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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

질문

젊을 때는 남들 따라 정신없이 지내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보자 하다가 또 어떤 힘든 경계에 부딪쳤을 때는 그냥 죽으면 그만이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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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죽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뭐. 어차피 이렇게 나온 거 아무렇게나 하더라도 잘 먹고 잘 입고 살면 되지.’ 이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옷을 입었다가 더러우면 벗어 버리고 다시 새 옷을 입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몸뚱이도, 젊어서 병이 들든 늙어서 병이 들든 옷이 다하면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게 돼 있습니다. 새 옷만 입을 뿐이지, 즉 말하자면 싹만 없어졌다 뿐이지 뿌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소립니다. 봄이 오면 새 풀이 또다시 나듯이.

그 뿌리가 죽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불씨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일체 만물만생이 다 그러하며 저 별성이나 혹성이나 다 그렇습니다. 수명이 짧고 길고 그럴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소리는 아예 하지도 말아야죠.

우리 이 육체 자체도 실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게 있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옷이 주어집니다. 세련되고 아주 좋은 옷으로 입느냐, 또 나같이 이렇게 못나 빠지게 옷을 해 입느냐, 하하하, 그렇지 않으면 짐승의 탈로써 옷을 입느냐, 독사의 옷을 입느냐. 그 여러 가지 옷이 많고 많은데 그것은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살고 있는 경험대로 주어지는 거거든요.
 
우리가 탤런트로서 어떠한 배역을 맡을 때, 평상시에 잘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와 같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마음을 썼느냐에 따라서, 무슨, 가난하고 부자로 살고 이래서가 아니라 없든 있든 자기가 어떠한 생각을 했고, 어떠한 행을 했고, 어떠한 말을 했고, 상대성 원리로써 폭넓게 살았느냐 폭넓지 못하게 살았느냐, 악하게 살았느냐 선하게 살았느냐 이런 것대로, 자기가 산 대로 심은 대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그렇게 배역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디서 왔는지를 필연코 알아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말을 하자면, 부모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말을 또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체 생명들을 막론하고 물주머니에서 나와서 물주머니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금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어항 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증명하건대 우리가 공기 주머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니까 우리가 이 도리를 알고 배우고 증득해서 그 어항 속을 벗어나야만이 자유롭게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지금 세상에는 텔레비전도 보고, 듣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아서, 모두 너무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이 공부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 좀 모르는 듯하고 어리석은 듯해야, 옛날의 선지식들이 화두를 주면 그냥 무지막지하게 밀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화두선이 그렇게 빛을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해도 내가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얼른 쉽게 말해서 물질로다 치닫는가 하면 형상으로 치닫고, 형상으로 치닫는가 하면 모든 점에서 정신세계는 무시하고 돌아가는 경향이 많다 이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이 만물만생은 다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을 하고, 또 우리 인간은 말과 말로 전달을 하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통신으로 전달을 하면서 살아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는 도리를 여러분이 하나도 몰라요. 그저 조급하게 불끈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해치워 버리고 그냥 말해 버리는 경향이 많이 있거든요. 자기를 자기가 구워 먹고 삶아 먹고 찢어 먹고 갈갈이 뜯어 먹고 하는 경향이 그런 데서 벌어진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도 걸림이 없이, 돌 위에 세워 놔도 살 수 있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긁어서 고(苦)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서 애고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서 모든 병고를 만들고 이럽니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합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사대육신은 지수화풍으로 한데 합해져서 이 세상에 나왔는데 지수화풍으로 뭉쳐졌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먹고 지수화풍을 또 내놓습니다. 먹는 대로 내놓습니다. 그럼 내놓는 것 가지고 어떻게 활용이 되느냐. 바로 증발이 되고 모두 화해서 일체 만물만생에게 도로 전달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전달한 까닭에 다시 또 먹습니다. 그러니 내놓으면 먹게 되고, 먹게 되면 내놓고 이러는 작업이 계속되죠. 이 도리를 우리가 상세히 알아야지, 목탁 치는 것만 불교가 아니다라는 얘깁니다.

과거에 살던 것, 미래로 인해서 오늘 현실에 오는 것, 이 전체를 삼라만상이라고 합니다. 삼세라고 그러죠. 또 삼심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또 삼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굴러오면서 교차하면서 살아나온 그 자기의 인과 업이, 선하게 행을 했다면 선행의 업이 있을 거고 악하게 행을 했다면 악행의 업으로서 진행되는 것이 여러분 몸속에 다 있다는 얘깁니다. 그것들로 구성돼 있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러분한테, 그 구성원들을 교화를 시키는 데 여러분의 마음의 채찍이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위로는 일체제불과 둘 아닌 마음을 지니고서 자기 주인공을 진실히 믿고, 아래로는 그 믿는 마음으로써 채찍질을 한다면 아래 내 몸속의 중생들은 스스로 제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말도 그런 뜻에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 자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부처가 되느냐 중생으로 그냥 남느냐가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을 깨닫는다고 합시다. 그거를 돈오라고 한다면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이 자생 중생들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점수가 또 들어갑니다. 나를 깨치는 거는 쉬워도 둘 아닌 도리와 둘 아니게 나투는 도리를 포착하려면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겁니다. 그건 왜냐하면 자생 중생들은 내가 바깥으로 끄달리게 되면 제도할 수 없습니다. 안으로 놓고 들어가야 통신이 돼서, 마음과 마음이 전달이 돼서 따라가서 제도가 되는데, 바깥으로 끄달리면 절대로 통신이 되질 않아서 제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정(定)에 들어야 한다.’ 이 뜻이 뭐냐. 그냥 정에 들려 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틀고 앉아 있으면 정에 드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양면을 다 작용하면서, 우리가 지금 내면에다 놓고 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정에 드는 방법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작용하는 그 묘법과 그 묘용과 그 광대무변한 법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빛으로 화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전 세계에서 알면 좋겠는데, 가만히 보면 전부 타의에다가 기도하고 상대에다가 빌고 잘되게 해 달라고 하지, 자생을 제도하면서 자기를 자기가 채찍질하면서 자기완성을 하려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주 적어요. 그러니 안에서 제도가 못 되는데 어찌 내가 제도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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