살아도 산 게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해서 어떠한 모습도 마다 안 하고 모습이 될 수 있고 어떠한 뭐든지 아니 하시는 게 없이 하시되 함이 없이 하십니다.
이 모두를 따져 보면 우리가 얼마나 인생이 남았습니까? 이 모습을 버리기 전에 우리는 이 모습 속에 있는 이 곤충도 다 하나로 부합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의식에서 나오는 그 어떠한 병세, 어떠한, 즉말하자면 세균성이나 영계성, 인과성, 유전성 이런 것이 다 몰락 그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의식이 둘이 아니라 모두가 공심으로 돌아갔는데 어떻게 그것이 곤충으로 남아 있으며 그게 어떡해서 죄로 남아 있으며 인과성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유전성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이게 참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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