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처럼 수행하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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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처럼 수행하고 싶어요

본문

질문

요즘같이 살기가 팍팍하고 어려운 시절에는 속된 말로 하면 스님도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젊었더라면 저도 스님이 되어 공부하고 싶은데 다음 생을 기약하고, 지금은 비록 머리는 길었지만 어떻게 하면 스님들처럼 수행할 수 있을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먹을 게 없어도 한 그릇에다가 숟가락을 꽂아 놓고 한 숟가락씩 먹어도 왜 웃고 먹을 수 있느냐. 왜 즐겁게 먹을 수 있느냐는 얘깁니다. 울고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먹을 것도 없고 그래서 한 그릇에다 숟가락을 죄 꽂아 놓고 먹는데 그 웃음이 납니까마는 그래도 환하게 법의 웃음이 나는 것은 잠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남의 마음을 알려면, 남의 고생하는 고를 알려면 별짓 다 해 봐야 되는 거죠.

누구나가 다 그렇습니다. 중노릇을 하는 그런 차원도 스스로서 자기가 해서 자기가 그 차원의 그 진의를 받는 거지 누가 해 주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네가 진짜로 남의 것을 뺏어 먹고 이러는 거보다도 아주 그 마음이 강악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악쓰고 화내고 온통 남을 섭섭하게 하고 하는 것이 그게 큰 지옥문에 도달하는 것이니라.” 그게 큰 문제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저거 하면 이 차원에 의해서 어디를 간다, 등수가 올라간다 이런 것도 자기가 해서 자기가 받는 거죠. 그래서 보살 문턱에 들어서지도 못한다는 얘기죠.

이 무명초를 깎아 버리면 다 된다고 하지만 무명초는 방편으로 깎아 버리고 깎아 버리면 또 길러지고 하는 걸 배우기 위함입니다. 이 무명초를 깎아 버리듯 내 내면의 모든 것을 다 벗어 버리게 되고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벗어 버리게 되면 함이 없이 정말 하는 거고 삶이 없이 사는 거죠. 우리가  이 모습을 가지고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천 년을 살겠어요, 만 년을 살겠어요?

근데 무명줄이라는 것이 끊어지고 또 이어지고 그러는 게 아니라 무명줄은 항상 영원히 그게 생명줄이죠. 생명줄이다 이러는 것은 생명에 관한 에너지 줄이다라는 얘기고 무명줄이라는 것은 이 남과 남이 같이 더불어 같이 사는 그 이유로 인해서 무명줄이라고 그러죠. 그래서 그 무명줄은 참 모든 거를, 우리가 전자에 살던 것이 잘못된 거라면 갚고 갚으면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고치고 갚고 이렇게 나가야 되거든요.

이거 괜한 소리가 아닙니다. 남을 뺨을 한 대 갈겼으면 꼭 어느 땐가는 뺨을 맞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리를 안 하려도 안 할 수가 없어요, 현실이니까. 그렇게 해서 거기 차원까지 가지 못하면 그 자기 은사라도 저런 데로, 아주 심하게 다루는 데로 보내거든요. 죽으면 다시 태어나게 해서는 거기 글로 태어나게 하거든요. 바로 거기 태어나게 해서 거기서 고생을 진탕 해서 그게 완전히 자기 마음이 죽어야 그때 다니죠. 이것은 알지 못하거나 진실이 아니라거나 이런다면 이런 말을 못 합니다. 그러니깐 항시 조심하라고 하는 겁니다. 거죽으로 아무리 저거 해도 안으로다가 사악한 게 있으면 바깥으로 그냥 하염없이 나오게끔 되어 있으니까요. 그건 한 발짝은커녕 반 발짝도 거기에 들어서지 못하죠.

우리가 그럼 착하기만 하면 그렇게 되느냐. 착하면 모든 게 다 순조롭게 돌아가거든요. 좀 미련스럽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우리가 보통 어렵게 살고 가난하게 살지만 마음은 참 착하다 그럼 과거에 살던 그 업으로다가 지금 현재에 그렇게 사는데 요다음에는 그렇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많이들 그냥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죠. 요다음 생에는 권리도 좀 갖게 하고 삶도 좀 갖게 하고 인연들도 잘 만나서 자식 부모를 잘 만나게 하고 이렇게 살게 해서 어떻게 사나 그거를 또 참작하죠. 이거는 여러분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그냥 살고 말 게 아닙니다.

그래서 ‘죽여도 네가 하는 거고 살려도 네가 하는 거고, 네가 형성시킨 모습이 너로 인해서 지금 이렇게 움죽거리고 사는데 너만이 할 수 있잖아.’ 하고 그렇게 간다면 앞서의 업이 이만한 덩어리가 있다면 이만한 덩어리가 빨리빨리 제거가 되면서 이게 되지만 말입니다, 그거 하나로 인해서 또 그 차원이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만나서, 자기를 만남이 없이 만나서 통해야 다른 데 부처님하고도 전부 통하게 되어 있어요. 내 부처하고 통해야 모든 부처님하고 통할 수 있고, 하다못해 지신 용신 뭐, 허공신 모두 통할 수 있죠. 그래서 공식으로서의 공용을 할 수가 있다 이런 소립니다. 하나도 몰라 가지고는 거기 끼일 수가 없죠. 생각하면 중노릇하는 게 무척 어려운 겁니다. 밥을 먹으나 굶으나 누우나 자나 항상 이것은 어느 대에 마음을 두는 게 아닙니다.

누가 왔다 갔는데 참 그분들이 고생을 무척 하더라. 근데 그게 보면 그분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분들이 잘못해서 그런데 어떤 거는 빨리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거고, 어떤 거는 저 정말 자기가 나오기 이전에 있던 데로 가서 해야 될 문제가 있고, 어떤 거는 아주 영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딱 막혀서 그거를 차원을 벗겨 줄 수가 없는 그런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 중노릇하기 쉽다고 하겠습니까? 남이 볼 때는 참 쉽죠. 옷 그냥 남이 주시는 거 입고 남이 주시는 거 먹고 그래서 모두 살고, 그래 편안한 줄 아시죠? 아주 편안한 줄 아시는데 여러분이 그거를 아신다면은 아마 깜짝 놀라면서, 놀라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밤이나 낮이나 항상 나 아닌 나는 움죽거려야 하고 함이 없이 해야 하고 여러분들을 항상 생각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여기서 그러면 저기서 그러고 이렇게, 그거를 말할 수도 없어요. 왜냐? 모르니까 그러지 알면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알게끔 하기 위해서 노력인 거죠. 여러분들이 고생을 하시더라도 그 고생을 하면서도 알아야 하니까 “한군데를 믿고 한군데다 관해라.”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 공부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공부만 잘하시면 정말 이 나라도 남의 나라도 없고 내 나라도 따로 없지만 그래도 지구라는 이 혹성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지구가 내 동네죠. 그러니까 우선 급한 거는 우는 어린애를 더 먼저 안아서 먹을 걸 주죠. 그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무난히 앉아 계실 때는 살아가시는 거, 살아오신 거 그것도 좀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아주 자기 주인공을 믿고 해 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체험을 얻으시고 그렇게 하신다면 정말 중 아닌 중이 되시죠.

여러분하고 다른 게 뭐 있겠습니까? 머리 깎는 거, 옷 입는 거, 생활 사는 것도 모두가 다르죠. 그 다른 생활을 그냥 ‘아이고, 이건 고생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도 중노릇할 수가 없는 거죠. 이게 조그맣다 생각하지 마시고 ‘이거 하나에 큰 우주가 여기에 붙어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불 속에도,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도 뜨거운 것도 없는 걸 아시고 물 속에 들어가도 빠지는 걸 모르고 산다 이런 것도 아시고, 걸림이 없이 사실 겁니다.

우리 스님네들은 더욱더 우리가 부모의 인연을 받고 이 세상에 나서 남들을 위해서 하기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남을, 오는 사람을 위해서 또 하고 이렇게…. 그러니까 아주 굳게 닫힌 문을, 저승 문을 여는 셈이나 같죠. 굳게 닫힌 저승 문을 연다. 저승 문을 열 줄 알아야 이 사람들을 제도한다. 이 사람이 다니는 문이 문인 줄 알지 말라. 사람이 겸손하고, 좀 미련하더라도 인정이 있고 남을 생각할 줄 알고 이런다면 진짜 중이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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