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물을 새 물로 바꿔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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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에 구정물을 새 물로 바꿔 쓸 줄 알아야 한다 하는 말씀이 있으신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마음을 닦아 나가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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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이 마음을 닦는 법이란 먼저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면 바로 굴려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굴려 놓을 줄을 안다면 굴려 놓고서 다시 끄집어내서 착을 가지고 쥐고, 놓질 못해서 다시 쥐고 나오는 그러한 문제가 없도록 하시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진실로 지름길입니다. 가정에 어떠한 애고가 닥쳐도 타파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놓고 가는 도리입니다. 지혜롭게 바로 돌려놓는 그 자체 말입니다.
우리가 “돌려놓는다 돌려놓는다” 하니까 다르게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고, 일이 닥쳐오는 거는 체가 없는 데서부터 체가 있는 데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일이 꼬여 들어가는 것도 마음으로부터 일이 벌어져 가지고 바로 바깥으로 어지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일이든 그것은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마음으로 꼬여진 거니까, 마음에서 모든 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상대가 되고, 상대가 벌어지고 얽혀지고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해결을 할 수밖엔 없는 거죠.
그래 만약에 한 가정에 구정물이 닥쳤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돌려놓는데, 맑은 물로 돌려놓는다면 맑은 물로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만약에 마음이 밀가루라면 밀가루만 고집하지 마시고, 밀가루가 화해서 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수도 될 수 있고 만두도 될 수 있고 하지만, 그것은 원자에서 바로 분자로, 인연에 따라서 가공돼서 하나의 만두라는 게 나옵니다. 그렇게 만들어 잡숴라 이 소립니다.
모두가 그냥 ‘어렵다, 아주 괴롭다’ 이렇게 말만 하지 마시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개시해서 바로 실천을 하시는 데에 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발전도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마음의 발전이 아니라면 극난한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만히 있으면 그냥 목석이지 그게 사람입니까? 그러니만큼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경험을 했고 그 모든 것이 한마음 바로 근본, 영원한 근본, 그 근본에 종합돼서 그 재료가 들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서 이 생각 저 생각 다 나오는 겁니다. 스스로 입력이 돼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용도에 따라서 닥쳐오는 그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오는가를 아는 겁니다. 그런 문제들이 한두 건입니까? 그런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오는가 그거를 잘 파악하셔야 될 겁니다. 어디서부터 오는가? 천차만별의 애고가 다 어디서부터 오는가? 바로 자기가 지은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은 데다가 도로 놓고 굴려 놔라 이 소립니다. 한두 건이 아닌 그 유전성, 항상 말씀드리지마는 인과성이나 영계성이나 업보성이나 세균성이나 이 모두가 바로 어디서 오는 겁니까? 자기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올 것이고요.
그런데 삼세를 다 통치하고 한 일심으로써 실천궁행하려고 하고 자유인이 되려고 하고 만물의 영장이 되려고 하고 부처가 되려고 하고 법신이 되려고 하고 관세음, 지장 모든 것이 다 자유스럽게 되려고 하신다면 그렇게 흙물도 맑은 물로 바꿔 먹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일체가 다 한군데서 들고 나는 것이니까 한군데로 놓는 작업만 잘하시고, 굴려 놓는 작업만 잘하시고,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이 투철하다면, 그리고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믿는 그 마음이 투철하다면 바로 일체 만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타파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구정물을 새 물로 바꿔서 먹어라 하는 것이, 물뿐이 아닙니다. 물은 어디에도 들어갑니다. 물 안 들어가는 데 없지요? 일체가 물 안 들어가는 데가 없지요. 인간도 피가 없으면 바로 죽습니다. 피도 물이니깐요. 모두가 이 물 안 들어가는 데가 없듯이 우리 마음 이 자체가 바로 굴려서 놓고 바꿔 놓는 데 의미가 있고 묘미가 있고, 아주 지혜로운 실천이 나옵니다. 놨으면 진짜로 믿고, 도로 뺏어 가지고 나오진 마십시오.
진짜로 믿어야 합니다. 누굴 믿습니까? 허공을 믿습니까, 이름을 믿습니까, 무슨 스님네들 고깃덩어릴 믿습니까? 뭘 믿습니까?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마음의 주인을 진짜로 믿어야죠. 자기 마음의 주인만이 자기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겁니다. 그거부터 알아야 모든 일체제불의 마음도 거기에 한 찰나에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이런단 말입니다.
우리가 이 공부 하는 것은, 여기서 벗어나게 되면 바로 정신계, 마음의 어버이가 된단 말입니다. 정신계의 어버이가 되죠. 구차하게 이 모습을 가지고 또 나오지 않고도 말입니다. 마음의 어버이가 돼서, 정신계의 어버이가 돼서 모든 여러분의 마음에 그저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대로 응해 주는 그런 법신, 응신, 관세음, 지장, 용신, 지신 뭐, 아니 되는 게 없이 다 되시면서 그렇게 응해 주신다 이겁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벗어날 길은 이 길밖엔 없는데 좌천이냐 승진이냐 하는 겁니다. 인간은 중세계에 지금 살고 있으니깐요.
그런데 제일 바빠야 하는 것이 뭐냐. 지금 여러분 사는 것이, 지금 살 양으로 재산, 돈, 옷 좋은 거, 집 좋은 거 전부 이런 거 허무맹랑하게 찾는 것이 급한 게 아닙니다. 이게 급한 게 아니에요. 그거는 그저 꾸러 가지 않고, 그저 굶지 않고, 옷 헐벗지 않고, 길거리에서 자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도 가져갈 수가 없거든요. 자기 몸뚱이도 가져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가져갑니까. 그거 쓰다듬고 매일같이 세수하고 수염 깎고 모두 했던 거를 그냥 몽땅 다 버리고 갑니다. 하이구! 그 이뻐하고 미워하고 했던 거를 말입니다. 이 정 저 정 다 든 거를 다 버리고 가요, 그냥. 아이, 그렇게 해 놓고선 뭐 가질 게 있습니까?
역시 마음 닦아서 내가 이 수레바퀴 속에서 벗어나야 내가 자유롭게 일체 만물만생이 나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모두가 내 자리 아님이 없고, 정신계의 혹성이나 어떠한 별성이든 그 속에 들어가면 나 아님이 없고 내가 아니 되는 게 없고, 태양에 들어가도 내가 태양이 되고, 내가 은하계에 들어가면 내가 은하계가 되고, 달에 들어가면 달이 되고, 나오면 나오는 대로, 또 어떤 사람이 응해 달라면, 돼지가 응해 달래도 돼지 속으로 들어가면 돼지가 되는 거고, 이렇게 해서 성장을 시키는 바로 정신계의 어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거를 이름해서 부처라고 했던 것은 바로 상하가 없이 모두, 스님들끼리 살 때는 스님이 높고, 상인들끼리 살 때는 상인이 높고, 뱃사공은 뱃사공대로 높고,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높고, 제가끔들 가난하든지 못났든지 잘났든지 그 집안에서는 다 높은 분들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무리 못났어도 내 가정에선 내 남편으로서 제일 높죠. 안 그렇습니까? 그 가정에선 내 자식으로서 제일 높고, 내 부인으로서 제일 높고 그러니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그래서 부처다.
부처라는 것이 ‘나는 깨쳤다, 내가 제일 높다’ 하는 그런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두가 높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뜻에서 부처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 하시는 데 될 수 있으면 거기다 맡겨놓고 도로 쥐고 나오지 마시고, 맡겼다가 도로 들고 나오면은, 서류를 도로 들고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몇 사람 말고는 전부 들고 나와요, 도로. 하하하. 그러고는 안 되느니 되느니 하고 야단이에요. 왜 맡겼는데도 안 되느냐 이거죠. 아, 잘 맡겼으면 그럴 리가 있겠나요. 못 맡겼으니깐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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