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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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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자가발전소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근본 자리를 주인공 또는 자가발전소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그 뜻을 대강 어림짐작은 되지만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주인공(主人空)이라고 하는 이름은 고정관념과 고정 행, 고정된 말이 없고 모든 것이 고정됨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고 했던 겁니다. 색이면서도 공이고, 공이면서도 이렇게 보이는 색이 역력하다고 하는 뜻에서 바로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라는 소리를 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여러분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발전소가 있다면 그 발전소에서 용량대로 용도대로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전력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가 다 자기 용량대로 자기의 용도대로 지금 쓰고 있습니다. 안 그럴까요? 이거를 비교해 보십시오. 수천수만 가지로 용도는 많습니다. 전력의 용도도 자기가 쓸 만큼 쓰고 있습니다. 많이 쓰는 덴 많이 쓰고 적게 쓰는 덴 적게 쓰고, 그릇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전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바로 발전소에서 나옵니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그 전력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용도대로 그냥 쓰는 겁니다.

그렇게 용도에 따라서 쓰는 걸로 비유해서 얘기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한 것입니다. 고정관념도 없고 고정 행도 없다. 자기가 그릇대로 용도대로 쓰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쉴 때에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잠시도 쉬는 사이가 없고, 잠을 자도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쉬지 않고, 일어나도 쉬지 않고, 앉아도 쉬지 않는 거는 바로 숨 쉬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근본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자가발전소는, 인간의 마음의 근본 자가발전소는 원자력의 자가발전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자력의 자가발전소는 광력이나 전력이나 자력 등이 합쳐서 나한테 있단 말입니다, 모두 각자 여러분한테. 그렇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서 빛이 나가려면 빛이 나가고, 능력이 나가려면 능력이 나가고, 모든 점에서 광선 또는 자석이, 모든 것에 의해서 밀치려면 밀치고 당기려면 당길 수 있는 그런 용도의 모든 용량이 거기에 규합돼서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광대무변한 보배의 힘을 가지고도 자기가 지금 현재 자기 무명체를 가지고서 쓰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왜 무명체라고 했을까요? 금이 빛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광이 나오지 않으니까 무명체라고 한 것이죠. 실상이 되지 못하고 중생이라고 그랬죠. 중생은 중생이로되 금이 빛나듯이 빛이 난다면 으레 남도 충전시켜 줄 수도 있고 나도 언제나 용량에 따라서 충전해서 쓸 수 있는 겁니다. 자기 자성에서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성(自性)의 자가발전소는 꺼진다거나 켜진다거나 하는 언어가 붙지 않는 자립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하나 걸리고 가시는데, 예전에 이런 말을 했죠. 무명천이 있다면 환상천이 있고, 환상천이 있다면 삼중천이 있고, 삼중천이 있다면 바로 인천이 있고, 인천이 있다면 도리천이 있고, 도리천이 있다면 도솔천이 있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이름은 각각 일곱 가지의 이름이지마는 ‘천(天)’ 했습니다.

즉, 그것을 알고 보면 동그라미를 일곱 개를 그려 놓고 어떤 것이냐 하면은 그것이 다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도리천이라고 한 놈이나 환상천이라고 한 놈이나 다 한 놈이 하지마는 그래도 물맛은 물맛대로 나는 것이고, 산 맛은 산 맛대로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 맛은 들 맛대로 나고, 맛있는 건 맛있는 거고 맛없는 건 맛없는 거라 이 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은 천이로되 둥근 천이며 한마음이며 근본입니다, 전체가.

그러나 ‘사람은 고정관념으로써 있지 않고 고정 행이 없으니 맛도 천 가지 만 가지 맛이 나네.’ 하는 소립니다. 만 가지 맛이 나! 그럼 아까 전력을 용도에 따라서 만 가지를 쓴다고 했죠? 그와 같이 자기 그릇대로의 씀씀이를 쓰고 있는 겁니다. 가정집에서는 전기를 얼마 쓰고, 또 공장에서는 모터를 돌려야 될 테니까 얼마를 쓰고, 용량에 따라 아주 자유스럽게 여러분이 다 쓰고 있는 겁니다. 그와 같이 지금 우리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쓸 줄을 모른다는 얘깁니다. 왜냐하면 이 무명천에서 색을 보고 너무 취해. 사랑, 애정, 욕심, 착, 이건 뭐, 하나서부터 열까지 끄달리는 겁니다, 끄달려. 그러니 그걸 볼 수가 있나요?

그래서 모든 것은 포함해서 “거기서 나오는 거 거기다 놔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니, 사람이 사는 데 다 놓고 어떻게 삽니까? 사랑도 할 수 없고 돈도 가질 수 없고, 다 버리게 되면 뭘 가지고 삽니까?” 이러거든요. 누가 사랑을 하지 말랬나요, 돈을 갖지 말랬나요? 사람이 누구나가 다 육신이 자기 실참이 아니란 뜻입니다. 자기 주인 자체가 바로 실참이요, 실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코 안다면 우리는 바로 그 용량을 아주 맛있게 쓸 겁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를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가정에서나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요거를 했으면 요거 했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놓고 또 딴 걸 합니다. 딴 거 할 때, 전력으로 비유를 했으니 계속 전력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요거 용량의 기계를 썼으면 그 스위치는 저절로 자동적으로 꺼야 합니다. 꺼집니다, 쉬니까. 이거를 또 돌립니다. 이거를 돌려서 쓰고 저거를 돌려서 쓸 때, 안방에서 불을 켜고 쓸 때에 거기 사람이 있지 않으면 불을 끕니다. 끄고 사람이 이쪽으로 오면 또 불을 켜고서 씁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놓고 가는 방법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놓고 가는데도 불구하고 놓을 수가 없다고 그러는 겁니다. 용도에 따라서 자기 살림의 차원대로, 생활 수준대로 씀씀이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우리는 그대로 놓고 지금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탑돌이 하는 거와 같습니다. 쉬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 하고는 돌아서선 딴 거 하면서도, 그거는 놓고 벌써 딴 거 하면서도 놓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난 이상스러워요. 그것을 알게 돼야 우리가 인천도 환상천에 속해 있지 않고, 환상천도 인천에 속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사방이 탁 터지게끔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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