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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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본문

질문

우리가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요즘은 자기를 희생하며 참고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사실 저의 친한 친구도 죽고 못 살겠다고 우겨서 결혼하더니 남편이 교통사고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면서 긴 병 수발에 마음도 차츰 변해 가는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게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그러니까 못났든 잘났든 자기밖에 믿을 게 없습니다. 자기가 아프면 자기가 아픈 것을 더 잘 알고, 자기가 넘어지면 자기 손이 제일 먼저 가고, 아무리 친절하고 아무리 부부지간이고 아무리 자식 부모지간이라도 자기 아픈 거는 상대방이 진짜 다 100% 알아주지 못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 한두 달이지 만약에 일 년만 넘어가 보세요. 불쌍하긴 불쌍하다고 하나 그건 진저리가 나는 거죠.
 
그러니 누구도 믿을 게 없어요, 나밖에는. 내가 나를 믿고 사는 거밖엔 없습니다. 나를 내가 사랑한다는 거, 변소엘 가도 같이, 언제나 같이해 주는 그 영원한 사랑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즐거운 사랑? 참, 무슨 뭐 말라빠져 죽은 사랑이 그렇게 그런 사랑이 있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요. 잠시 잠깐 사랑한다고? 그게 뭐 말라빠져 죽은 사랑이냐 이겁니다, 싫으면 뱉고 달면 삼키고 이러는 게.

이 세상 살아나가는 게 그래도 자기한테 이익해야만이 택하지 해롭게만 돌아온다면 그건 택하지 않죠. 사랑하다가도 자기한테 앞으로 장래에 해로울 일이라면 절대 사랑하지 않아요. 일 년만 만약에 앓고 드러누웠어도 사랑은 멎어지죠. 따로, 다른 데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몹쓸 병이 들었을 땐 죽기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아니라고요? 아니라고 말은 그러지마는 속으론 그렇질 않을 거예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이겠죠. 

  그런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본래 죽고 사는 게 없이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러면 둘로 듣겠지마는 말을 하려니까 둘로 하는 겁니다.  왜? 그 부동한 자세의 능력으로써 바로 그 모든 거를 활용하고 움죽거리게 되니까 그게 삼합이 한데 합쳐져서, 우리가 삶을 보람 있게 살면서 이 육이 무너진대도 불과 법이 둘이 아니기에, 항상 나 아님이 없이 즐겁게 산다는 얘깁니다. 어느 것도 나 아님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항상 하고 있다는 얘기죠.
 
  그러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누구도 믿을 게 없다는 겁니다. 자식도, 아무것도 믿을 게 없어요. 그걸 자식이 또 들으면 섭섭할진 모르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믿을 게 없다는 겁니다. 이러는 것은 예를 들어서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근본! 아까 얘기했죠? 만약에 자식도 일 년 이태만, 삼 년만 드러누워 있어 보세요, 어떻게 되나. 또 부모가 이태 삼 년만 드러누워 있어 보세요, 어떻게 되나. 서로 다 똑같아요.

그러니까 빨리 죽어 주는 게 효자고 효녀고, 그런 것뿐이죠. 빨리 죽어 주는 게 자식한테 바로 덜어 주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근본적으로 따지게 되면 다 이것이 소용이 없다 이 소리예요. 일체 만물, 물질적이라는 것은 다 변질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못 된다는 얘기죠, 변하기 때문에.

  그리고 왜 자기가 속아요? 아니, 천신 만신 저거 해서 시중하고 뭐 하고 또 남자는 남자대로 벌어다가 들입다 주고 이러고선 배신을 당하고. 그래 내쫓기지는 않아도 그냥 마음으로 떠났으면 벌써 배신당하는 거지 뭐, 별수 있나요? 몸뚱이만 있으면 뭘 합니까? 누구든지 살면서 배신을 수차 당하면서 다시 또 붙어 돌아가고 또 배신을 당하면서 다시 이렇게 연결되고 이럭하면서 살죠. 저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사는 사람 없을 거예요. 누구든지 그럴 거예요, 아마.
 
  그런데 나는 욕심이 많아서, 여러분보다 나는 욕심이 더 많을 겁니다, 아마. 나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쪼금 사랑하다가 그렇게 치울 거라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죠. 이 세상에 나와도 조금 살다가 그냥 변질되고 없어질 물건이라면 차라리 물건으로 나오질 않겠다 이겁니다. 물건으로 나오더라도 아주 변함도 없고 남한테 모든 것을 이익을 줄 수 있고 눈요기도 시킬 수 있게 나온다면…. 그런데 그거조차도 의욕이 없어요. 그렇게 보여 주기만 하면 뭘 하겠습니까, 또? 
 
그러니까 차라리 그저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여러분이 사는 대로 좇아서 그냥 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떤 땐 재미도 있어요.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에요. 야리야리한 사랑이나 그런 거, 고것을 갖다가 천 년이라고만 생각하면 편안하겠죠. 24시간 동안에 한번 편안하게 사랑하기가 그, 한 시간 편안하게 사랑하기가 어려워요, 24시간 동안. 고정되게 하루 24시간 동안에 한 시간씩 참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이 왕자 부럽지 않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아마 그 한 시간이 싸움으로 변할지도 모르죠, 사랑은커녕.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 이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화목하게 지내고 사랑으로 지내려면 나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가발전소에서 모든 거를 불을 켜서 방 안을 다 밝게 하면 눈이 컴컴하질 않아서 “여보! 여기 있으니 잡수우.” 이럴 수도 있고, “얘! 여기 있으니 먹을 거 먹어라.” 이럴 수도 있는 거지마는 방이 캄캄하면, 내가 불을 안 켜면 캄캄한 거죠. 방통이 다 캄캄한데, 전부 눈이 캄캄한데 뭐를 봐서 사랑이고 나발이고 있겠어요? 나는 부처님처럼, 참, 위대한 큰스님들처럼 말을 못 해서 이렇게 마구 하지마는 말입니다, 이렇게 마구 해도 이해 좀 해 주시고요. 

아이, 세상에 글쎄,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어떤 때는 그럴 때가 있어요. 아이구, 세상에, 사랑들 한다고 그래 봤자 내가 보는 바에는, 기껏 그냥 털고 닦고 그냥 해 먹이고 해 주고 빨아 입히고 이래도, 그리고 또 남자들은 기껏 벌어다가 그 고생을 하고 손발을 널리고 이렇게 해서 벌어다 줬는데 말이죠, 여자가 씀씀이를 어떻게 고렇게 고렇게 쓸 때에 ‘아이구! 정말이지 이거는 너무하는군. 너무하는군, 모두.’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러니까 대의적으로 봐서 하는 얘기예요, 어떤 개인, 개별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정말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죽어도 살아도 더 불쌍하게 생각이 들고, 하다못해 먹을 게 없으면 죽거리라도 얻어다가 같이, 숟갈 두 개를 꽂아 놓고 같이 먹을지언정 어찌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겁니다, 나는. 나 그렇게 미련하고 그런 반면에 그런 게 있단 얘기예요. 난 좋은 것도 부럽지 않아요. 단지 그 인간의 참마음,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게 중요한 거지 그까짓 것 뭐, 거적을 쓰고 죽으나 좋은 공단 이불을 쓰고 죽으나 그게 무슨 상관 있느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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