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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

본문

질문

해마다5월이 되면 한 번쯤은 부모님과 스승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부모은중경도 있듯이 부처님께서도 효를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효에 대한 마음은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듯하여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바른 마음을 깨우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제가 항상 그렇게 말하죠. 모두가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 아님이 없노라고요. 왜냐하면 미생물에서부터 수없이 거듭거듭 진화돼서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이렇게 거쳐 왔기 때문입니다. 수억겁 광년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렇게 해 오면서 거듭거듭 돌아 나왔으니 지금 현생의 어머니 아버지만 부모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남의 부모를 남의 부모로 생각지 말고, 내 부모 아님이 없다고 생각을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짐승들도 모두가 모자랐을 때의 내 모습과 같고 내 생명 같죠. 더 자세히 말한다면, 여러분 몸속에 천차만별의 모습과 생명과 의식들이 그렇게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몸이 아니라 그 생명들의 집합소며 집입니다.

그래서 내 몸이라고 할 수 없으니만큼 될 수 있으면 내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자식이 됐다가 부모가 됐다가 하면서 내려온 그 은혜를 생각하고, 또는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지금 내 몸속에 모두 주둔하고 있는 자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고, 현재는 내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더불어 같이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불어 같이 살고 있는 이 남의 집을 아무렇게나 굴려서는 되지 않는다 이런 소리죠.

정자, 난자를 빌려서 삼합이 합쳐져서 이렇게 형성된 몸뚱이를 자기 몸뚱인 줄 알고 착각하고 아무렇게나 굴린다면, 그것은 일체 만물에게도 미안한 점이지만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됐던 그 은혜를 저버리는 게 되고, 그 모습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현재의 부모한테 정자, 난자를 받은 은혜, 그것에도 보답이 아니 된다 이런 소리죠.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할 때 우리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상시 생활 속에서 “부모는 항상 자식들한테 단점을 보이지 말라. 자식의 탓을 하지 말라. 부부지간에 서로서로가 내 탓으로 돌려야 한다. 내 탓으로만 돌린다면 언제나, 싸우는 일이 없고 화목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은연중에 자식들이 배운다. 효도를 강요하거나 잘살라, 올바르게 말하라, 올바른 행동을 하라 하고 강제로 시켜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얘깁니다.

위에서 스스로 함으로써 은연중에 자신들도 그렇게 물이 들어 가고, 그렇게 배워 나가고, 그렇게 다지고, 그렇게 지니고 행동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기를 형성시킬 때엔 바로 자기 종자를 자기가 형성을 시키고 자긴 껍데기로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깻조자리가 깨를 내놓고, 깻조자리는 없어지고 깨가 심어져서 다시 깨 싹이 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냉정하게 판단을 해 보십시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할 때는, 평상시에 자식이 올바르게 살고 올바르게 말하면서 올바르게 행동하면 그걸로써 자기의 재산이든 마음이든 몽땅 다 줘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자식을 보면 참 기특하고, 말 안 해도 그렇게 해 나가니까 감사하다는 마음이 부모한테 들면 그게 바로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생각을 해 주는 그 은혜는, 항상 생각을 내면 생각을 받아들이고 하는 그대로, 가고 옴이 없이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되고 통신이 되고 그렇게 해서 빚진 게 없이 서로가 갚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게 있죠. 아무리 자식이라도 못된 짓만 하고, 엉뚱한 데다 돈을 버리고, 또 엉뚱한 짓을 해서 빚을 지게 되니까 집을 팔아서 갚게 되고, 이렇게 해서 끝끝내…. 한두 번은 그래도 자식이니까 감싸고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결국은 내버린 자식과 같이 부모의 마음에서 떠난 자식이 있죠. 자식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에서 이미 떠난 자식이요. 부모 마음에 그런 마음이 들게 하면 그건 은혜를 갚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럭더럭 돈을 벌어서 호의호식을 시켜 드리는 것이 빚을 갚고 은혜를 갚는 게 아닙니다. 부모의 마음이 흡족하고 그냥 ‘그저 저만하면 우리 자식은 됐어.’ 이 정도로만 마음을 갖게 해 드리면 그게 효도입니다. 효자고 효녀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되고 못되고는 그 가정의 부모들한테 달려 있습니다. 효자가 나느냐 안 나느냐도 부모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거는 종자에 따라서, 배기무우냐 장다리무우냐에 따라서 싹의 결과가 나오는 거니까요. 안 그럴까요? 공을 들여서 일 년을 묵혀서 배기무우로 만들어서 열무를 심으면 장다리가 앉지 않습니다. 무우만 덩그마니 생기죠. 그러나 그냥 잡종 무우씨를 심어 놓으면 열무가 나는데도 장다리가 삐죽하게 나와서 꽃부터 먼저 피죠. 그러면 그건 열무도 못 먹고 무우도 안 생깁니다.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으시리라고 믿습니다만 자식을 기르면서 너무 많은 단점을 보이고, 화가 난다고 애들한테 포악하게 하고, 그냥 귀찮아하고, 또 막말을 자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그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달도 아니고, 일 년, 이태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은연중에 속에 지니게 되고, 유전이 되고, 그대로 말로 나오고, 그대로 행동이 되고, 그대로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속담도 있죠. 그래서 조심하셔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부지간이나 자식지간이나 이렇게 사시라고 항상 말씀해 드리죠. 부부지간도 자식지간도 모두 내 탓으로 돌려라. 못났든 잘났든 내가 생겨났으니까 바로 상대가 있고 자식도 있고 부부가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무슨 부부가 있으며 자식이 있겠습니까? 또 그리고 부모가 있겠습니까? 내가 있으니 모두 있는 거니까, 잘했든 못했든 내 탓이지 어째 남의 탓으로 돌리십니까? 남의 탓으론 절대 돌리지 마십시오. 그대로 내 탓으로 돌려서 그대로 거기다 놓는다면 그냥 입력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래, 입력이 된다면 앞서 그 그릇에 입력이 된 것은 전부 없어지게 돼 있습니다. 이건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노인들을 봐도 내 아픔같이, 내 괴로움같이, 내 외로움같이 생각한다면 항상 부드러운 말이 나가게 되고 항상 부드러운 행동이 나가게 됩니다. 노인들을 따로 본다면 항상 말도 거칠고 부드럽지 않습니다.
남도 그렇지만 현재 내 앞에 당면해 있는 내 부모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시대적으로 좀 뒤떨어져서 잘못 말씀을 하신다 하더라도 “네, 그렇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습니다” 해 놓고 그대로 해도 되는 거거든요. 속 안 썩여 드리고 아주 질서 정연하게, 내 마음 같고 내 괴로움 같고, 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같이 나도 그렇게 부모를 귀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한다면 부모가 자식 속을 썩일 리가 없고 자식이 부모 속을 썩일 리가 없어요.

‘효도해라’ 하는 것을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천차만별의 말을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단 한 가지, 내 생명 같고 내 몸 같고, 내 아픔 같고 내 괴로움, 내 외로움 같으면 아주 그거는 효도라는 이름 아니더라도 그대로 정말 세세생생의 효도인 동시에 일체제불의 그 마음과도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식이 나쁘니 좋으니, 잘못하느니 잘하느니, 내가 이렇게 죄를 지었느니, 내가 부모한테 효도를 못 했느니 이러한 생각을 마시고 될 수 있으면, 부모가 돌아가셨어도 내 주인공에다 다 놓고 같이 한마음으로 하신다면, 한 종자니까 어머니는 살아생전처럼 지켜 주실 거고 아버지는 채찍질을 해서 나를 길러 주실 테고 말입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맛있는 거를 먹을 때에 돌아가신 부모님과 같이 먹는 것입니다.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있는 이상, 각자 내가 있는 이상 내가 맛있는 걸 먹을 때에 부모님과 같이 먹는 것이지 어떻게 따로 떨어져서 먹습니까? 한 종자입니다.

그래서 그 종자가 자기 종자를 뿌려 놓고서 성장이 되면 바로 자기 껍데기는 껍데기로 변해서 가지만, 그건 바로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된 겁니다. 그게 둘이 아닙니다. 사시면서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자식이 부모하고 따로따로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조상의 탓이나 하고, 잘못되면 원망이나 하고 이럴 분들의 소견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대인은 지혜롭고, 소인은 소견이 아주 좁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라고 이름을 갖기 이전에 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진리에 응해서 나왔으니까 내가 사는 게 그대로 종교예요. 이 종교를 어떻게 굴리면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편안하게 사느냐, 궁색하게 사느냐,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사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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