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하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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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생각이 많고 분별심이 많아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여여하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열심히 참선도 해 보고 경전 독송도 해 보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참 부끄럽습니다. 저 같은 이들에게 채칙이 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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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그래서 사대 성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똥 누러 갈 때도 ‘내가 눠야 될까, 안 눠야 될까’ 하고 가느냐? 똥 마려우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럴까 저럴까’ 하는 생각도 없이 그냥 화장실로 가서 시원하게 그냥 싸 버리는 거 아니겠느냐? 그리고 배고프면 먹는 거 아니겠느냐? 졸리면 자는 거 아니겠느냐? 그렇게 여여하게 사는 것이 바로 여래의 집이니라.” 여여하게 산다고 해서 ‘여래’라고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중생 속에서 부처가 나고 부처 속에서 중생이 나니까 여러 부처님들을 한데 합해서 여래의 집이요, 여래라고 한 겁니다. “배를 똑바로 저어서 강을 건너야지.” 이러는 것도 잔소리입니다. “면경을 깨끗이 닦아서 먼지 앉지 않게 해야겠다.” 이러는 것도 잔소리입니다. 정법이니 사법이니 하는 것도 망상입니다, 그게 다.
그대로 그대로 내 마음이 나를 다스리면서,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중생들을 내 한마음으로 이끌어서 둥글려서 마음을 잘 쓴다면 그 의식들이 다 한마음으로 따라 주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 자동적으로 좋은 입력이 됐으니 나오는 게 자동적으로 좋은 일만 나올 수밖에 없죠. 그런데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을 하니까 그게 입력돼서 그렇게 한 대로 나오는 거죠.
과거가 어떻고, 미래가 어떻고, 지금이 어떻고, 이렇게 말들만 하시지 마세요. 과거의 씨가 현실의 씨로, 현실의 싹으로 나서 지금 씨가 됐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서 과거의 씨를 찾습니까? 현실에 내가 안고 있는 것이 그대로 과거의 씨도 되고 미래의 씨도 되는 것입니다. 그거 찾기가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제가 예전에 수행을 해 나올 때 “구렁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것을 받겠느냐?”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아리따웁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구렁이라면 모습이 구렁이인들 어떠리.’ 즉 말하자면 내 어머니가 못 배우고 못났다고 해서 남의 잘나고 잘 배운 어머니하고 바꿀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아니, 어머니를 바꿀 수는 없죠? 잘났든 못났든 말입니다.
그와 같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잘났든 못났든, 자기를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부처님이 여기 있다 하더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부처님을 따라가다가는 허방을 짚습니다. 못났든 잘났든 자기가 바로 자기 마음을 계발하면서 거기까지 한자리를 할 수 있는 수행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마음들은 근본에 의해서 하나로 돌아간다’ 이런 겁니다. 모든 생명의 근본은 하나다.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바로 불바퀴라고 한다. 그러면 그 전력은 누구나가 다 끌어 쓸 수 있는 전력이다, 다 같이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그런데 어딜 믿습니까? 나로부터인데.
여러분이 어떠한 기술을 가졌든지, 상업을 하든지 과학자든지 의사든지, 노동을 하든지 뱃사공을 하든지 어떠한 사람이든지 하여간에, 못났든 잘났든 모두 자기가 근중한 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낮든 높든 다 높으니라. 비유를 하자면, 농사짓는 사람으로서는 농사꾼이 아주 으뜸이니라. 물에 가면 뱃사공이 으뜸이니라. 과학자한테 가면 과학자가 으뜸이니라, 노동자한테 가면 노동자가 으뜸이니라.” 이래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한 겁니다. 자기 하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높으니까. 개미도, 개미 소굴에서는 개미가 높죠. 우리가 그런 생활을 하려면 못 하니까 높은 거죠.
그리고 이 세상천지 모든 것이, 일체 식물이나 과일이나 모두 제가끔 끼리끼리 놓여져 있습니다. 한데 섞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요거 먹으면 요거 맛 다르고 저거 먹으면 저거 맛 다르고 다 다르지마는 다 사람한테 좋은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이거 좋다 하면 이리로 쏠리고 저거 좋다 하면 저리 쏠리고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겁니다.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듣기 때문에 들으면 듣는 대로 입력이 되니까요. 누가 병이 났는데 “이런 병 못 고쳐.” 이러면 아주 입력이 돼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그대로 가죠. 중심이 서지 않아서 ‘아,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야. 나 할 탓이지.’ 이렇게 해 나갈 수가 없는 거죠, 약하니까. 집에 주인이 없으니 얼마나 약하겠습니까? 집에 주인이 있다면 딱 버티고, 어느 게 들어와도,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리드해서 끌고 나가지마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 말 들으면 이 말 듣는 대로 곧이듣고 ‘아이구,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이 자식들하고 이거 어떡하지?’ 하니까 그대로 되는 거야, 그대로.
그러니까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태교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하는 거죠. 전부 듣고 따르고 있으니까요. 지금 몸뚱이 속에 있는 그 수십억의 의식들이 사람의 마음이 하자는 대로 따르니까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벌써 두뇌로 올라가서 하달이 되거든요. 그럼 입력이 되는 거죠.
더 무서운 것은 자동적인 입력이기 때문에 더 무섭다는 얘깁니다. 물질적인 컴퓨터는 사람이 입력을 해서, 잘해서 넣어 가지고 나오지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동적인 숙명통 컴퓨터에는 그냥 입력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들을 항상 건실하고 건전하게 갖고, 인연에 따라서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이렇게 모여서 즐거웁게 놀다가 즐거웁게 헤어지는 거니까요. 식구들하고라도 그렇고 남들하고라도 그렇고, 모두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산다면 서로 이것이 인과가 되고, 즉 말하자면 원수도 되고 유전이 되고, 그렇게 해서 낭패가 되는 거죠. 죽고 또 죽어도 다시 또 결부가 되죠.
그러니까 그러한 모든 걸 제자리에다 되놓고 돌아가는 동시에 바로 나도 발견할 수 있는 거고, 물리도 터질 수가 있는 거고, 자비도 생길 수가 있는 거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요. 자비! 누구 원망도 안 해지고, 악을 쓰고 누구를 야단을 친다 하더라도 속으로 미운 생각, 원망도 하나도 없이 그냥 말로만 악을 쓰게끔 되죠. 그러면 벌써 거기 인과가 되지 않고, 유전이 되지 않고, 이 모두가 이러한 것이니까 여러분이….
우리가 잘되고자 해서 지금 이 공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억겁 광년을 나를 이끌어 가지고 온 나의 장본인, 나의 주인, 나의 주인공을 진실히 믿고 잘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죽어도 살아도 거기 놓으세요. 모든 게 거기서만이 돌아가는 겁니다. 지구가 지금 꼭지 없는 꼭지가 달려서 태양계에 매달려서 돌아가듯 말입니다. 그 마음의 자력에 의해서 같이 돌아가는 거거든요.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이 우주 전체를 한데 합쳐도 합친 사이가 없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거를 놓지 못하고, 합치지 못하고, 그렇게 믿지 못합니까?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왜 그렇게 믿지 못합니까? 믿는다면, 진정코 믿는다면 지금 당장 죽는대도 싱긋이 웃을 수 있는 겁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자식이 죽는다, 부모가 죽는다, 내가 죽는다 이런 모든 것에 아랑곳없어요.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자유인이 될 수 있죠. 권리를 가질 수 있고, 열쇠를 가질 수 있고, 즉 말하자면 여래장이 되겠죠. 그런데 뭐가 답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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