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가 실감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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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니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문제가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내 몸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자식들도 내 맘대로 안 따라 주니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이제 뒤늦게 마음공부에 연이 닿아서 제 인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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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살림을 하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가. 일체는 나로부터 생긴 거다. 그러니까 이 삼합이 공존하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넓게 보면 전체가 돌아가니까 공식하고 있고, 공용하고 있고, 공체로서 모두가 같이 돌아가니까 이것을 보고 공했다 했고 주인공이라고 이름 붙인 겁니다.
잘못한 것도 잘한 것도 모두 자기가 한 겁니다. 그러니 공한 내가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거기에다 맡겨 놔라 하는 겁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되풀이하느냐 하면 요즘 병 또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떤 때는 내가 ‘아이구, 내가 의사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병을 고치고자 해서 여러분을 맞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병뿐만 아니라 일체 만법을 그대로,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거를 해결할 수 있는 그 해결사가 스스로 되게끔 마음공부를 가르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여러분을 움죽거리게 하는 그 장본인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놔라 이런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 내가 나라고 세우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짠 거 먹지 말고 싱거운 거 먹어라.’ 또 때에 따라서는 ‘이게 좋다 저게 좋다, 이럭해야 좋지 저럭해야 좋지’ 하고 천차만별로 많은 거를 그저 닥치는 대로 다 받아들이니 여러분의 삶은 어디서 찾겠습니까? 이 몸에 모여서 뭉쳐진 이 생명들은 가뜩이나 업식으로 만났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좋은 환경의 마음을 내게 해 주고, 어떤 때는 고통스럽게 해 주고, 어떤 때는 몸을 아프게 만들죠. 그 중생들이 아프니까 이 부처도 아픈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유마힐 거사는 “중생들이 다 나아야 내가 병이 낫느니라.”라고 하셨죠?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생명들이 아픈 것이 바로 내가 아픈 증거입니다. 그러니 중생들을 안 아프게 해 주려면 여기에서 중생들이 달라는 대로 주세요. 여러분은 지금 너무나 묘법의 생활을 해 나가고 계시지 않습니까? 배가 부르면 배가 부른 것도 알고, 어디가 아프면 아픈 것도 알고, 잘못된 거는 잘못된 것대로 알고, 여러분이 다 잘 아시죠? 얼마나 신비합니까? 그게 신호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 몸 안의 모든 것이 그렇게 달라는 대로 주면서, 짠 것을 달라면 짠 것을 주고, 때에 따라서는 기름진 거 달라면 기름진 걸 주고, 자기가 달라는 대로 주세요. 자기가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먹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자기가 먹는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산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자기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어리석습니다. 이 중생들이 달라는 대로 다 줘서 건강하게 만듦으로써 바로 내가 말하듯이 이렇게 묘법의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누구나가 다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지도 말고, 올려 치켜세우지도 말고, 중도에 항상 놓으면서 중간에 놓으면서, 어지러운 걸 봐도 내 모습으로 보고, 아주 모르는 사람을 보더라도 ‘저것이 모를 때 내 모습이로구나.’ 이렇게 본다면 원망도 안 하고 무시하지도 않게 돼요.
왜 집안에서도 화목하지 않은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형제나 잘못하면 잘못하는 대로 ‘아이구, 저렇게….’ 그냥 그러니까 미운 생각이 들고 말이 좋게 나가질 않고 얼굴부터 찌푸려지고 이러죠? 얼마나 총총걸음을 걷는다고, 가을에 낙엽 떨어질 때가 얼마나 멀다고 그렇게들 야단들을 하고 싸우고 옹옹거리고 얼굴을 찌푸리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게 나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나로 인해서 부인이 있고, 부인은 나로 인해서 있는 거고, 나로 인해서 형제가 있고 자식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음 안에다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우릴 화목하게 돌아가게 할 수 있다, 우리 가정을 좋게 할 수 있는 거는 거기밖에 없다’ 하고 놓고 “여보! 이제 들어왔소.” 하고 밝게 대하고, 만약 집에 있는 부인이 상을 찌푸리고 신경질을 내더라도 “여보! 어디서 뭐 속상한 일이 있었소?” 하고 이렇게 웃으면서 말을 해 주면 얼마나 마음이 아늑하냐 이겁니다. 신경질을 내다가도 안 낼 겁니다, 아마.
그런데 신경질을 내는 걸 보면, 벌써 “으이그!” 이렇게 시작하면 “아유, 괜히 신경질이야.” 이러면서 그때서부터 나오는 거죠. 그러니 어떻게 이 세상을 화목하게 살아가며 어떻게 자식들에게도, 좋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은 마음먹는 대로 그 마음의 초점이 이끌어지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말을 안 해도 좋게 말을 하게 되고 여기다가 맡겨 놓으면 금방 돌아서서 마음이 착해지면서 “여보! 이러고 저러고, 이러고 저러고 했어.” 하고서 그냥 이렇게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육체, 말 그것이 자기인 줄 아는 거예요, 모두. 그게 아니고 자기의 마음은 여기 안에 있어요, 진짜.
그러니까 말로 남을 헐뜯을 일이 있더라도, 설사 사람을 죽이고 들어왔더라도 부부니까, 부부 아니더라도 그래요. “여보, 어쩌다가 그랬소? 여보! 그래도 너무 상심 말아요. 아이, 죽으면 죽지 뭐, 같이 죽읍시다.” 이렇게 하면서 웃으면서 해 나가고 안에다 다 놓는다면 그 사람이 그냥 잘 이끌어지고 잘 돼요. 자식도 그래요. 나가서 나쁜 짓을 하든 나가서 노름을 하든, 나가서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그건 내버려 두고 들어오면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겁니다. 그게 최선의 방법이에요. 잘못 말하거나 말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상전이에요.
어떤 스님네들이 셋이 가다가 지네가 이만한 게 가더라는 거예요. 지네 발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그런데 지네더러 이랬다는 거예요. “아이구! 저 지네 좀 봐. 저렇게 다리가 많은데도 걸리지 않고 가는 것 좀 봐.” 하니까 지네가 딱 서 가지곤 가질 못하더라는 거예요. 그 말에 걸려서 가질 못하니까 거기에서 고만 세 스님네들이 깨쳤다는 겁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세요. 우리가 잘 걸어가다가도 말을 하면 거기에 걸려 가지고 아주 옴폐부득을 못 해요. 여러분이 어디 가서 무엇을 보더라도 걸리지 마시란 얘기예요. 잘못됐더라도 걸리지 말고 잘됐더라도 걸리지 마십시오. 잘못됐더라도 그게 고정되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순간 돌아가니까 겁내지 말고 그냥 놔 버려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 있는 보물 거기다 그냥 놔 버려요.
아니,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서 지금 현재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도 기가 막힌데 세세생생에 구르면서 윤회에 말려서 허덕거려야 옳겠습니까? 이 몸을 벗기 전에 바로 벗어나야죠. 여러분의 한생각이 모든 백지를 뚫을 수 있고, 한생각에 은산철벽을 뚫을 수 있으며 전체 우주를 꿰어 들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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