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존재를 알고 싶습니다.
본문
질문
삼보에 귀의하옵고, 사대가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사대에 속하는 것입니까? 사대에 속한다면 어디에 속하는 것입니까? 영혼이 사대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영혼은 어디로 갑니까? 만물은 환생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남아 있다가 환생하는 것입니까? 영혼이 남아 있다가 환생하고, 또 죽고 환생하고 하는 일을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한다면 영혼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까?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환생하지 않을 때는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만물에 두루 존재합니까. 부모가 태어나기 전 나의 본래 면목을 참구하다가 육신은 만물 속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알았으나, 나의 영혼은 어디에 있다가 육신에 깃드는 것인지를 모르겠기에 이렇게 여쭙니다. 영혼(마음)과 육신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에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왜 영가천도라는 것이 있는 겁니까? 마음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인연따라 경계가 나타나면 나타내다가, 경계가 사라지면 없는 것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경계와 둘이 아닌 하나인가요. 그래서 만물이 모두 불법이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영혼이라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그 영혼에 인과가 붙어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살아나가는 데에 인연을 맺죠? 악한 인연도 선한 인연도 모두 컴퓨터에 입력되듯이 그 모든 것이 정수에 입력이 됩니다. 즉 말하자면 과거의 악업이든지 선업이든지, 또는 인과성·윤회성·업보성·세균성·영계성 이 다섯 가지가 합쳐친 그것을 바로 여러분이 인연 삼아서 자기 그릇대로, 차원대로 정자 난자를 택합니다. 택해서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깡통에게 갈 것은 깡통에게 가고, 금한테 갈 것은 금한테 갑니다. 그래서 그렇게가족이 되는데, 몸 속에도 가족이 되고 바깥에도 가족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깡통은 깡통대로 만나고 금은 금대로 만납니다. 이렇게 구성됨이 철두철명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 본체가 있습니다, 근본 본체. 예를 들어서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본성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그 불성 자체가 하늘과 땅을 기준해서 불기둥이라 한다면‘불‘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합니다. 우주와도 직결이 돼 있고 일체 만물이 자라는 그 땅과도 합류화 돼 있습니다. 천지가 합류화 돼 있듯이. 그래서 기둥이 있으면 그 기둥을 끼고, 수레가 돌듯이 돌아가는 겁니다. 생사윤회 모든 일체가 돌아가는 것이 그 기둥을 끼고 돌아가는데, 그 기둥은 움죽거리질 않습니다. 움죽거리지 않으면서 그 능력은, 심봉이 들어가야만 됩니다. 그래야 바퀴가 구르죠. 그러나 바퀴를 꿴 그 심봉은 움죽거리질 않습니다. 움죽거리질 않으면서 바퀴만 굴러가게끔 그 힘을 배출해 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성은 움죽거리질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둘레에 돌아가는 바퀴는 우리들이 지금 이랬다 저랬다 하고 돌아가는 마음입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는 바퀴를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잘못 쓰면 그 바퀴에 나쁘게 감기고, 또 좋은 마음을 써서 악이 거기에 붙어 있지 않는다면 선으로서 좋은 것이 감기게 되는 거죠. 즉 입력이 되는데 그것을 바로‘영’이라고 그럽니다. 영! 그리고‘혼백’이라고 그러죠. 그러니 근본 불성하고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내되, 선하게 내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의 마음 공부에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악하게 쓰다 보면 선하게 쓸 수도 있고, 선하게 쓰다 보면 악하게 쓸 수도 있으니까, 그 양면을 다 놔라 이겁니다. 그 양면을 놓는 법이 바로 내가 지금 여기서 일러드리는 그 자체입니다. 왜냐? 선은 감사하게 놓고 악은, 악이 나오는 것도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거니까 악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도 모두 거기다가 다시 입력을 해라 이겁니다.
그리고 천도가 왜 필요하냐고 물어봤죠? 지렁이가 기어가다가 사람한테 밟혀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하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그 아픔이나 사람이 차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다쳐가지고 입원을 하고 있는 거나 똑같은 경우입니다. 어느 거든 고통의 쓰라림을 겪지 않는 생물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뿐입니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인간으로 살던 차원대로, 죽어도 그 차원대로 있습니다. 더하고 덜함이 없거든요. 산 사람은 좀 더했다 덜했다 할 수도 있지만 죽은 사람은 부딪침이 없으니까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겁니다. 한 그릇의 차원이라고 한다면 한 그릇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천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처사님이 궁금한 것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라도 체험을 하고 실험을 하고 나를 발견해서 이 생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지, 이리 저리 끄달리면서 살다가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아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음 생에 인간으로 올지 짐승으로 올지도 모르면서 세세생생 끌려다닌다면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러니 궁금해하는 마음이 나오면, 밖으로 그 답을 찾아 헤매기 이전에 근본에다 되놓고 거기에서만이 답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맡기세요. 우리가 이것저것 찾아 방황하면서 언제까지나 끄달리면서 살수는 없으니까요. 꼭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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