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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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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길들이는 방법

본문

질문

한 철 목숨 걸고 공부해서 자유인이 돼 보자고 다짐했건만 천방지축 날뛰는 제 마음 하나 다스리기가 여간 쉽지가 않습니다. 주인공 자리에 관하면서 가고는 있지만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요. 이 날뛰는 몸과 마음을 잘 길들이고 싶은데 좀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옛날에는 자기를 다스리고 길들이기 위해서 소나 코끼리를 가지고 비유를 해서 방편을 썼는데, 나는 항상 여러분들한테 직결되게끔 방편을 썼습니다. 그 방편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한테 “첫째, 자갈을 물어라. 둘째, 많은 식량을 욕심내지 마라. 그래서 아무거나 먹지 말라 이 소리죠. 셋째, 길을 올바로 가게 하기 위해서 채찍질을 해라.” 이겁니다.
 
“자갈을 물어라.” 하는 뜻은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몸을 다스리고 길들이기 위해서 자갈을 물게 했던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안으로 모든 걸 굴려 놔라.” 이게 자갈입니다. 왜냐하면 바깥으로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저 해 버릴 말을 하고 이러는 거를 금지시키기 위한 방편입니다. 안으로 굴려 놓지 않는다면 자기를 맛볼 수 없으니까요.
 
둘째는 “모든 것을 밥을 주지 마라.” 이런 뜻입니다. 그것은 “공식을 구하라, 안으로. 안으로 공식을 구하지 바깥으로 탐욕을 내지 마라.” 이런 뜻입니다. 한마디로 해서 이걸 말을 하지만 그 문제는 여러 가지로 아마 표현될 겁니다. 그래서 공식을 구하라. 이 공식을 구하는 데는 여러 가지로 탐욕이나 뭐, 취하는 욕망이나 이런 것을 다 버리고, 그런 게 생기면은 거기다 놓고 다 몰락 놔라,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공식을 구하라 이런 뜻이죠.
 
셋째는 예전엔 소로 비유를 했고 코끼리로 비유를 했었는데요, 우리 지금 현상세계에서 가만히 보십시오. 길을 올바로 들지 못해서 남의 밭에 농사지어 놓은 거를 짓다진다면 그 얼마나 타인이 손해가 나겠습니까? 그런고로 자기도 손해가 나는 일이죠, 모두가. 이해가 갑니까? 그래서 예전에는 방편을 쓰되 “몽둥이로 때려 줘라. 두들겨 패라.” 이랬습니다. 야생마처럼, 야생 소처럼 그렇게 날뛰는 거를 두들겨 패라 이랬습니다. 올바로 길을 가라 이런 뜻이죠. 그래서 나는 채찍이라고 이렇게 말을 했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신을 길들이고 자신을 리드해 나가고 자신을 모두 이끌어 가는 데는 자기가 자기를 채찍질을 해야 된다는 얘기죠.
 
비유할 때 말입니다, 옛날에 눈먼 거북이, 귀먹은 거북이가 쏜살같이 내리는 물속에서 고개를 들고선 좀 여유 있게 이렇게 구경을 하지 못한 채 항상 물속에서 허우적거린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북이가 생각하기를 ‘한 세상에 나와서 하늘 구경도 못 하고 이거는 항상 쏜살같이 내려가는 물을 휘젓고 빠져 가면서 허우적거리고 이렇게 산대서야 이거, 이거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하고 거북이가 한탄을 했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거북이도 수십 번을 진화돼서 거북이로 태어나다 보니까 그런 생각도 했겠죠. 그래서 고생 안 해 본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이런 뜻도 되죠. 그렇게 고생을 하다 보니까 아, 좀 마음이 여유가 생기고 ‘죽어도 고만 살아도 고만. 이런 생명을 살아 뭘 하나. 하늘도 구경 못 하고 허우적거리고 물속에서 항상 이렇게 헤매고, 그러다 보면 남한테 잡아먹히기나 하고 이렇게 하는 생명이 살면 뭘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선 그냥 그 쏜살같이 내려가는 물 속에서 그냥 튀어 올라왔단 말입니다. 튀어 올라오는 그 시각에 바로 뗏목이 떠내려가다가 탁 마주쳤단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데도 그런 격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허우적거리고 그렇게 거기다 굴려 놓고 그냥 또 거기다가 ‘너만이 할 수 있어.’, ‘감사해.’ 하고 두 가지로 항상 굴리다가 어느 때에는 뜬금없이 뗏목을 만난다. 이런 뜻은 뭐냐 하면 뜬금없이 자기 그 불성 기둥이 불쑥 솟는다 이런 뜻과 같아요. 우리가 지금 쏜살같이 내려가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금 현재라고도 볼 수 있죠. 그런데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하늘을 어떻게 구경하겠습니까? 그래 어쩌다가 탁 그냥, ‘죽으면 죽고 살면 산다’ 하고 펄떡 나오는 반면에 그 뗏목이 아다리가 돼서 거기 올라서서 여유 있게 구경을 했더랍니다.
 
몰론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눈뜨고 귀 뜬 사람은 살기가 좀 여유가 있겠지마는 눈멀고 귀 먼 사람들은 살기가 여유가 없습니다. 눈먼 거북이나 똑같죠. 허우적거리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따 죽을지도 모르고 오늘 지금 살 거만 생각하고 욕심을 내고 건너지도 못할 걸 건너려고 앨 쓰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옛날에는 비유를 할 때에 그 소를, 두 번째 가선 “먹이지 마라. 굶겨라. 안으로 공식을 해서 자기가 스스로 배가 부르게 해야 된다.” 이렇게 했던 거죠. 우리가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한 치 앞도 못 본다’ 하는 것은 우리 정신계의 자기를 자기가 발전을 못 시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코끼리를 길들이고 다스리고 하는 데는 뭔 일로 그렇게 하느냐 하니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대왕을 올바로 모시기 위함이고, 둘째는 모든 중생들을, 일체 만물을 다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그 길을 들인다 이런 말을 했죠. 그런 거와 같이 자신이 자기를 길을 안 들이면 누가 길을 들이며, 자기 자신을 리드 안 하면 누가 리드하며, 자기 자신이 자기를 이익하게 하고 계발시키고 정신계의 후원이 돼서 모든 것이….

나는 그렇게 여러분들한테 얘길 했죠. 비가 안 온다 온다 이거를 알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죽는다 안 죽는다 그거를 알게 한 게 아니라, 죽는 거 사는 것을 떠나서 내가 자작, 자유스럽게 자재할 수 있는 것을 여러분들한테 얘기한 거죠. 병이 낫는다 말하고 안 낫는다 말하고를 떠나서, 병뿐이 아니라 일체 삶에 대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떠나서 내가 자유자재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목마르면 물 먹고 잠자고 싶으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 이게 얼마나 자유스럽습니까?

그런데 날아가는 새들도 자기 둥지가 떠내려갈 거를 알고서 미리 아주 철통같이 하는데 왜 사람은 자기가 떠내려갈 걸 모르고 사느냐는 얘기죠. 우리가 요거는 요거다 조거는 조거다, 이것은 옳고 이거는 그르다 이렇게 가르친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그 정말 불기둥의 위력을 모르실 겁니다, 아마.  우린 생명이 불이라고 그랬죠. 불로 인해서, 생명으로 인해서 신앙이 생긴 거라고요. 그래서 자기 자성을 완성하지 못하면 우리가 여유 있게 살 수가 없다. 우리가 지나가다가도 뭐가, 그런 걸 일부러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것 무뜩 생각이 나면은 ‘아, 이거….’ 그렇게 되게끔 돼 있거든요.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게끔 돼 있어요. 어디가 어떻게 됐든 지각이 일어나고 지혜가 생기고, 감각적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걸 모면하고 가죠.
 
“자기가 자기를 자갈을 물려라.” 이랬다고 그래서, 자갈 아닌 자갈을 물렸다고 해서 그게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자갈을 물려 놓고 스스로서 그 자갈은 없어져도, 자갈이 다 스스로 없어져도 그냥 자갈 낀 거와 같이 항상 하고 간단 말입니다.

전선으로 이렇게 불이 들어오고 있죠. 우리가 다른 걸 못 본다면 그걸 좀 보세요. 전선 줄이 말입니다, 줄이 불 들어오게 하는 거 아니죠. 줄 속에 선이 불을 들어오게 하죠. 그 전선 줄의 속에서 불이 들어오게 하지 겉에서 불 들어오게 하는 일은 없죠. 그런데 겉의 그 감아 놓은 전선 줄이 없어도 아니 되고 속의 알맹이가 없어도 아니 되죠. 그러니까 양면이 다 둘이 아니죠. 이게 없어도 아니 되고 이게 없어도 아니 되고.

그렇듯이 사람도 자기 주인공이 없어도 아니 되고 자기 육신이 없어도 아니 된다. 우리 육신은 전선 줄의 껍데기와 같은 거니까 안에 보존하고 있는 자기를 진짜로 믿어라. 그 보존하고 있는 전선 줄만이 불을 들어오게 할 수 있다. 불을 들어오게 할 수 있는 반면에 모두 밝게 살게 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모든 것을 발전시키고 영향력을 주고 모두, 일체 모든 거를 다 거기서 나오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전선의 그 알맹이를 믿지 못한다면 껍데기는 항상 바깥으로 컴컴하다고 불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안의 그걸 모르니까 믿지 못하니까 선뜻 넘어서지 못하죠. 나는 예전에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어차피 한 번 죽을 건데 뭐 죽고 사는 걸 그렇게 겁내랴.’ 그러고 아무 데라도 뛰어들어 봤던 거예요. 죽고 사는 걸 개의치 않고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셔야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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