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하면서도 열반경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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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 일반 재가 불자들은 스님들처럼 수행 정진하지 못하는데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견성을 하고 열반에 이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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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봐야 알고 들어야 알고 그렇듯이 댁에서 겪어 봐야, 실천해 봐야 아마 알 겁니다. 그러니만큼 이치대로 얘기를 하려면, 사람을 다 낳기는 하되 애가 어른 노릇을 못 하니까 어른이 될 때까지 수행 정진을 한다는 거죠. 우리는 지금 어린애도 생산을 못 한 분들이 많습니다. 얼른 쉽게 말하자면, 내 육신이 태어났지 정신이 태어난 거는 아닙니다. 그래서 내 육신이 태어났으면 바로 육신을 이끌어 가는 참나, 즉 정신을 태어나게 하면 그것을 바로 견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견성했다고 해서 다가 아닙니다. 그 견성한 자체를 키워야 하니까 그게 몇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몇 년이 걸리든 이 안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체험을 하면서 자꾸자꾸 진행해 나가는 거죠. 그럴 때는 처음에 내가 탄생하기 전에 놓고 들어가듯이 모든 거를 또 놓고 들어가야죠. 내가 탄생한 후에도 이 체험하는 것을 또 놓고 들어가고, 그래서 이제 둘 아닌 도리를 또 알게 되죠. 둘 아닌 도리를 알게 되면서 그땐 어른이 됐다고 볼 수 있죠.
‘열반경지에 든다’ 이럴 때는 둘 아닌 도리에서 둘 아니게 화해서 나투면서 어느 만물만생이 원하더라도 응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즉 말하자면, 내 육신 속의 모든 의식들이 보살로 화해서 나투면서 돼지가 원하면 돼지 속에 들어가서 돼지가 되고 이렇게…. 모두 중용을 할 수 있는, 광대무변한 법을 그대로 진행할 수 있는 법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것에 능할 때, 이것을 도리천에 이르르고 구경경지에 이르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돼야만이 그 모두를 그냥 말없이도 할 수 있고 말없이 알 수 있고 이런 것이지, 지금 견성도 못 했는데, 내가 태어나지도 않아서 눈을 뜨고 볼 수도 없는데 그 얘기만 들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얘기만 듣고 아무리 책을 보고 그냥 뭐, 무불통지했다 하더라도, 내가 이 물 한 컵을, 물 한 방울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진행할 수가 없어요. 진실되게 실행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말도 필요 없고, 이론도 필요 없고, 무궁무진하게 아는 것도 필요 없다. 오직 내가 나를 발견하고 어른으로 키워서 또 늙어야 된다. 늙으면 생사도 없다. 생사에도 끄달리지 않는다. ‘없다’ 하고 ‘끄달리지 않는다’ 하고는 차이가 있는데 ‘없다’ 하는 거는, 아주 그, 들어가서 없다는 건 사실인데, 아래에 있든 중간에 있든 위에 있든 모두 포함해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이해가 되게 하기 위해서 끄달리지 않는다는 소리가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 걸음 떼어 놓고 한 발 딛고, 내가 귀머거리에서 벗어나고 장님에서 벗어난다면 그때서부터 공부입니다, 이제. 왜냐하면 지금은 나 찾기에 바쁜 거지, 그리고 나는 세 가지 두 가지를 한데 합쳐서 지금 가르치는 겁니다. 첫 번에 유의 법을 가르치고 두 번째, 무의 법을 가르치고 세 번째, 유와 무를 한데 합쳐서 가르치고 했던 것이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나는 행주좌와를 그대로 가르칩니다. 그대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고통이 오고 애고가 오고 병고가 오는데 어떻게 틀고 앉아서 그거를 합니까? 그러니까 애고가 오는 거를 오는 대로 밀쳐 나가고 타파해 가면서 공부를 해라 이겁니다. 그게 아주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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