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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보다 마음공부가 우선인가요?

본문

질문

어떤 급한 일이 생겨서 도움받으려고 절에 갔더니 스님께서 마음공부만 하라 하시더군요. 마음공부를 해야 되는 줄은 알지만 지금은 당장 눈앞의 일이 빨리 해결돼야 되는 상황인데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공부가 우선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어떤 급한 일이 생겨서 도움받으려고 절에 갔더니 스님께서 마음공부만 하라 하시더군요. 마음공부를 해야 되는 줄은 알지만 지금은 당장 눈앞의 일이 빨리 해결돼야 되는 상황인데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공부가 우선인지요?

답변: 타의에서 구하면 이익이 없습니다. 뭐든지, 어려운 거 가난한 거, 외로운 거 고독한 거, 어떤 우환, 가환, 병…. 또 병도 그래요.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의학으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병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 많은 까닭에 어떤 걸로 인해서 왔다 할지라도 그 뿌리를 끊어 주는 게 급하기 때문에 이거를 찾으라는 겁니다. 이게 시급하거든요. 이걸로 인해서 그게 끊어지니까요. 그런데 그것들은 모르고 ‘나는 지금 급해서 아주 발등에 불이 떨어지겠어서 왔는데 주인공 찾으래. 저이는 저 남의 급한 걸 모르니깐 그렇지 그래, 저 말이 나와?’그럴 겁니다. 분명히 그럴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거를 당신네들이 모르니깐 그렇지, 그게 어디로부터 온 거라는 걸 안다면 내 주인공 믿고 거기다가 맡겨 놓고 살라 이겁니다. 모든 일체 만법은 거기서 나오는 거, 거기다가 맡겨 놓고 살게 되면은 바로 그것이 우환, 가환, 병 이런 모든 것을 거기에다가, 용광로에 놓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새로 생산될 건 생산되고 바로 녹여 버리는 건 녹여 버리고, 이렇게 해서 가환을 면하고 우환을 면하고, 가난을 면하고 내 마음의 지혜를 넓히고, 넓히면 그 넓힌 그 마음이 무기가 돼서 일체 만법을 자유스럽게 활용할 때에 내 근본의 인간이 거기에서 뚜렷하다 이겁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당장 급한 거 있으면, 그것 때문에 지금 죽겠는데 공부할 새가 뭐 어딨느냐고 그러겠죠. 아니, 그게 바로 공부라는 이름이 아닌 나로부터 나온 거니까 나로부터 거기에다가 모든 거, 그런 거 저런 것을 다 맡겨 놔야지 그것이 녹아 버리지, 만약에 나로부터 생긴 건데 거기다 놓지 않는다면은 어떻게 그것이 면해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얘기예요.
 
그래서 석존께서도 육 년 동안 앉아서 그 모든 것을 고행하실 때 모두 항복받았다는 그런 얘기가 있죠? 항복받은 것은 왜냐. 내 몸의 중생들, 모든 것이 자기가 공부하려니까 그게 모습을 바꿔서 자꾸 앞에 탁탁, 인연에 따라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모습이에요, 그게 다. 그런 걸 부처님께선 ‘아, 이것은 바로 내 모습이로구나.’ 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다 항복을 받은 거예요. 자기가 억겁을 통해서 살던 그 습의 모습을 다 항복받은 거죠. 이 원점 한 점에다가, 입자 하나에다가 그냥 모두 몰아친 겁니다. 그러니 항복을 받았다 이 소리예요.

  그런데 그렇게 항복을 받을 것 같으면 우리 살아나가는 데 지탄이 없어요. 그냥 아무렇게나 우연히 온 거고, 무슨 이렇게 이렇게 됐기 때문에 이런 병이 났다, 이건 이유일 뿐이에요. 모두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도 그렇고 과학적으로도 그렇고, 요건 요렇고 요건 요렇고 이렇게 내놔야 모두 그것이 아주 똑바로 철두철명하다고 하지만 철두철명한 거는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안으로부터 철두철명해야 바깥으로도 철두철명한 거예요.

내가 안으로 기필코 눈이 밝고 청림하고 참, 오고 감이 없이 그 오관을 다, 다섯 가지를 내가 부릴 줄 알아야, 소소영영하게 철두철명하게 찰나찰나 응용을 할 때 그것이 아주 참인간의 모습이죠. 그 모습도 허망한 모습이 아니라 영원한 모습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그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누구 탓하지 말고 모든 건 자기 이 자원에 있다 이겁니다. 모든 건 거기에다가, 거기서 한 일이니까 거기에 놔라. 그런다면 수억겁을 거쳐서 나온 어떠한 잘못, 과오가 있다 할지라도 거기서 한 거라고, 거기서 한 거니깐 거기다 놓는 거뿐입니다.
 
우리가 인간 하나다 해도 하나가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과학적으로도 생각하고 이론적으로도 생각해 보자고요. 사람 하나가 어떠한 걸로 인해서 모여서 사람이 됐을까요? 중생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부처가 하나 났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그 사람이라는 그 속에 중생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중생이 그렇게 모여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의 사람이 성장된 겁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됐다면 그 중생들을 다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람이지, 그 중생들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그건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많은 인연에 따라서 중생들이 한데 모여서 내가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나왔다면 그것을 이끌어 가지고 가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 그 수만 억겁을 거치면서 생활하던 그 습의 모습, 그것들이 모두 인연이 있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 한데 모인 거거든요. 뭉친 거거든. 뭉쳐서 한 사람이 생산된 거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가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수억 개가, 억만 개가 그렇게 됐기 때문에 나라고 세울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이건 무시하고, 내 속에 자기의 소임을 맡아 가지고 하는 일꾼들은 무시하고 자기 사장, 즉 말하자면 사람이라는 그 하나에서 자기가 산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 부분만 폐허가 돼도 자긴 죽는 건데 그걸 무시하는 거죠, 다. 그렇게 무시하고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중생들을 무시하고 어떻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다 하는 것도 위로는 자기 자부처와 더불어 한자리한 부처님을 위로 모시고, 아래로는 자기 중생을 제도할 줄 알아야 네 중생 내 중생이 따로 없느니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이게, 바로 내 중생을 내가 이끌어 갈 수 있어야만이 네 중생 내 중생이 어디 따로 있나 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내 중생을 모르고 내 중생을 이끌어 갈 수 없을 때엔 네 중생 내 중생이 아주 낱낱이 수만 개, 억만 개에 달하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 억만 개의 모습이 여러분 안에 인과, 응보, 유전 이런 것이 자기가 지은 대로, 자기가 한 거만치, 그냥 몇 년에 어떤 게 나온다 이런다면 일 년에 나올 수도 있고 당대에 나올 수도 있고 2대에 나올 수도 있고, 또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될 만하면 안 되고, 될 만하면 안 되고…. 야, 이건 자빠져도 코가 깨져. 이건 누구의 짓이냐 이겁니다. 자기가 한 거 만큼입니다. 자기가 해 놨기 때문에 그런 법이에요.

그러니까 하나하나를 닥치는 대로 마다하지 말고 녹여라 이겁니다, 선이든 악이든. 그 대신에 악을 녹이려면, 인과를 녹이려면, 유전을 녹이려면, 업보를 녹이려면 바로 내가 한 거마저도, 내가 잘했다는 거마저도 놔야 그것이 놔진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했다 못했다를 몽땅 놓을 수 있는, 믿고 놓을 수 있는 거라면 내가 여러분을 가르치는 데 얼마나, 만약에 피가 많다면 피가 다 녹았을 거예요. 아, 정말입니다. 그런데 이 전 우주가 전부 한 피이기 때문에 아마 말라 없어지지는 않았을 테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서 낱낱이 참 주저주저하고 ‘야, 이렇게 된 도리에서 내가 이러니까 요거 좀 낫게 되면 어떻게 해야겠다.’이러거든요. 그럼 벌써 이미 걸린 겁니다. 당장 죽게 된다 할지라도 탁! 넘어설 줄 알아야 돼요. 그래야 그것을 다 녹일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게 시급해요. 이게 놓는 거부터, 맡겨 놓는 거부터, 믿는 거부터, 물러서지 않는 거부터 이게 배워야 그것이 다 홀랑, 나중에는 다 점차적으로 ‘어, 언제 이런 게 다 없어지고, 이젠 약도 다 필요 없네. 아이고, 이런 게 언제 이렇게 없어졌지? 어마, 어느 때 보니까 웃고 살게 됐어.’ 이렇게 된다 이겁니다. 

그런 업보의 인연줄이 없어야 바로 우리가 웃고 살 수 있고, 바로 평화롭고 항상 봄처럼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항상 봄바람이 불면 그 보리이삭이 익어서 우리가 보릿고개를 넘어서 보리밥을 해서 고추장에 비벼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이건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배를 곯리지 않고 항상 사시사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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