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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이 닥칠 때

본문

질문

생활하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이 닥치는데 마음공부를 한다면 이 난관들을 잘 대처할 수 있을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생활을 하시면서 제일 어려운 게 가난과 병고와 우환 등 여러 가지죠. 자식들을 이끌어 가는 데도 그렇고 또 부모가 자식들을 이끌어 가려면 움죽거리는 그 생활도 그렇고, 자기 몸 끌고 가는 것도 그렇고 참 여러 가지로 괴로움이 한두 건이 아니죠. 거기에 조금이라도 이 도리를 알고 공부한다면, 아주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도리 또 생산적인 도리, 개발적인 도리를 공부하신다면 이것은 불가사의한 법으로서 그대로 편안하게, 언어조차도 붙지 않는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해 갈 수 있는 거죠.

가만히 보면요, 사람들이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바깥에서 유전성으로 오든 안에서 인과로 인해서 벌어지든, 영계가 들고 뭐, 안팎으로 그런 게 일어나거든요. 생활을 하다가도 뭐, 회사가 망했다든가 또 공부를 하다가도 그냥 지친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도무지 내 능력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죠,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들은요. 그리고 생활 속에서 가정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 이런 거를 가만히 보면 여간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만 그것을 다 물리치고 녹이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은 용도에 따라서 오는 대로 거기에 맡겨 놓고 ‘거기서밖에는 해결을 못 한다.’ 하고선 거기다 딱! 맡겨 놓고 지켜보는 그것이 관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가 아니라 관하는 거다 이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켜보고 관한다’ 하면 그럼 어떻게 되느냐. 인과응보가 무너지고 습이 녹아지고, 나를 발견하게 되고 진짜 공부를 하게 된다 이겁니다. 또 한 가지는 바로 입력입니다, 입력! 컴퓨터에 입력하듯이 용도에 따라서 오는 대로 컴퓨터에 입력을 한다. 오는 대로 입력을 해 놓으면 그게 돌아간다.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자동기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이제는 둘이 아니게 내 주인공에, 아들이 아파도 내 주인공에다가 모든 걸 맡겨 놓습니다. 그래서 웬만큼 해 나가서 완벽하게 이게 선다면,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그랬죠? 둘이 아닌 까닭에 물은 물대로 있고 산은 산대로 있죠. 둘이 아닌 까닭에 자식은 자식이고 나는 나다 이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병을 고쳐주려면, 예를 들자면 특히 정신질환은 더합니다. “네 주인공만이 너를 이끌어 갈 수 있다!” 네 주인공만이 너를 이끌어 갈 수 있다 하는데 거기에 무엇이 붙습니까? 그런데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묘한 생각이 있어요. ‘에이구! 이거는 무슨 어머니 조상이 붙었고 무슨 누구 영계가 죽었는데 여기 붙어서 이럭하고.’ 아, 요런 생각들을 한단 말입니다. 만약에 그렇다 할지라도 그 생각을 떠나야 할 텐데, 놔야 할 텐데 고런 생각들을 하니 이게 떨어집니까, 네? 뭐가 붙었습니까? 물 한 그릇에다 물방울 하나 넣은 거와 같은데, 항상 그렇게 일러 드려도 그것을 놓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여북하면 이렇게라도 하겠습니까. 딴 영계가 들어왔다 합시다. 그러면 이렇게 이 컵의 물을 다른 컵의 물에 합치면, 그럼 물 한 그릇이 따로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은 체가 없어요. 그래서 의식이 들어와서 딴 영계가 내 집 주인 노릇을 하더라도 내가 부족한 것도 부족한 거지만 모두 한 그릇에 있어요. 같이 먹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먹어 치운다면 상당히 좋을 것을 그렇게 하질 못해요.

그런데 거기 한데 들어갔으니까 천 명이 들어가도 두 명이 들어가도 한 명이 들어가도 ‘아이고, 죽은 사람이 이렇게 들어와서 우리 아들이 이렇고 우리 딸이 이렇고 무슨 내가 이렇고 무슨 누구가 이렇고’ 이런 생각일랑은 아예 하지 말라 이겁니다. 그건 왜냐? 여기 물컵에 들어갔으면 벌써 한 그릇이란 말입니다. 한 물이에요. 영에다가 영을 넣으니까 몇이 됩니까, 예? 그냥 영이죠? 허허. 스무 개를 넣으면 또 더 두드러집니까? 그냥 영이죠? 그런데 거기 뭐가 붙었다고 합니까? 참 이상스럽단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들을 하니 십 년이고 몇 년이고 그냥 고통을 받고 애를 쓰는 거예요.

왜 각각 보십니까? 둘이 아닌 도리를 가르치는데 왜 각각 보시느냐 이겁니다. 요거는 내가 꼭 말을 하고 넘어가겠다고 다짐을 한 거거든요, 하도 애를 쓰니까. 그래서 영과 영이 열 개가 한데 합쳤어도 둘이 아닌 까닭에 아무가 들어왔더라도 주인은 주인 아니겠는가. 그러니 주인공이에요, 그냥. 당신이 그 마음속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바로 주인공 아닌가. 그러니 ‘이 몸을 이끌어 가는 것은, 정상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당신밖에 없어.’ 뜻으로다가 속의 주인공을 이렇게 탁 잡아주는 겁니다. 아셨습니까? 시식을, 제사를, 천도를 수백 번 드리는 것보다 그 한생각이 필요한 겁니다.

땀 흘리고 돈 벌어다가 허탈히 쓰는 법을 버리고 돈 쓰는 법도 배워야 됩니다. 돈 버는 것만 배우지 마시고 쓰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올바르게 써야지 올바르지 않게 쓰는 것은 귀신 놀음이나 한가지고 도깨비장난이나 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못사는 것도 여러분의 차원 때문입니다, 모르는 차원. 죄가 있어서 그렇게 고생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차원 때문에.

그래서 거기서 ‘열 명이 들어갔어도 당신이 바로 주인공 아니겠는가!’ 하고 주인공만이 속의 뜻을, 말로 하지 말란 말이에요. 뜻으로서 주인공만이, 당신만이 이 애를 정상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 그것을 가지고 그저 만날 적마다 그렇게 해 준다면 또 만나지 않을 때도 그렇고 만나서도 그렇고 먼데 있으나 가깝게 있으나 똑같습니다,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주를 달린대도, 탐험을 한대도 둘이 아닌 까닭에 마음은 그저 어디도 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산이 높아서 못 넘는 게 아니고 물이 깊어서 못 건너가는 게 아니고, 은산철벽이 두꺼워서 못 뚫는 게 아닙니다. 사방은 툭 터졌습니다.

우리 마음이 넉넉하면 심봉이 돌아가는 것이 녹이 안 슬고 착착 돌아갑니다, 기름이 주어지니까. 넉넉한 마음은 기름을 주는 거와 같다 이겁니다. 심봉에 기름을 주는 거와 같아요. 그리고 넉넉지 못한 사람, 소견으로 마음을 쓰는 사람은 이게 자꾸 돌리질 못하기 때문에 녹이 슬고요. 그리고 뻑뻑해요. 잘 돌아가질 않아요. 그와 같은 거죠.

여러분도 기계를 잘 아시죠? 만약에 차를 끌고 다니는 데도 바퀴가 영 굴러가지 않아서 그냥 두면은 그 중심인 심봉이 잘 안 굴러가게 되죠. 양면으로 딱 조여 놓고선 이게 그냥 돌아가도 이 중심 심봉은 통 움죽거리지 않고 바깥에 있는 것들만 돌아가죠. 바깥에 붙어 있는 그 다섯 가지의 수레바퀴가, 즉 불바퀴가 돌아가는 거예요. 이것을 물바퀴라고 해도 좋고 불바퀴라고 해도 좋고 보통 그런 수레바퀴라고 해도 좋죠. 그렇게 돌아가는 이 자체, 바로 그것을 바깥에 서서 돌릴 수만 있다면 말이에요.

그러니 모든 걸 그렇게 입력을 들어오는 대로 용도대로 잘된 건 감사하게 입력을 해 놓고 또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것도 거기서 한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거기서 하는 거 아니야? 거기서 해 봐.’ 하고 거기다 입력을 해 놓으면 그대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실험하고 체험하면서 당당하게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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