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김으로써 세 번 죽음이…
본문
질문
주인공에 믿고 맡기는 것으로 세 번 죽기가 가능할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허허허. 주인공을 일심으로 발견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거지든 거지가 아니든, 남자든 여자든, 스님이든 스님이 아니든 막론해 놓고 말입니다. 사람은 다리 절름발이가 돼서는 아니 됩니다. 즉 무심과 유심이 절름발이가 돼서는 아니 됩니다. 동시에 같이 돌아간다는 자체를 아셔야 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본과 마음 내는 거와 육신이 움죽거리는 거와 동시에 돌아가죠? 어디 따로따로 돌아갑니까? 눈과 귀가 따로따로 돌아갑니까, 어디?
그러니까 이것을 악과 선도 거기 놔라. 악한 거는 ‘선하게 이끌어 줄 수 있지 않느냐.’ 하고 놓고, 선하게 돌아가는 거는 감사하게 놓고, 모든 거를 한군데다가 놓는다. 자기가 공해서 본래 없는 것이다. 따로 내가 없다 하는 소립니다.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따로 내가 없는데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거는 잘못돼 돌아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나만 따로 독불장군이 될 수는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더불어 같이 돌아가고 있죠. 그러니까 그것을 완벽하게 알 때까지는 모든 것을 ‘내가 따로 없으니까.’ 하고 거기다 놔라 이겁니다. 그게 죽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따로 없는 반면에 모두가 하나로 돌아갑니다, 모두가. 안 그렇습니까? 공생이며 또는 공체며 공용이며 공식화하고 그냥 모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돌아간다 이겁니다. 그 도리를 완전히 알게끔 하려면 겉으로, 이론적으로, 학술적으로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으로써, ‘한마음 속에서 모든 게 들고 나는 그 무쌍한 만법이 그대로 더불어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거를 말입니다, 그거를 진심으로 자기 속으로 확철히 알려면은 거기다가 또 놓고 돌아가야 하니까 또 두 번째도 죽어야 한다 이 소립니다. ‘내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말라’ 이 소리가 ‘죽어야 한다’ 이 소립니다.
세 번째도 같이 돌아가면서 서로가 인연에 따라서 이 손수건을 쥐었으면 손수건은 들고만 있는 게 손수건이 아니라 땀을 씻는 겁니다, 어디를 씻든지. 그러면 나와 수건과 인연이 마주쳤기 때문에 씻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건 발전의 작용입니다, 발전의 작용. 그렇기 때문에 나툰다고 하는 겁니다, 나툰다.
예를 들어서 목이 마르면 물을 먹고 땀이 나면 손수건을 들고, 말소리를 내려면 이 마이크를 들고, 모든 일체 만물이, 만 가지가 다 나 아님이 없이 나투면서 돌아간다는 얘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거를 알려면 또 놓고 가야 된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한 번도 죽어야 하고, 두 번도 죽어야 하고, 세 번도 죽어야 구경경지에 이를 수가 있다. 그러니 내가 죽지 않는다면 전체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이치도 모를 거고, 모두가 하나로 돌아가는 그 원리가 바로 공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그거를 알리기 위해서 한 번도 죽어야 하고 두 번도 죽어야 하고 세 번도 죽어야 한다 이런 말을 했던 겁니다.
- 이전글돈이 들어오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24.09.18
- 다음글올라오는 의식들 다잡고 가려면 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