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망상으로 집중이 안 돼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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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망상으로 집중이 안 돼요

본문

질문

나의 참나, 주인공을 발현해 보려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만 이런저런 번뇌, 망상이 일어 마음이 집중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정진할 수 있을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홈페이지관리자님의 댓글

홈페이지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학술적으로 이것저것, 잎이니 가지니 하지만 뿌리만 알면 나무 전체를 알 수 있는 겁니다. 뿌리를 모른다면 윗가지와 잎새만 알지, 뿌리는 모르거든요. 뿌리가 썩어 들어가는지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가지마다 잎새가 달렸는데, 그 잎새는 수효가 많아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걸 하나하나 세려면 셀 수가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수효로 따지는 게 아닙니다, 이 공부하는 건.
 
한생각에 우주를 쌀 수도 있고, 우주를 담을 수도 있고, 우주를 굴릴 수도 있고, 우주를 들 수도 있고 받칠 수도 있고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들을 때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 그릇 한마음이라는 이 뜻은 정말이지 뿌리 없는 기둥이요, 잎새 없는 바로 불바퀴 불기둥입니다. 불기둥이 하늘을 받치고 이 세상 돌아가는 거를 다…,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 모두가 거기에서만 배출돼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다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대로 전력을 끌어서 쓸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누가 여러분 몸을 아프게 하고, 누가 여러분을 가난하게 하고, 누가 여러분을 그렇게 뼈저리게 건건이 괴로움을 주겠습니까? 여러분이 과거에 살던 인연에 의해서 그게 업보가 되고, 그래서 지금 건건이 거기에서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의 탓도 할 것 없고 누구 원망도 할 것 없이 내 탓으로 돌렸을 때, 바로 나로부터 그 일을 벌여 놓은 거니까 나로부터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문제죠. 누가 갖다 주고 누가 뺏어 가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숙명통 컴퓨터라고 했고, 그 컴퓨터에 달려 있는 시스템은 모두가 한마음에 들어 있다는 그 사실, 과거에 살던 마음과 지금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부(父)와 자(子)가 둘이 아니게 만남이 있어야 우리가 공부를 진짜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따르게 되죠.

그런데 지금 화두를 받아서, '무(無)' 자 화두나 이러한 것을 가지고 나가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린 한 단계 넘어서야 됩니다. '이게 뭣고?' 하고 가는 것보다도…, 뭐긴 뭡니까? 그대로 한 단계 넘어서서 우리는 '내가 바로 이 세상에 나와서 공(空)했다'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나온 그 사람이 바로 화두며 공했다. 공했으니 그 무엇을 바깥으로 찾으랴. 과거는 짊어지고 나왔고 미래는 가지 않았으니 바로 현재의 여러분인데, 그 여러분이 공했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 공한 자체가 바로 그대로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앉아서 좌선을 할 때는 그렇게 하죠. '주인공만이 주인공이 있다는 증명을 해 줄 수 있다.' 또는 '네가 있다는 걸 너만이 증명해 줄 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관(觀)'입니다. 우리가 좌선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참선이라고 봅니다. 또 망상이나 어떠한 괴로움이 온다 하더라도 그 괴로움 때문에, 망상 때문에 나는 공부가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답답한 것이 나온다 이럴 때도 그런 데에 끄달리지 마세요. 팥죽 솥에서 팥죽 끓을 때에 방울방울 지어서 나오듯이 모두 한 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망상이라고 이름을 지어 놨으니까 그렇지 어찌 그게 망상이겠습니까? 수없는 중생들과 인연으로 인해 만나서 자기를 이렇게 움죽거리게 하는 직원과 같은데, 어떻게 직원을 망상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그 직원에게서 어떠한 말이 나오더라도, 어떠한 답답함이 나오더라도 그건 자기가 답답한 게 아니라 그 중생들이 답답해하니까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말리지 말고 속지 말고 '아, 답답한 건 거기서 해결할 수 있잖아. 그 한마음 속에서 말이야.' 할 때가 바로 컴퓨터에 입력된 것이 지워지는 그 찰나입니다. 입력을 다시 해 보십시오, 지워지지 않나.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뼈다귀 한 무더기, 거기다 왜 절을 했던가. 미생물에서부터 거쳐 오면서 아버지 어머니 안 될 때가 없었고 자식이 안 될 때가 없었고 형제가 안 될 때가 없었으니, 지금의 우리 육(肉)의 부모만 부모가 아니라 모두가 부모요, 모두가 형제요, 모두가 자식이라 이 소립니다. 알고 보면 한 철 이렇게 우리가 사는 동안에만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느 사이에 한 찰나에 한 철을 겪고, 우리들 그 잎새는 어디로 가랑잎이 돼서 굴러가다가 또 한 번 보이지 않는 데로 굴러서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계신 걸 볼 때에, 내 마음이 흡족하면서 한쪽으로는 정말이지 눈물겨웁도록 감사함을 느낍니다. 모두가 마음은 이심전심이요, 몸은 한 몸이요, 움죽거리는 것도 다 똑같고 생명도 다 똑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쫓고 쫓기면서 삶을 살아왔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벗어나야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 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 몸 벗기도 어렵습니다. 아파서 3년이고 2년이고, 왜 그렇게 앓는 줄 아십니까? 내 몸 벗기가 그렇게 어려워서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 몸 바깥에 있는 그 모든 물질에 착을 두지 말고, 자식이나 형제나 부부지간이나 이런 것에도 착을 두지 마시고, 내 탓으로 돌리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모두가 '당신 탓이야, 네 탓이야' 하고 '저놈의 새끼 탓이야, 네 탓이야' 뭐, 이거 이루종차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탓을 한다면 그 집안이 어떻게 화목하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같이 모여서 얼마나 살다가 가겠다고 그렇게 서로 잘못했다고 으르렁드르렁하고, 그렇게 모든 일을 부정적이고 악의적으로 끌고 나가야만 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 이 몸이, 모습을 가지고 철모르고 얼마나 살 것이며 또 철들어서 얼마나 살겠습니까? 철들어서 조금 살다 보면 벌써 머리는 희뜩희뜩하게 다 쉬어갑니다. 그러니 이 모습이 있을 때에 이 마음의 공부를 진실하게 해서 모르고 넘어가진 말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無)의 세계의 50%를 모르니까 유(有)의 세계의 50%만 알고 살게 되죠. 그래서 가섭이 아난더러 “너는, 말하자면 무의 세계, 무심(無心)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바로 무심과 유심이 한데 합쳐진 이 크나큰, 광대무변한 도리를 모르기에 한 점의 글씨도 못 쓰니까 자격이 없다.” 하고 내쫓았죠. 우리가 이 도리를 안다면 돌에 세워 놔도 산다고 항상 말을 했듯이 어디에 세워 놔도 참으로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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