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착 놓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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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머리로는 착을 놓아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자식이나 가족에 대한 착은 쉬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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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그런데 부모다 자식이다 이런 데 연연하고 애착을 갖고 붙들고 늘어지는데,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항상 말하지마는 억겁 광년을 거쳐서 이렇게 오는 동안에 우리가 도둑질은 안 했겠습니까? 생명을 잡아먹지는 않았겠습니까? 나쁜 짓은 안 했겠습니까? 모자라지는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가지각색으로 거치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자라는 사람을 보면 과거에 모자랄 때 내 모습으로 보고, 잘못한 사람이 있을 때는 바로 과거에 잘못한 내 모습으로 보라는 거죠. 그러면 속에서 악이 나오지 않습니다. 분기가 없어지고 유하게 부드럽게 말이 나갑니다. 그래서 둘 아니게 보라는 거죠.
부모 자식이다 할지라도 한 철 부모 자식이지 그 한 철이 지나면 그대로 뿔뿔이 몸도 다 놓고 갑니다, 제가끔. 원점으로 돌아가죠. 거기서 또 생(生)해서, 재생이 돼서 다시 나올 때에는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과(果)를 가지고서 이 세상에 또 출현을 하게 돼 있죠. 그러면 또 딴 부모의 자식이 되죠.
이건 인간뿐만이 아닙니다. 일체 만물만생이 다 그렇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넓게 생각을 할 때 내 부모 아닌 게 어딨고 내 자식 아닌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한 찰나에 인생이 가고, 한 찰나에 인생이 생하고 이렇게 돌아가는데 어떻게 요 한 철만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서, 친구들이 모여서 놀러 갔다고 합시다. 모여서 놀러 갈 때는 한 식구입니다. 그리고 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즐거웁게 놀다가 저녁이 되면 다 헤어집니다. 다 뿔뿔이 자기 갈 데로 다 헤어지고 그 자리조차도 내놓습니다. 그와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만 그런 게 아니라 우주의 섭류도 다 그렇단 말입니다. 저 혹성이나 핼리혜성이나 또는 어떠한 별성이든 수명이 길고 짧을 뿐이지 섭류는 한 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아래로 쭉 내려다보세요. 짐승들이나 새들이나 토끼들이나 뭐, 이러한 것들은 수명이 인간보다 짧고 그렇지만, 수명이 아주 긴 것도 있고 수명이 아주 짧은 것도 있고, 천차만별로 길고 짧고 길고 짧게 돼 있습니다. 인간은 열 달이 돼야만 낳지만, 6개월 만에 낳는 것도 있고, 석 달 만에 낳는 것도 있고, 몇 주일 만에 낳는 것도 있고 그거는 여러 층으로 아주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이 그렇게 차원에 따라서 자기한테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술자면 기술자끼리 모이고, 농사꾼은 농사꾼끼리 모이고, 배를 타는 사람은 배를 타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이렇게 끼리끼리들 모여서 살듯이 말입니다.
그런 모든 현상 속에서 우리를 끌고 다니기도 하고 다 놓아 버리게도 하는 그런 장본인인 주인공을 우리가 어떻게 믿지 않으며 어떻게 무시하겠습니까? 수억겁 전부터 생기게 해서 이렇게 인간까지 이끌어 왔는데 말입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허공을 믿을 수도 없는 거고, 이름을 믿을 수도 없는 거고, 형상을 믿을 수도 없는 거고, 스님들의 고깃덩어리인 몸뚱이를 믿을 수도 없는 겁니다.
"부처님 법이 어떠한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주먹을 불끈 쥐고선 쑥 내밀었단 말입니다. (주먹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시며) 이게 뭡니까? 이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건 내 중심입니다, 중심! 팔뚝! 중심! 이거는 (주먹을 폈다가 쥐어 보이시며) 오온(五蘊)을 다 쥔 겁니다. 이 쥐었다 하는 것은, 일체 모든 삼천대천세계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 전부 같이 돌아간다는 겁니다.
인간의 마음만 같이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태양이니 별성이니 달이니, 어느 혹성을 막론하고 같이 돌아갑니다.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근본에 직결돼 있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모두가 내 살림 아님이 없고,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이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하며 서로 주고 서로 살리기 때문에, 이 세상사가 전부 가설이 돼 있는 근본은 바로 내 마음에 가설이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 먼저 알아야 된다. 나 먼저 발견해야 된다. 나 먼저 믿어야 된다. 나는 나를 끌고 다니는 나를 믿어야 된다.” 이러는 겁니다. 그거를 믿지 않고 누구를 믿습니까? 아무것도 몰라도 "넌 누구를 믿느냐?" 하면 "내 주먹을 믿어!"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초 하나를 켜 놔도…, 보십시오! 초를 켰는데 한쪽이 기울어지게 타 들어간다면 촛농이 흐르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거를 가위로다 딱 잘라서 똑바로 해 놓고, 기울어지는 것을 똑바로 세워 놓으면 한쪽이 이그러지지 않으니까 촛농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인간의 마음도 마음으로써 다스리면서 나가는 것이 바로 그런 거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소고삐를 자기가 쥐고, 남의 파밭으로 들어가면 “파밭으로 들어가선 안 돼. 이랴!” 하고, 딴 데로 가면은 “워 워!” 해서 항상 똑바로 가게끔 고삐를 쥐어라 이 소리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안 하고 그냥 갈 수는 없는 바로 자기 공부입니다.
내 집에 전화를 먼저 놔야 남한테서 전화도 받고 전화를 할 수도 있는 거지, 내 집에 전화를 놓지 않고서는 전화를 받을 수도 없고 전화할 수도 없다. 인과법칙이라든가 또는 유전법칙이라든가 이 모든 생태의 문제들을 알려면 나부터 알아야 된다는 얘깁니다. 나를 알면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는 데에 유유하고 아주 자연스럽고, 자동적으로 정신계와 물질계를 작용하면서 베풀어 나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냥 말로만 알고 머리로만 굴려서, 이론으로만 쫙 알아 가지고 말을 아무리 잘해도 실천에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말을 배우려고 하지 말고 한 발짝을 떼어 놔도 실천을 할 수 있는 내 심력을 길러서, 하나하나 터득하면서 체험하면서 나가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꿇어앉았다고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섰다고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뭣고?' 하기 이전에 '만법을 들이고 내는 그것이 하나로 돌아가는구나.'라고 해서 그것을 능가할 수 있어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로 돌아가니까 '그놈이 뭣고?' 하기 이전에 아, 그놈이 하는 거니까 모든 걸 거기다가 되돌려 놔라 이 소립니다.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내가 들이고 내고, 나쁜 거든 좋은 거든 못났든 잘났든 내가 가는 길인데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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