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 때 마음은 어디다 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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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주인공!’ 하고 관할 때 입으로는 ‘주인공’ 하는데 마음은 어디다 두어야 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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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인간이 태어났으면 본래 자기 뿌리와 싹이 동시에 같이 태어났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게 염주가 되려면 줄에다 알을 꿰어야 염주가 되죠? 그렇다면 사람도 염주와 같이 그렇게 겸해서 가지고 나왔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어디를 찾아야 하고 어디를 믿어야 하고 이런 게 없이, 육신과 정신계가 본래 이렇게 꿰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염주알은 어디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염주를 꿴 줄이죠?
이 줄은 정신계라고 비유할 수 있고, 이 알은 물질계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염주는 불가부득 누가 믿어라, 안 믿어라 할 게 없이 이 줄을 믿어야 하겠죠. 그런데 믿는다는 언어도 붙지 않는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그대로니까, 그대로 꿰어져 있으니까 그대로 염주가 되듯이 인간이 된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위치에 놓여 있으면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해야죠? 그리고 인간으로서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이 필요하죠. 그럼으로써 “그대로 믿어라, 그대로 믿어라. 그대로 같이 겸해서 있으니 그대로 믿어라.” 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거를 안다면 줄이다 알이다 이런 이름을 찾을 필요도 없죠. 안 그렇습니까? 내가 비유를 할 때에 싹은 뿌리에 붙어 있고 뿌리는 바로 싹을 살리기 위해서 생긴 거니까, 그렇게 아주 밀접하게 붙어 있으니까 무조건 믿어야지요. 바로 싹을 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해요, 뿌리가! 그리고 모든 것은 그 뿌리가 흡수해서 올려보내니까요. 싹은 또 모든 걸 흡수해서 아래로 내려보내고요. 이런 거니까 내가 “이걸 믿으시오!” 이러지 않아도 그대로 결집이 돼 있다니까요. 그러니 이 염주는 이 줄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소립니다.
내가 항상 말씀드리듯이, 저 은하계나 태양계도 그렇지만 지구도 그렇게 이 염주알처럼 줄에 매달려서 돌아갑니다. 이 마음의 줄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돌아간다 이겁니다. 인간도 이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이 안에서. 이 줄은 매듭도 없고 시발점, 종점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알은 시발점이 있고 종점이 있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이 안에서 훌떡 벗어나야, 정신계 물질계를 벗어나야 자유권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이 물질계 테두리 안에서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법이 정신계로 무(無)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그런 광대무변한 묘법입니다.
그러니 이걸 내가 믿으란다고 믿지도 말고, 믿지 말란다고 안 믿지도 말고, 또 누가 이러고 저러고 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마세요. 무조건 자기 뿌리는 자기 싹을 지니고 있으니까 누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절대로 흔들리지 마세요. 부처님의 뜻과 돌아가는 인간 생활 자체와 진리가 바로 합류화되어야 진리지 만약에 거기에서 벗어난다면 이거는 부처님 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꼭 누가 믿어야 한다고 해서가 아니라 자기 뿌리를 자기가 믿듯이, 염주알이 자기 줄을 믿듯이 그렇게 믿는 겁니다. 이 염주알이 저절로 이 줄에다 꿰어져 있기 때문에, 튼튼하게 꿰어졌기 때문에 염주알은 걱정도 안 해요. 줄 끊어질까 봐 걱정도 안 하고, 줄에 매달려 있으니까 그대로 줄을 믿고 그냥,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이 그냥 하면, 그대로 움죽거려져요. 그러니까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그대로 믿으시고 거기에 맡겨 놓으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뿌리를 믿지 못해서, 맡겨 놨다가도 못 믿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믿는 사람은 한 번 맡겼으면 맡긴 그 자체가 아주 뚜렷하게 정립이 됩니다. 그러니까 의심도 없고 근심도 없습니다. 그런 마당에서 좀 시일이 가서 풀릴 수도 있고, 시일이 안 가고 단박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바로 천차만별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니까, 조급해서 “아이구, 요렇게 맡겨도 안 돼! 안 돼!” 하는데 그렇게 못 믿을 것이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태어난 게 불찰이 아닙니까, 네? 뿌리로 인해서 싹이 났는데, 자기 영혼의 뿌리가 자기를 형성시켰는데 그렇게 못 믿어서야 어찌 삶을 보람 있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배워 가지고 믿어야 되겠다’ 이러는 게 아니고 ‘본래 꿰어져 있으니까 믿어라’ 이겁니다. 이름을 믿을 겁니까, 형상을 믿을 겁니까? 이 세상에 누굴 믿겠습니까? 아, 이 세상에 누굴 믿어요, 네? 부부한테도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해야 되고 자식한테도 가려서 해야 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알고, 슬프고 즐겁고 한 거는 자기 뿌리만이 알고 있는 겁니다.
즉, 마음 내기 이전의 마음은 죄 알고 있는 겁니다. 마음 내는 건 아무렇게나 막 그냥 나오는 대로 마음을 내겠지만 마음 내기 이전의 마음은 아주 정확합니다. 더하고 덜함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 낼 때 마음의 선장은, 잘못 내걸랑은 다스려서 거기 놓고, 잘 내걸랑은 ‘잘 내게 해서 감사하구나. 나를 가르치고 이끌어 가기 위해서 이렇게 마음을 즐겁게 내 주니 감사하구나.' 그러고 거기다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주고 안 주고가 없습니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이지, 누가 ‘해라 하지 말아라, 지어라 짓지 말아라’ 이런 게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이라면 부처 될 수 있는 능력이 99%가 됩니다. 이건 한 찰나 생각만 잘한다면…, 어렵고 가난하고, 못나고 잘나고 간에 반드시 줄에 꿰어져 있는 염주알과 같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염주알을 꿴 그 줄을 믿어야 하는 거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믿고 다스리고 행하고 거기 놓고, 잘못된 것도 거기서 나오는 줄 아시고, 바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줄 아시고 그 자리에다 되놓으신다면, 앞서 게 없어지고 새 입력이 들어가면서 보람 있는 새 삶이 나온다 이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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