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력 기르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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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력 기르고 싶어요

본문

질문

생활 참선을 한다면서 늘 주인공에 놓고 가려고 하지만 생활에서 이런저런 일에 계속 끄달려 가는 제가 안쓰럽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정진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우리는 절대 이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정진을 게을리해서도 안 됩니다. 정진을 게을리해서 세세생생에 끄달리는, 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정진을 하되 정진이라는 그 자체까지도 놓으라고 했습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변소엘 가나 법당엘 가나 참선이라고요. 이름을 지어서 와선이니 좌선이니 행선이니 또는 입선이니 하지만 모두가 참선 아님이 없습니다. 또 간화선이니 묵조선이니 하고 나누어 왔지만 우리가 움죽거리고 살아나가는 것이 그대로 참선이에요.

그러니 정진하면서 물러서지 말고, 믿고 안으로 굴리고, 남을 원망하지 말고 남한테 물으려 하기보다 자기 주인공에 놓으세요. 그리고 남한테 듣는 거는 거름 삼고 주춧돌 삼아서 내 거로 만들고요. 내 거로 만들고 나서도 붙들고 있으면 아니 됩니다. 느꼈으면 느낀 대로 그냥 놔 버려야 되겠죠. 그래서 “당기는 거는 먹고 놓고 안 당기는 거는 믿고 놔라.” 이런 말을 했죠. 당기는 거는 먹을 때에 맛있으니 감사하게 먹고, 안 당기는 거는 믿고 놔라. 그 뜻이 뭐냐 하면 안 되는 것은 믿고 놓고 되는 것은 감사하게 놔라 이 말입니다.

이렇게만 한다면 참선 못 할 분이 없고, 싱싱한 몸을 가지고 나를 끌고 다니면서 조금도 허탕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 안 되는 일도 되는 일도 다 버린다면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날이 궂었다고 해서 항상 궂어 있는 게 아니에요. 금방 볕이 듭니다. 그러니 볕이 들어서 좋다고 붙들고 있고, 날이 궂었다 해서 또 붙들고 있고 이런다면 얼마나 공부에 지장이 가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바깥에서 받은 화두를 잡고 늘어진다면…. 공한 것을, 아니 구멍 뚫린 그릇에 불과한 거를 구멍을 막아 놓고선 또 의정을 내거든요. 이젠 예전과 지금 시대가 다르다는 거를 알고 순응하고 시대가 바뀌는 대로 쫓아가야 될 텐데, 그렇게 고집불통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유의 법 50%를 의정하고 돌아갈 때가 아닙니다. 50%를 그냥 넘어뛰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거니까. 아는 거를 아무리 의정을 내 봐도 겉돌기입니다, 맷돌 겉돌기. 20년, 30년을 공부해도 안 됩니다.

정말 몰락 놔서 참나를 알았을 때, 갓 태어난 어린애 같아서, 자기가 자기를 기르는 데 보임하면서 체험해야 됩니다. 한 발 한 발 떼어 놓는 공부가, 그 공부 아닌 공부가 얼마나 귀중한 겁니까? 그럴 때에 미지수의 무의 세계의, 그 미지수의 묘법이 나올 때에 그때에 진짜 의정을 내는 겁니다. 아니,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의정을 냅니까? 이렇게 말한다면 어폐가 있는 말 같지마는 모든 사람이 공부를 할 때에 길을 인도하는 사람도 진실해야 하겠거니와, 길을 인도받는 사람도 믿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와서 질문합니다. “스님! 지금 당장 몸이 아파서 죽겠고 가환이 들끓는데 무슨 주인공에 맡기라고 그러십니까?” 이럽니다. 주인공에 맡기는 일이 바로 그런 고통을 없애는 일이라고 수없이 말을 해 줬는데도 말입니다. 자기가 엎드러졌으면 자기에게 일어날 힘도 있는 거지 일어날 힘이 없다면 엎드러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마음으로 사랑, 의리, 도의 이런 것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항상 같이해 주는 그 마음, 어찌 그것을 여러분이 모르십니까?

이것은 단호히 거짓이 아닙니다. 일가친척이나 동네 사람이 만약에 극단에 처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도 스스로 한생각을 낼 수 있다면 그대로 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무주상 보시를 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됩니다. 여러분이 깨치면 무주상 보시를 할 수 있지만 깨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주상으로 보시를 못 합니다. 무주상 보시란 한생각에 보시가 되는 것이죠. 굶는다 할 때 쌀 한 가마 갖다 주는 것보다 무주상 보시를 해 준다면 그 집이 저절로 펴져서 밥을 먹게 되면서 영원히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입니다.

우리가 지금 경제난에 허덕이고 가정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고만 있을 게 아닙니다. 걱정할 게 없어요. 왜? 여러분이 여러분의 참주인공을 믿기 때문에 거기다가 다 놔 버리고 ‘여기에서는 진정코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믿고 들어갈 때 비로소 해결이 될 테니까요. 각자 걱정할 게 없고 한생각 던지면 던지는 대로 그대로 물바퀴 돌아가듯 슬슬 돌아가면서 그것이 다 자연스럽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가정과 사회와 내 몸, 내 아들, 딸 다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산 사람만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생명들도, 지옥에 있는 것도 다 건질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여러분이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들여서 잘 차려 놓는다고 해서 영혼들이 잘 차려 놔서 잘 먹었다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이 물 한 컵 가지고도 우주 삼라만상을 대처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떡 하나 가지고 유생 무생을 다 먹이고도 또 그 떡 하나는 되남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지 마시고, 이 고통이 자기의 양식이라고 생각하시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죽을 먹어도 웃으면서 먹을 겁니다. 내일 아침 쌀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내일 아침 쌀이 없어도 ‘주인공이 나를 이끌고 다니는 거니까 자기가 먹여 주든지 굶기든지 마음대로 할 거니깐.’ 하고 믿는다면 역시 밥은 먹여 주거든요. 여러분이 해 보지 않아서 그래요. 한 번 한 번 실천에 옮겨 나가면서 그냥 뛰어넘으세요.

찰나찰나 나투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주인공, 이름도 없고 어떤 것을 내세울 수 없는 것을 주인공이라 했다면 그 주인공에서 나오는 것을 주인공에다 몰락 되놓으세요. 그런다면 지금 사회에서 돌아가는 모든 나쁜 일들이 아마도 삼분의 이는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이거는 공부시키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이죠. 새도 날게 하기 위해서 깃을 다듬고 고통을 받아도 에미는 그냥 두듯이. 사자도 새끼를 맹수가 되게 하려면 낭떠러지로 떨어뜨려서 기어오르는 놈만 키운다 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욕심이나 거짓은 공부하는 데에 지장이 있게 만듭니다. 다시 말하자면 크게 이루려면 증오심, 욕심, 남이 나한테 어떠한 야단을 치고 칼을 쥐고 들어오더라도 그것은 바로 내 주인공으로 인해서 오는 것이니 내 주인공 근본 자리에다 몰락 놔야 합니다. 내가 없다면 뭐가 옵니까? 내 탓이지, 왜 칼 들고 오는 그 사람의 탓입니까? 내가 없었더라면 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의 죄도 없을 거 아닙니까? 왜 내가 생겨서 칼을 들고 들어오게 만듭니까?

그러니까 진실한 마음, 기대지 않는 마음, 남을 헐뜯지 않는 마음, 남을 증오하고 업신여기고 둘로 보고 앙심을 먹고 이러한 마음이 몰락 없어져야 이름해서 도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 내가 둘로 보고 항상 증오하고 이것 끄달리고 저것 끄달리고 한대서야 어찌 도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색을 보고서 물질 50%만 가지고 이게 다라고 하면서 살 수밖에 없죠.

무의 진지한 세계에 찰나찰나 나투면서, 온 누리를 가고 옴도 없이 가고 오며, 찰나에 나 아님이 없이 그렇게 묘한 도리가 우리에게 다 주어져 있는데도 그것을 모를 때에는 무전통신기를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쓸 수가 없는 거죠. 수레바퀴 다섯 개가 그냥 한데 합쳐서 돌아가는 그 이치를 정돈해서 내가 책정을 한다면 이것은 만년묵이로서 영원히 굴려도 굴려도 줄지 않고 굴려도 굴려도 늘지 않는, 바로 이러한 대도의 뜻이 거기에 서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모든 것은 자기의 탓이요, 자기의 능력이요, 모든 잘되고 못되는 것은 이름 없는 이름의 주인공 탓이라 이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꼭 그렇게 정진해 나가실 수 있다면 홀연히 참자기의 성스러운 생명수가 졸졸졸졸 흘러나오다가 확 터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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