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부양 능력 부족에 자책감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가족 부양 능력 부족에 자책감이…

본문

질문

요즘 경제가 힘들어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아들은 학비 마련한다고 힘들게 아르바이트한다고 뛰어다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가족들 부양을 제대로 못 한다는 자책감이 들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은 때로 ‘무슨 죄가 많아서 이 세상에 나와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나.’ 하고 생각하시죠? 그러나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뿐만 아니라 축생이나 아귀나 모든 미생물까지도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미 그렇게 살게 돼 있어요. 그런 걸 왜 한탄을 해요? 그러나 거기에서 어떻게 좀, 지혜가 있고 능가할 수 있는 폭이 넓으면 좀 낫게 지내고, 폭이 좁고 그릇이 작으면 아주 피곤하게 살고 이것뿐이지, 그렇게 돼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벗어나라 하는 거 아닙니까. 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만약에 식구들이 다 부황이 나서 굶어 죽게 되었는데 자식이 하나 나가서 ‘내가 죄를 걸머지더라도 할 수 없다.’ 그러곤 그냥 훔쳐 왔어요. 훔쳐 왔는데 그게 이 보이는 데서는 큰 죄라고 데려가서 가두겠죠. 그러나 부처님 법에서는 ‘야, 참 그래도 지혜가 있어서 그거라도 훔쳐서 먹여 살렸으니 너 참 장하다.’ 외려 이래 준다구요. 꽉 막혀서 도대체 오글락노글락이 없어서는 안 되거든요. 도둑질을 정말로 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넓은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 그런 거를 갖다가 그래도 생명은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소립니다. 

어떤 사찰에서 이런 예가 있었죠. 스승이 지쳐서 아주 죽게 됐어요. 죽물이라도 마시면 토해 버리고 영 일어나질 못했죠. 다 죽는다고 그랬죠. 그랬는데 막내 제자가 호미하고 소쿠리를 들고선 나가요. 그래서 “너 어디 가니?” 그러니까 “그냥 어디 좀 갔다 올 거야.” 그러고 나가거든요. 그런데 지렁이를 그냥, 예전엔 지렁이가 많았죠, 아주. 이만큼씩한 지렁이를 골라서 소쿠리에다 담아서 씻어선 소금을 넣고 또 씻고 또 씻고 또 씻고 해서 깨끗하게 씻어서 산에다가 솥을 걸어 놓고선 폭 다려서 한 솥을 해서 그냥 물에다 담가 놓고는 갖다 드리는 거죠, 데워서. 그 스승이 한 솥을 다 잡숫고 나더니만 “아휴, 그게 뭔지 난 이제 살았다.” 이러고 일어나시거든요.

그런데 그 사형들이 “너는 살생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살생을 했으니 넌 무슨 죄를 받으려고 그러느냐.” 하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자가 죄가 있다면 내가 받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사람이 생각하기에 달렸지 죄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부모가 죽게 돼서 살렸는데 뭐가 죄겠느냐고, 양쪽을 다 살렸지 않느냐고 그러더래요. 양쪽을 다 살렸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살리고 부모는 부모대로 살렸다 이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까 “지렁이가 우리 같은 스님네들한테 어떻게 공양을 할 수가 있겠느냐.” 어떻게 스님들을 만나서 자기 몸을 공양을 바쳐서 진화돼서 탄생을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지. 그러니까 스님한테 가기 전에 벌써 진화는 됐다 이거야. “그랬으니 그 수없는 지렁이를 살렸고 우리 스님을 살리지 않았느냐. 그렇게 살생하지 말라고만 그러면 축생들이나 아귀나 이런 것들이 몇천 년을 기다린들 어떻게 스님 입에 들어올 수가 있겠느냐.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해 줬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데 그것을 죄라고 하느냐.” 그러더라는 얘기죠.

그러니 여러분도 그 마음이 좁으냐 넓으냐에 따라서…, 마음은 마음대로 쓰라고 마음입니다. 너 마음대로 써라. 그런데 그 마음을 가지고 주체를 못 하고, 악하게도 쓰고 선하게도 쓰고 뒤죽박죽이 되죠. 그런데 뒤죽박죽하지 말고 원칙대로 살아라. 진짜 착을 두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내 그릇을 내가 파악하고 건너뛰어라 이거거든. 물을 건너뛸 때에도 내 다리가 그만큼 되느냐 안 되느냐 그거를 봐서 건너뛰어야지, 개천은 넓은데 내 다리는 거기 반도 안 가면서 건너뛰다간 물에 빠져 죽죠. 그렇게 번연히 알면서도 건너뛰다가 빠져서 허덕거리는 거를 어떡합니까? 부처님인들 어떡합니까, 그거?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살다 살다 보면 내가 이 세상에 생긴 게 참 고맙구요. 아무리 잘생겼든 못생겼든, 또 잘살든 못살든 ‘내가 이 세상에 났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공부라도 하게끔 인연이 된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얼마나 고마운가. 또 우리가 수없이 돌아가면서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고 그러는 까닭에…, 돈 걱정도 없고 옷 걱정도 없고 먹는 거 걱정도 없고, 돈 쓸 때는 그냥 척척 줘서 다 쓰고, 이렇게 해서 기른 아이가 나가서 잘 이끌고 살 수 있을까요? 고생도 해 보고 배도 고파 보고 망치질도 해 보고, 그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야 그 부하를 다 이끌고 살 수 있는 거죠.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남이 배고픈 걸 몰라요. 그것까지 생각 못 하죠. 모두가 그렇습니다.

일체 다 그런 거를, 어떠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거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자식이 그냥 사고가 나서 죽었다, 내 자식이 금방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움직일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도 ‘아이, 하등 상관없구나.’ 이렇게 생각되면 그 도리를 웬만큼 아신 거예요.

누가 사랑을 하지 말라 이런 게 아닙니다, 올바르게 이끌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다 하되 착을 두지 말라는 거죠. 그런데 정말 모습이 금방 이 자리에서 죽었는데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느냐, 뛰지 않느냐고 자기를 검증해 볼 때, 딴 사람 죽었다고 한 거나 자기 자식 죽었다고 한 거나 자기 부모가 죽었다고 한 거나 아무 상관이 없으면 됐어요. 다른 건 다 착을 떼어도 자식 착은 떼지 못한다고 그러죠. 

그래 착을 떼지 못하는 걸 진짜로 떼게 한 예가 있죠. 어느 스님이 입산을 하러 오니까 부처님이 “너 권속과 재물을 다 버리고 왔느냐?” 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다 버리고 왔습니다.” 했는데도 “권속을 짊어지고 와 놓고 다 버리고 왔다고 하느냐. 짊어진 것을 다 버리고 오너라.” 이러시더라는 거죠. 마음속에 잔뜩 넣고 왔는데 그게 뭐가 놓고 온 거야? 그리고 재물은 집에다가 다 그냥 놓고 식구들 다 살게 해 놓고선 왔거든. 그러니까 “재물은 다 갖다가 집에 식구들 수대로 다 안겨 놓고 왔는데 무슨 그걸 다 버렸다고 하느냐.” 그러니까 “그럼 다 버리고 오겠습니다.” 하고 그 재산 나누어 준 거를 다 그냥 불에 태우려고 하고 또 패물은 다 물속에다 넣으려고 하니까 그때서야 공중에서 소리가 나기를 “얘야, 그렇게 버리라는 게 아니다.” 이러더라는 거지. 하하하. “그렇게 버리라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라. 버리되 그렇게 버리라는 게 아니니라.” 하더라는 거지. 그러니 얼마나 묘한 법입니까, 이게. 

그러니까 누가 아프더라도…, 이게 참 묘한 이치가 있는데요, 이것이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얼마나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러니까 겁낼 거 하나도 없어요. 이 세상에 살다가 언젠가는 한 번 죽을 거, 허허허, 하여튼 죽든지 살든지 걱정하지 마세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생사도 벗어납니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