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죄의식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본문

질문

저는 마음공부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저로 인해 많은 주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저를 돌아보게 되고 또 그 죄의식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참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전자에 많은 죄를 지었는데 이거 나는 어떡하나.’ 이러지 마세요. 죄가 있든 없든 다 불태워 버리는 작업입니다, 이게. 그래서 “악도 놓고 선도 놓고 긴 것도 놓고 짧은 것도 놓아라.” 하는 겁니다. 그럼 그 가운데서 솟아 나온다. 자기 참자기가 솟아 나온다. 그러면 그대로 여여하게 삶을 살 수 있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여여하게 살 수 있게끔 이끌어 줄 수 있다.
 
무조건 주는 것이 보살의 행이요, 무조건 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너는 잘했으니깐, 너는 못했으니깐’ 이 이유를 따지는 게 부처님의 법이 아닙니다. “너는 참 진실하게 잘하고 간다.” 이렇게 말들 하죠. 진실하게 잘하고 간다는 것도 집착하지 말아야죠. 평등하게 봐야 합니다. 왜냐? 진실하게 잘하고 간다 하면 못하는 게 있으니깐요. 

그래서 ‘있다, 없다’가 없다 이겁니다. 있다, 없다가 없다. 법정에서나 있다, 없다를 논의하지 이 부처님 법에서는 그냥 둥글게 여여하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씀씀이를 쓰는 데에 너그럽고 지혜롭게, 의리와 도리를 가지고, 진짜 사랑이라기보다도 자비…. 아니, 그건 모두가 이름이니까요.  이름 없는 그 진실을 그대로 행할 수 있다면…. 이런 과정이 없이는 진짜 부처가 될 수 없거든요. 
나부터 죽어야 모두가 둘 아니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살고, 내가 있다고 자부하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마음을 둘 아니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모든 게 공이다 하는 거. 이것은 항상 고정됨이 없다.  고정됨이 없으니까 함이 없이 하는 거다. 발자국을 떼어 놓아도 떼어 놓은 사이가 없다. 그것에 집착하지 마라. 악을 저질렀다고 해서 어차피 지은 거 그냥 놓아라. 그것은 껍데기가 한 게 아니라 모든 게 알맹이가 전자부터 한 거니까 알맹이가 해결을 해야지, 자기가 한 거 자기가 해결해야지 왜 집이, 시자라고 하는 이 집이 왜 상관을 합니까? 일일이 왜 상관을 해요? 울고 찌고 바깥으로 헤매고 말입니다.
 
그러니깐 고정됨이 없이 이렇게 간다고 하는 그 자체가 그냥 우리가 말을 해도 항상 이 사람하고 말을 했다가 그거 무심코 그냥, 여러분들 그렇게 놓고 가잖아요. 무심코 놓고 그냥 딴 사람하고 얘기하고, 또 이것 보고 저것 보고,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하시잖아요.  그게 바로 함이 없이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함이 없이 하는데도 이거는 있다고 우기거든요, 마음이. ‘내가 오늘 이렇게 이렇게, 내가 했는데….’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단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생활하시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가 왔으면 “어서 와!” 하고 말을 해 놓고 그러곤 갔어요, 얘기하고. 갔으면 그뿐이지, 그냥 만나서 얘기했을 뿐이지,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그것이 바람처럼 달아나갔어요. 또 왔어요. 또 만나고 또 보고 또 듣고, 남편 만나고 자식 만나고, 부인 만나고 자식 만나고 형제 만나고 이래도 그냥 만났을 뿐이지, 거기에 뭐가 붙습니까? 거기서 뒤에 또 생각이 나면 또 거기다 놓으시란 말입니다. 그 놓고 그냥 하면 함이 없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게 죄나 이런 것도 다 없다 이겁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그 가운데서 여여하게 그대로 삶을 정말 통탈하게 살 수 있다 이겁니다.
 
이 자동적인 컴퓨터 얘길 만날 했죠. 거기에 과거에 입력된 것이, 자꾸자꾸 현실에 자꾸 놓으니까 입력이 되는 대로 과거에 입력된 게 자꾸 없어진다. 그게 팔자 운명, 모두 자기가 지어 놓은 것들, 나쁜 거 이런 것이 모두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성급하게 과거에 지은 모든 업보가 한번 관하면 되는 줄 알아요. 물론 쉬운 것도 있죠. 금방 이렇게 저거 한 건 관하면 금방 그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늦게 된다, 금방 된다, 안 된다 이런 것이 없어요. 그건 자기 할 탓이니까. 자기 지혜에 달려 있고 요량에 달려 있어요. 공용으로 사용을 하느냐, 그냥 자기가 현실에 사는 것처럼 산다고 그냥 하느냐 이게 문제죠. 우리가 그대로 공용으로 하는 거예요, 그대로. 그대로 공식하고 있고요. 경전에서는 원식이라고 합디다만 그냥 공식이라고 해도 여러분들이 다 알아듣겠으니까 말이에요. 먹는 것만 식이 아니에요. 우리가 모든 생활하는 데서 나오는 걸 거기다 집어넣는 것도 공식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떤 거든지 대치를 하고 어떤 거든지, 보이지 않는 데서 나를 친다 하더라도 대치할 수 있고, 보이는 데서 어떤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대치할 수 있고, 모든 걸 자기가 여여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딴 이름은 믿고 딴 형상을 믿으면서 진짜 자기를 수억겁을 거치면서 진화시키고 형성시켜서 나온 장본인을 못 믿는단 말입니까. 진짜 장본인을. 진짜 장본인의 그 움죽거리지 않는 주장자를 싸고 있는 자기 영혼이 없으면, 불성은 그대로 있는 거지만 자기 영혼이 없으면 태어나지 못하거든요. 그 영혼을 구제를 해야, 영혼이 구제를 받아야…. 구제를 받는다는 건 그렇게 자꾸 해야 영혼과 불성과 둘이 아니게 되면서 이게 그냥 함락이 되는 거예요. 즉 우주가 함락이 되는 것과 같아요.
 
벌써 일 초 전도 과거예요. 몇천 년 전만 과거가 아니라 일 초 전도 과거예요. 그러니 ‘내가 했다. 과거에 내가 뭐 어떻게 했어. 죄를 많이 지었어.’ 이럴 것도 없고, ‘미래에 내가 어떡하면 잘 살까.’ 이런 걱정 할 필요도 없어요.  단,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내가 그렇게 원만히 할 수만 있다면 그대로 저절로 오는 거예요, 저절로. 저절로 길이 트이고, 저절로.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